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모성보호를 가로막는가
등록 : 2001-06-20 00:00 수정 :
달디단 비가 내리던 6월18일 정오. 여의도 한나라당사 건너편 국민은행 앞으로 50여명의 여성이 모여들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모성보호관련법 개정안 의결을 사흘 앞두고 막바지 힘을 모으기 위해 모인 여성노동자들이다. 대오를 이끄는 이는 한국여성단체연합
김기선미(30) 정책부장. 작은 체구와는 달리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았다. 김 부장과 시위대는 이날 모성보호관련법 6월 국회통과를 위한 비나리굿을 벌이려 했으나 경찰이 막무가내로 천막을 걷어가 빗속에서 풍물을 치며 시위를 해야 했다.
지난해 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출산휴가 90일로 연장, 육아휴직시 소득의 일부보장, 임산부 월1회 태아건강검진 휴가, 유·사산 휴가, 가족간호 휴직제 도입 등을 중심으로 한 모성보호관련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여성계와 노동계가 청원한 내용에 한참 못 미쳤지만 대통령이 수차례 모성보호 확대를 강조했고, 국회는 일반회계에서 150억원을 부담하기로 예산안을 통과시킨 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 7월부터 이 법이 그대로 시행되리라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상황이 돌변했다. 자민련이 재계가 내세운 근거없는 ‘8500억원의 추가비용’을 이유로 전면유보를 주장한 뒤부터다. 민주당은 여권공조를 핑계로 시행 2년유예를 발표했다가 일부 조항을 삭제하겠다는 둥 이랬다저랬다하고, 한나라당은 이미 파탄난 건강보험재정에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법개정에 발목을 잡고 있다. 이 과정에서 모성보호관련법은 마치 여성들만을 위한 것인 양, 또 여성들이 놀면서 돈만 받으려는 것인 양 여론은 왜곡됐다.
김기선미 부장은 지난 7달간 재계와 경제단체의 논거에 반박하며 각종 항의방문과 시위를 조직하고 최근에는 각계인사 300인 선언문을 이끌어내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싸움을 끌어오면서 아주 높고 큰 벽을 느꼈다”는 김 부장은 “여성의 한명이길 떠나 국민의 한명으로 분노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정부와 노사정위는 모성보호와 생리휴가를 맞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여성들만의 문제로 몰아가겠다는 것이죠. 출산파업이 무엇인지 모르는 모양입니다.” 이미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42명으로 프랑스보다 낮다. 원하건 원치 않건 사실상 ‘출산파업’에 접어든 단계이다. 김 부장은 “육아에 대한 사회적 지지기반은커녕 애를 제대로 낳기 위한 기본적인 휴가마저 보장되지 않는데 누가 애를 낳으려 하겠는가”라며 가슴을 쳤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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