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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반전운동, 아버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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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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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파마 배심원

배심원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네덜란드의 벤 파마는 이번 국제법정에서 단연 관심을 끈 인물. 네덜란드 군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52년 10월23일 한국전쟁중 전사했다. 그가 태어나기 나흘 전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조금도 이야기해주지 않으셨어요. 심지어 한국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텔레비전을 아예 꺼버리셨죠.”

그러나 파마는 지난 96년부터 뒤늦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사연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삼촌이 보관하고 있던 아버지의 자필 편지를 3년 전 발견했다. “돌아가시기 5일 전에 쓰신 편지입니다. 어머니를 잘 돌봐달라며 삼촌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그 글을 통해 아버지가 ‘반전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가 펼쳐보인 편지지에는 ‘사람 죽이는 일은 나쁜 것이라고 한 형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이젠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중국군을 쏘아야 하지만, 사람을 죽이면서 어떻게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지금은 비록 군인이지만 이 전쟁만 끝나면 나는 결코 이런 전쟁에 다시 참가하지 않을 거야’라고 씌어 있었다.

이후 파마는 반전운동에 여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네덜란드 평화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당시 기록에는 아버지가 중국군의 척후병에게 사살당했다고 나와 있지만, 사실 아버지는 전쟁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겁니다. 가난했던 아버지는 임신한 아내를 생각하며 돈을 벌기 위해 참전했지만, 네덜란드 정부는 아버지 같은 청년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숨겼던 거죠. 후대에 그런 비극을 또다시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이번 국제전범재판을 통해 파마는 “‘전쟁범죄’ 이전에 ‘전쟁’을 단죄한 것이다.”라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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