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대학과 21세기 앙가주망

363
등록 : 2001-06-13 00:00 수정 :

크게 작게

2003년이 되면 현재 대학입학정원의 숫자보다 입학생의 숫자가 더 적어지기 시작한다는 통계가 최근 발표되었다. 지금까지 과다수요와 과소공급의 주체가 뒤바뀌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파급효과는 수급의 역전에 따라 직접적 위기감을 느끼는 각 대학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교육, 문화, 산업, 경제 전반에 걸친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것이 각 대학의 입학생 확보와 재정이 취약한 사학의 존폐문제에만 연관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선 이 문제는 오랫동안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대학개혁의 문제에 직결된다. 또한 우리나라 교육문화의 특수 상황에서 몇년 전부터 중요 이슈가 되고 있는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의 위기에 더욱 영향을 끼칠 것이며, 지식정보사회를 맞아 논란이 되고 있는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심도있는 성찰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기초학문 위기 해결을 위한 열쇠

눈앞에 보이는 입학생 확보와 사학의 존속은 사실 이상 언급한 것들이 제대로 해결되면 그에 따라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식인들이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구체적인 실행을 하며, 기초학문이 제자리를 잡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대학이 확실한 구조조정을 통해 자체 개혁을 이루어내면 대학은 살아남을 것이고 필요한 입학생도 확보할 것이다. 오히려 눈앞의 이익과 미봉책을 좇으면, 우리나라 대학시스템 전체가 병든 공룡처럼 부식(腐蝕)해갈 것이다.


물론 개혁 과업을 위해서 관찰할 것들과 세워야 할 계획들 및 실행해야 할 것들은 많다. 흔히 간과되고 있는 것 한 가지만 말해본다. 우선 종합대학교 내의 단과대학 및 학부의 구분과 편성을 학생 확보 위주로 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런 접근방식이 그 확보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교육과 연구를 위한 시스템으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인력으로서 교수의 재배치다. 한 예로 서구 대학에서는 수학자가 경제학과 교수로, 물리학자가 철학과 교수로, 철학자가 문학을 비롯한 예술대학에, 사학자가 법과대학에, 미술가가 이공대학에 재직하는 것 등이 별스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마구잡이로 섞여 있지는 않다. 원칙적으로 전공자와 전공학과 또는 학부는 일치시키되 일정 부분은 이런 교류를 필요로 한다.

이는 말만 무성했던 우리 학계의 어떤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결 창구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몇년 전부터 학제적(學際的) 연구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학제 연구를 시행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의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뛰어난 지식과 도덕성과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된 시스템이 필요하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결여되어 있어서 그 필요성에 대해 의식조차 할 수 없던 시스템 말이다. 그리고 시스템은 그냥 ‘만남’이 아니라 구체적 성과를 이루게 하는 실질적 만남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또한 상당수 기초학문 전공자들을 합리적으로 대학시스템 내에 흡수, 재배치하는 길이 될 것이며, 자동적으로 기초학문 위기 해결을 위한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 기초학문은 그냥 생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초학문 전공자들이 연구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 때, 살아남아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여타 학문의 성장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기초 자양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모대학교에서 있었던, 더 나은 위상을 차지하기 위한 단과대학 사이의 불필요한 투쟁을 없애는 효과를 줄 수 있다.

산학협동을 위한 능력을 위하여

각 전공분야의 학자 및 예술가들 사이에서(특히 기초분야와 응용분야 사이에서) 상호 참여, 지원, 개입, 협동을 항시적으로 연습하면, 이 나라의 또다른 고질인 산학협동의 문제해결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학문과 예술의 각 분야 사이에서 서로 소통하고 협력해 버릇해야 산학협동을 위한 능력도 키워지는 법이다. 그러면 21세기에 지식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인식하게 될 것이며, 어느 곳에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도 눈에 보일 것이다.

20세기에 문인과 학자들의 참여를 뜻하는 앙가주망은 사회·정치 참여였다. 이에 더하여 ‘21세기 앙가주망’의 새로운 차원은 포괄적 의미에서 ‘문화 참여’다. 21세기가 지식과 창의성 및 문화의 시대라는 것은 지식으로 문화의 각 분야에 참여해서 창조적 성과를 이루어낸다는 뜻이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위기의 시대, 대학개혁을 위한 과제의 하나도 여기에 있다. 다각적 참여와 창조적 성과를 이루어내는 대학은 학생들에게 실질적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용석/ 전 로마 그레고리안대 교수·철학 uchronia@netsgo.com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