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특위 공동사무국 사무총장 정기열 목사
코리아전범재판을 탄생시킨 첫 번째 주역은 정기열 목사다.
전민특위 공동사무국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한국전 민간인학살문제를 국제민간법정을 통해 국제여론에 알리자”는 제안을 처음으로 꺼내 이를 성사시켰다.
신학공부를 위해 지난 81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그곳에서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을 접하며 본격적으로 ‘통일운동’에 투신하게 됐다. 이번 전범재판도 그에게는 한반도에 분단을 잉태한 미국 정부에게 법적·정치적·도덕적 압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현장조사를 위해 노근리를 방문했을 때, 미군에게 3명의 아들이 죽임당한 한 할머니가 제 손을 붙잡고 ‘영감이랑 둘이 50년을 살았는데, 영감마저 지난해 죽었어. 억울해서 눈을 못 감을 것 같았는데, 그 놈들을 재판한다니 이젠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아’라며 한참을 우시더군요. 그분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겨레의 한을 푼다는 심정에서 혼신을 다해 이번 재판을 준비했지만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두 차례나 뉴욕의 공립고등학교 강당을 빌렸어요. 그런데 계약까지 다 끝내놓고 뒤늦게 안 된다며 거절하더라고요. 미국 정부의 압력에 떠밀린 거죠.”
준비과정에서 정 목사가 놀란 것은 현지 언론의 반응이었다. 재판이 열리기 전부터 〈LA타임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CNN〉 〈AP 통신〉 등 유력매체들이 앞다퉈 이번 행사를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미군 철수를 이야기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서구 언론이 인권 차원에서 ‘민간인학살’문제를 끄집어내니까 모두가 호의적인 거죠. 그만큼 한국전쟁에 대해 이곳 사람들조차 무관심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