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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지불 유예’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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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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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살던 시절, 길거리에서 계절에 따라 꽃이나 나무를 판 적이 있다. 그 덕에 ‘무니’로 오인되었지만 돈도 만지고 또 공덕을 쌓을 수 있었다. 예상치 않았던 소득은 장미나 튤립 등이 뉴욕 근교에서 생산되는 게 아니라 네덜란드로부터 매일 공수된다는 ‘희한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장미 한 송이를 다듬어서 셀로판지로 포장해서 약 1달러 정도에 팔았다. 도매상을 하던 친구의 얘기로는 원가는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비행기로 꽃을 운송한다? 그것도 대서양을 건너서? 이유는 단 한 가지, 뉴욕 근교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운송료를 감안하더라도 네덜란드에서 수입하는 편이 더 싸기 때문이다. 11월 말부터 팔기 시작하는 크리스마스 나무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의 대부분은 북미 서북부의 거대한 산림에서 베어 운반된 것이었다(12월 말부터 버려진 나무의 사체들로 가득 찬 거리의 그 끔찍한 광경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

요즘 한국에서 중국으로부터 고사리, 마늘 등 각종 농산물을 수입해서 먹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싼 물건을 누가 마다하랴? 상품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국경과 거리를 초월한다. ‘민족경제’ 훼손에 대한 우려만 떨쳐버리면 상품의 초국적 이동은 매우 효율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비교우위의 법칙에 따라 특정상품은 특화되어 특정공간에서 대량생산되고 그것은 원거리의 소비자에게도 저렴한 가격으로 재빨리 전달된다. 생산자 누이 좋고 소비자 매부 좋다. 무슨 문제가 있으랴? 가격은 가장 효율적으로 산출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에는 중대한 누락이 은폐되어 있다. 농산물이나 꽃의 국제적 운송비용을 감안한 상품가격에는 순전히 현재의 화폐경제가 요구하는 비용만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는 선박이나 비행기의 운행에서 발생하는 해양 및 대기오염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들어 있는가? 유조선에서 상습적으로 흘러나오는 기름 때문에 일어나는 오염처리비용은? 그것뿐이랴? 프린스호사건에서 드러나듯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충돌 및 침몰사고로 인한 양식장 오염, 어획량 감소 등 각종 환경파괴비용도 누락되어 있다. 비행기의 운행은 공항 건설 및 유지에서 오는 천문학적 규모의 환경파괴뿐만 아니라, 정확하게 규명되고 있지 않지만 배출가스문제를 수반한다. 그것은 대기의 흐름과 기후, 온난화 등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꽃의 출하시기를 맞추기 위해 살포하는 화학물질, 농약, 비료 등은 어떻게 토양을 오염시키고 있는가? 농산물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냉장시스템과 방부제 살포는 어떻게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가? 사실 상품의 이동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와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오염은 단순히 국제적인 차원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일국 내에서도 자동차, 기차, 선박, 비행기를 통해서 이동하는 물류는 무제한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비용을 세밀하게 계산한다면 현재 상품의 가격은 턱없이 축소된 것임에 틀림없다. 한마디로 현재의 화폐경제는 상품에 대하여 ‘제 값’을 치르지 않고 있다. 어떤 국가에서도, 어떤 기업에서도 ‘지금’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사정은 더 극단적이다. 가령 원자력발전소에 전기생산의 거의 절반을 의존하고 있다. 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 원자로 교체비용, 주변 환경오염 및 복구비용, 저준위 폐기물 처리비용, 체르노빌 같은 사고시 발생할 천문학적 파괴비용 등이 계산되어 있는가? 언론에서 마구 떠들어대는 연평균 성장률이나 국민총생산(GNP)에 이러한 비용이 자리잡을 틈은 전혀 없다. 그 비용은 현재의 사회적 약자와 미래의 세대에게 계속 전가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머지않아 현 세대의 보통 사람들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반드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우리는 환경비용을 영원히 지불유예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반드시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된다. 최근 심각한 문제로 등장한 ‘광우병’도 거대한 축산업의 발전과정에서 생산비용 최대 절감을 위해 동물의 시체 일부를 사료로 가공해 사용한 데 기인한다. 저렴한 쇠고기 가격에는 축산업 팽창이 야기한 환경파괴비용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비용을 ‘광우’가 일차적으로 치렀고 이제 사람들에게 차례가 온 것뿐이다.

현재 한국에서 ‘개발’과 ‘효율성’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업들이 있다. 그것은 환경단체의 힘겨운 저항에도 ‘지역발전’과 ‘주민복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줄기차게 추진되고 있다. 거기에 중장기적으로 야기할 생태적 불균형 그리고 그것이 사람 생명에 끼칠 파괴적 영향이 진정 고려되고 있는가? 꽃과 물과 냉장고와 쌀을 제 가격에 팔고 사고 있는가? 새만금 간척사업 강행 결정에서 보여지듯이, 점점 미쳐가고 있는 것은 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당대비평 편집위원 http://dragon.taejon.ac.kr/~kwonh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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