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교사 21년, 수업은 지속된다
등록 : 2001-06-20 00:00 수정 :
“처음에는 한 10년 정도 잡았습니다. 그 정도 세월이 지나면 다들 경제사정도 좋아지고, 중등학교 과정까지는 의무교육으로 바뀌지 않을까 했던 것이지요.” 그러던 10년이 한해 두해 길어져 올해로 21년째에 이르고 있다.
이상백 과장(45·기업은행 온양지점)이 야학 활동에 뛰어든 건 대학 2학년이던 1980년이었다. 다니고 있는 대학교 인근 천안지역의 새마을학교(당시 야학)에서 자원봉사 교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없이 지원했다.
“제가 원래 충남 대천 시골 출신이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 때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오긴 했어도 내내 고향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격도 내성적이었고, 어릴 때부터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이 강했던 것 같아요.”
당시 야학에는 집안형편이 어려운 청소년 등 120여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국어, 영어, 수학을 뺀 나머지 일반과목이 모두 그의 몫이었다. 중·고등과정을 넘나들며 가르쳐야 했는데 자원봉사 교사가 모두 4명뿐이어서 방학도 잊은 채 매일 3시간 이상 품을 들여야 했다.
힘들었지만 보람도 컸던 시절도 잠시, 3학년 말 야학은 위기에 빠졌다. 개인적으로 돈을 들여 운영하던 이가 형편이 어려워져 더이상 못하겠다며 손을 든 것. 학생 신분이었던 이씨로선 야학이 폐교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4학년 올라가면서 ROTC(학군사관후보생) 장교훈련시간이 많아져 짬을 내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야학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시작할 때 ‘10년은 하겠다’는 다짐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울 가족과 떨어져 자취생활을 하면서도 2년 가까이 이어온 데 대한 애착이 너무나 컸다. 애착은 이씨만이 아니었다. 이곳서 공부하던 학생들은 3개월이나 쫓아다니며 다시 공부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결국 4학년 첫 학기가 시작된 3월부터 자원봉사 교사를 모으고 그해(1982년) 10월 개교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생긴 천웅야간학교는 임대료 때문에 여덟아홉번씩이나 옮겨다니면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충남 천안시 사직동에 있는 빌딩 2층(20평짜리)에 세들어 있으며 학생은 30명 안팎에 이른다. 월 임대료(50만원), 전기·수도료 등 월 60만원을 웃도는 운영경비는 모두 이씨가 맡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양주를 먹어야 할 때도 있고 한데… 그런 것 안 한다 셈치며 야학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이씨는 요즘 천안 인근에 100평 정도 크기의 야학 터전을 물색하고 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