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계승
등록 : 2001-06-20 00:00 수정 :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에서 벌어진 마녀사냥·마녀재판만큼 공포로 가득 찬 인간의 역사는 없다고 합니다. 가톨릭의 이단박해로 수많은 여성들이 마녀라는 올가미를 쓴 채 몽매한 법정에 섰고 화형장의 불길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 재앙으로 숨진 희생자는 50만명에서 100만명 사이라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악마와 계약을 맺은 죄,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 죄, 이웃의 암소를 죽인 죄, 우박을 불러온 죄 등 온갖 죄목이 굴레씌워졌습니다.
종교라는 이름의 도그마와 권위로 가능했던 마녀사냥은 이성에 눈을 뜨면서 모습을 감췄지만 마녀사냥의 광기와 기술은 현대에 와서도 계승됩니다. 2차대전 당시 히틀러의 유대인학살이 그것이고 그에 못지않은 것이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대량 학살입니다.
40여년 만에 빛을 본 조사기록에 나오는 학살의 이유와 방법은 중세의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느 지역에서는 머리가 짧은 자, 군용팬티를 입은 자, 손바닥에 총을 든 흔적이 있는 자를 골라내 죽였다고 합니다.
희생자가 수십만명에 이르고 불과 반세기 전에 일어난 일인데도 책임자 처벌은 고사하고 진상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억울한 주검을 적막강산에 버려둔 채 인권국가를 말할 수 있는가”라며 공소시효가 없는 나치전범 처벌을 본보기로 삼으라는 요구가 크게 들립니다.
역사학자들은 마녀재판이 그 규모와 잔인성, 기간에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모든 시대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며 동시에 모든 사회가 저지를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다고 합니다. 마녀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통제집단의 이해에 맞춰 이미지화되고 그들의 필요와 능력만큼 발명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론을 입증하듯 올해 6월에는 보수언론·재계·정부·정치권이 손을 맞잡고 또 하나의 마녀를 만들었습니다.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 파업권이라는 노동의 시민권은 안중에도 없이 민주노총과 파업 노조들을 질서를 깨뜨리는 주범으로 매도했습니다.
“이 가뭄에 웬 파업”이란 여론몰이는 마녀사냥식 보도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파업이 한두주 더 이어지다보면 “이 장마에 웬 파업”이란 타이틀이 등장하지 않을까 합니다.
홍세화씨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서 ‘사회정의가 질서에 우선한다’는 화두가 알베르 카뮈 이래로 프랑스에는 끊임없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는 프랑스의 기득권층 중에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떠나 사회정의를 택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한국에선 기득권층은 물론 비기득권층에서도 질서를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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