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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진폐환자에게 천사의 손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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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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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시에 사는 권아무개(63)씨. 광부 생활 28년에 남은 것은 진폐(塵肺)뿐.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심하지만 법규에 명시된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로 직업병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다. 부인과 사별한 어떤 할아버지는 딸 집에 얹혀사는데, 그 집이 경매에 들어가 있어 좌불안석이다. 광부로 22년 동안 일한 그는 극심한 호흡곤란에 시달리고 있으며 목에는 늘 가래가 그렁그렁 끓고 있다.

고향 태백을 등진 자식들과는 연락이 끊긴 60대 후반의 내외. 이곳에서 20년 이상 광부로 살아온 67살의 할아버지는 호흡곤란에 흉통(가슴통증)으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기본적인 의료혜택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태백자활후견기관의 원응호(43) 소장이 6월 초 펴낸 <2001년 태백진폐재해자의 삶>에는 광산노동으로 진폐라는 불치의 직업병을 얻은 이들의 애달픈 사연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모두 1040명. 4천여명에 이르는 태백, 정선지역 진폐증 환자의 4분의 1 수준이다.

태백사회복지회(보건복지부 지정 사회복지법인) 산하 태백자활후견기관이 태백, 정선 등 강원 남부지역 재가(在家) 진폐환자 실태조사에 들어간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올해 4월까지 7개월 동안 자료수집, 설문조사, 조사분석 과정을 거쳐 A4 용지 195쪽 분량의 보고서를 이번에 내놓았다. 진폐증 환자에 대한 현장 보고서로는 지난 95년 태백사회복지회에 이어 두 번째.

“저도 2년 동안 갱내에서 광부생활을 했습니다. 사무직으로 일한 것까지 포함하면 이 분야에서 일한 게 10년 이상 됩니다. 뭐, 특별한 계기라기보다 자연스럽게 이런 쪽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번 보고서는 과거 광산노동으로 진폐를 앓게 됐지만 사회적으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재가진폐환자들의 실태와 그들이 국가와 사회에 바라는 바를 자세히 담고 있다. 태백자활후견기관은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진폐환자들을 위한 소득, 의료, 사회복지 등 정책적 지원책 마련을 촉구해나갈 계획이다.

현행 진폐법 규정에 따르면 기관지확장증, 폐기종을 비롯한 7가지 합병증이 있어야 진폐로 인정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턱밑까지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와도 법규에 명시된 합병증이 없으면 아주 기초적인 의료혜택도 받을 수 없다.

원 소장은 “전국 6만여 진폐 환자 가운데 입원치료 혜택을 받는 경우는 2300여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라며 “하루빨리 법(진폐의 예방과 진폐 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바꿔 진폐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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