신문 광고.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동성애와 이성애가 이분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동성애 가능성과 이성애 가능성 사이의 한 지점에 있으며 그 가능성은 사회적 환경과 개인적 상황에 따라 옮겨다닌다. 기존 성에 대한 통념은 금기를 권력으로 치환하는 통치세력에 의해 날조된 것일 뿐. 킨제이 보고서는 미국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지만, 그것은 곧바로 미국 사회가 성적 억압에서 급격히 해방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는 것은 해방이며 모르면 조종당한다. 히틀러와 스탈린을 비롯한 모든 전체주의 권력은 동성애를 위험으로 간주해왔다. 그것은 성적 억압이 완화되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성은 대중을 통제할 가장 효과적인 도구였다. 킨제이의 연구도 공산당의 음모라는 공격을 받았고, 연구지원금은 차단당했다. 인간에게 그들이 다양한 성행동 패턴을 갖는다는 사실이 ‘정상’임을 알림으로써, 권력이 성적 금기를 틀어쥐고 대중을 요리하는 것을 방해한 대가였다. 광고가 정치적·정서적 억압 반영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 따위의 사고가 광고가 되어 신문에 실리고, 이런 주장을 하는 단체가 있다는 것. 성적 지식, 성행동의 다양성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수준이 원시 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가 얼마나 정서적·정치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반영해주는 사건이다. 성적 억압이 필요한 사람들, 그 억압 속에서만 안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뜻이므로. 킨제이 보고서 이후 인간의 성행동을 설명해줄 더 치밀한 보고서는 나오지 않았고, 발간된 지 60년 된 킨제이 보고서는 우리나라에선 출간되지도 않았다. 이 나라의 권력은, 아마도 세상의 모든 권력은 인간이 성적 억압에서 벗어나길 원치 않는 건지…. 목수정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