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랑’은 변치 않으리!
등록 : 2001-06-20 00:00 수정 :
‘전쟁포로에서 대사까지.’
월남전 포로 출신
더글러스 피터슨 베트남 주재 미국대사가 다음달 15일로 4년여에 걸친 대사의 임무를 마감하고 귀국한다. 그는 통일 베트남과 미국의 국교정상화 이후 하노이에 파견된 초대 대사였다.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하노이는 ‘담당 대사교체’ 이상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을 이해하는 미국인이 떠나 아쉽다”는 것이다.
그의 인생은 베트남과 미국이 공유하고 있는 ‘불행한 현대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월남전 당시 F-4 팬텀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20세기 지식인들이 ‘가장 야만적인 폭격’으로 규정한 북폭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하노이폭격에 참여했다가 베트남의 샘미사일에 격추당해 5년여 동안 전쟁포로 생활을 했다.
피터슨이 포로생활을 한 곳은 ‘하노이 힐튼’. 월남전 당시 미국의 무차별 폭격을 막기 위해 호치민에 의해 하노이 중심부의 옛 프랑스 중앙감옥에 수용된 미군포로들이 이 감옥을 일컬어 ‘하노이 힐튼’이라고 불렀다.
피터슨은 97년 하노이 부임 직후 ‘하노이 힐튼’을 돌아보며 “숟가락 하나와 깡통 하나만 사유재산으로 인정받으며 5년을 생활했다”며 “하지만 이곳에서 베트남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피터슨은 석방된 뒤 미국으로 돌아가 상원의원(민주당)으로 당선돼 베트남과의 국교정상화와 경제제재 해제 등을 주장하는 등 친베트남 활동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 결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의해 하노이 주재 대사로 지명됐고, 하노이 정부로부터 흔쾌히 아그레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부임 1년 뒤 베트남 여성과 결혼까지 해 하노이 외교가에 잔잔한 파문을 던졌다. 당시 한 외교관은 그의 결혼에 대해 “(피터슨이) 대사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과를 한 것”이라고 평했다.
피터슨은 재임중 미-베트남무역협정 체결에 힘을 쏟았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피폐해진 베트남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 그 나름의 노력을 한 셈이다. 하지만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 무역협정 비준을 차일피일 미루자 그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도 “본국 정부의 일처리에 실망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가 의회에 협정비준안을 제출하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지난 6월12일치 베트남 일간지인 <투오이쩨>(청년)와의 인터뷰에서 “미-베트남무역협정 비준안이 다음달 안으로 미국 의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여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강남규 기자/ 한겨레 국제부
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