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에 시달리며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사할린 영주귀국자들에게 조국은 짝사랑의 대상
지난 6월7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사할린으로 가는 여객기에는 유난히 많은 노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해 2월 사할린에서 영주귀국한 동포 여든네명이 이 항공편을 이용해 사할린을 다시 찾아가는 길이었다. 대한적십자사가 주관하는 ‘영주귀국자 사할린 방문 사업’ 선발대인 이들은 4주 동안 사할린에 머물게 된다. 대한적십자사는 8월 말까지 14차례에 걸쳐 모두 900여명의 사할린 방문을 지원한다. 가장 큰 지원내용은 한 사람에 왕복 100만원쯤 하는 비행기삯이다.
최연소자가 50대
경기도 안산시 사동 고향마을. 흔히 ‘사할린아파트’라고 불리는 이곳은 사할린영주귀국자 489세대 926명이 집단거주하는 곳이다. 지난 8일 이 마을 안에 머물고 있는 입주자는 전날 사할린으로 떠난 사람들 수만큼 정확히 줄어 있었다. 초여름 일찍 찾아온 무더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1년 반 만의 첫 나들이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조금씩 들떠 보였다. 그러나 그 들뜸은 소풍날을 기다리는 초등학생들처럼 직설적이지는 않았다. 연륜에서 온 표정관리일까.
사람들은 이 나들이를 ‘역방문’이라고 불렀다. 천신만고 끝에 50여년 만에 돌아온 고향이 이곳 대한민국이니, 분명 ‘고향방문’은 아닐 터였다. 그러나 굳이 ‘고향방문’과 구분지어 부르려는 그 의도 안에는 사할린이 숫제 타향일 수만은 없는 이들의 속사정이 담겨 있다.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한 노인은 흘러간 옛노래로 설명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곳에는 자나깨나 그리운 아들·딸과 손자·손녀가 있었던 것이다. 사할린아파트는, 말하자면 전체가 대규모 실버타운이다. 아파트단지 어딜 가도 삼삼오오 모여 있는 건 노인들뿐이다. “최연소자가 50대입니다.” 직원 4명과 함께 이곳에 나와 파견근무하는 문양교 안산시 복지사업2팀장은 “지난해 2월 입주한 분들 가운데 벌써 서른두분이 돌아가셔서 천안 망향의 동산에 묻히셨다”고 귀띔했다. 드물게 보이는 젊은이와 어린 아이들은 귀에 선 러시아어를 썼다. 부모와 조부모를 찾아 여행비자로 잠깐 한국에 들린 사할린 거주 동포 2·3세들이었다. “늙은이들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고향마을노인회 고창남(66) 사무국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식들도 이곳에서 같이 살았으면 하는 게 우리들 남은 소원입니다. 다는 말고 한 명이라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 영주귀국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겁니다.” 고 국장은 “물론 이렇게 우리를 불러들여 집도 주고 생활비도 주니 고맙기는 하지만…” 하고 다시 한번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예의를 깍듯이 차렸다. 그의 예의는 몸에 밴 듯했으나, 조국에 대한 고마움에도 과장은 없어 보였다. 문양교 팀장은 그를 “이런 데 계실 분이 아니다”라고 소개했다. 고 국장은 모스크바대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고 사할린의 정부 연구소에서 일한 저명한 해양학자이고, 이미 사할린에서 국내 연구소들과 여러 차례 연구 교류를 하기도 했다. 그런 그도 조국에 돌아와서는 다른 영주귀국자들과 마찬가지로 부부가 합쳐서 한달에 70만원쯤 받는 ‘기초생활보장대상자’일 뿐이다. 아파트 관리비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겨우 반토막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귀국한 것일까. “귀국하기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고 국장은 “살아서 조국에 온 것만 해도 어디냐”고 말했다. 몇백만원 하는 병원비 감당 못해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예외없이 피붙이 하나 없는 늘그막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지난해 부부가 함께 귀국한 염성호(75)씨는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할망구는 청소일 품팔러 나갔어.” 사할린에서 주5회 발행되는 현지 유력신문 사진기자 생활을 했고, 은퇴 뒤에도 귀국하기 전까지는 일본 신문사쪽에 사진을 제공하는 베테랑 프리랜서로 활약했다는 염씨는 하릴없이 러시아어로 된 낡은 기자 신분증을 매만지고 자신의 앨범을 넘겼다. “아직 마음은 젊은데, 말이 짧아서 나다닐 수 있어야지.” 함경남도 단천이 고향인 염씨에게는 이곳도 온전한 마음속 고향은 아닌 듯했다.
며칠 전에는 60대 여성 한명이 숨졌다. 전날 아내 장례를 치른 하창수(67)씨는 이날 넋나간 표정으로 집을 지키고 있었다. 사할린에서부터 심장이 좋지 못했던 아내는 한국에 와서 약물치료를 하다 갑자기 뇌출혈을 일으켜 숨을 거뒀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사느니 사할린 아들에게 돌아갈까도 생각해봤어요. 하지만 이젠 그곳에 가도 어차피 손님일 수밖에 없잖아요. 가뜩이나 그곳 경제사정도 안 좋은데 자식들 부담만 줄 거고.” 하씨는 “앞으로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할린아파트 거주자들에게 건강은 가장 현실적인 위협이다. 지난해 4월 안산시 조사에 따르면, 영주귀국자 10명 가운데 6명이 고혈압과 관절염, 심장질환, 당뇨, 결핵 등 갖가지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어렵게 하는 건 병이 아니라 돈이다. “이분들은 모두 의료보호 대상자입니다. 문제는 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검사와 수술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안산시 문양교 팀장은 “이 분들에게 병원비 몇십만원, 몇백만원은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라며 “그나마 숨은 독지가들의 도움 덕분에 가까스로 병원비를 해결하고 있지만 늘 보릿고개를 넘기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50년 넘게 짝사랑해온 조국이기 때문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정부를 고마워했다. 설령 불만이 있다고 해도 쉽게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염성호씨는 한국말에 서툰 자신을 탓했고, 하창수씨는 자신의 불찰을 원망할 뿐이었다. 그러나 한국말에 서툰 게 염씨의 게으름 탓만은 아닐 터이고, 아내의 죽음이 하씨의 잘못만도 아닐 터였다. 사람들은 문득문득 정부에 대한 불만을 내비치곤 했다. 어쩌면 그건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감추려해도 자꾸 풀려나오는 낡은 옷솔기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녀들을 영주귀국시킬 수 없다면 하다 못해 현재 3개월밖에 허용되지 않는 체류기간을 1년, 아니 6개월로라도 늘릴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고 국장은 “지난해 외교통상부에 찾아가 이 문제를 건의했더니 법무부 소관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체류기간 연장은 사실 이들에겐 매우 현실적이고도 절실한 문제다. 사할린 자녀들의 경제사정으로는 왕복 100만원이나 하는 비행기삯을 감당하기 벅차기 때문에, 한국에서 막일을 해서라도 비행기삯과 생활비를 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 체류기간은 고작해야 3개월
“한국 정부는 너무나 오랫동안 한핏줄인 우리를 버려왔다. 우리가 영주귀국해 이곳에 정착하는 데 한국 정부가 한 일이 뭐냐. 우리가 러시아, 일본 정부에 찾아가 데모해서 국적문제도 해결하고 보상금도 받아내 아파트 지은 것이다.” 끝내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한 노인은 “미국 이민간 사람들 자식들은 한국에 들어와 아무 제한없이 노래부르고 춤춰서 몇억씩 벌어가는데, 우리 자식들은 부모가 이곳에 있는데도 왜 맘대로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냐”고 따졌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는 이 노인은 이곳에선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들끼리 모여 노는 나지막한 정자에 들러봤다. “불만? 이 나라 사람들만큼은 못하지만 미안해서 어떻게 더 해달라고 하겠어. 이렇게 살다 죽어야지.” 할머니들 가운데 아직까지 아파트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아파트 바로 바깥으로는 모텔이다 단란주점이다 해서 화려한 상업시설이 무섭게 들어서고 있었다.
지금도 사할린에는 영주귀국을 꿈꾸며 순서를 기다리는 동포 1세대가 많이 남아 있다. 올해 정부는 5차례에 걸쳐 176명을 영주귀국시킬 예정이다. 그러나 이젠 정부가 귀국대상자를 늘려가는 속도보다 동포 1세대들이 사할린에서 숨을 거두는 속도가 더 빠를지도 모른다. “여기서 사람이 죽어 집이 비는 만큼 더 많이 들어올 수 있다고 합디다. 죽어서 좋은 일 하나는 할 수 있는 셈이지요.” 입담 거칠던 그 노인은 결국 “우린 2등 동포”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사진/ 이곳에선 정부에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만 낡은 옷솔기처럼 드러날 뿐이다. 아파트 정자에 모여 있는 노인들.
사람들은 이 나들이를 ‘역방문’이라고 불렀다. 천신만고 끝에 50여년 만에 돌아온 고향이 이곳 대한민국이니, 분명 ‘고향방문’은 아닐 터였다. 그러나 굳이 ‘고향방문’과 구분지어 부르려는 그 의도 안에는 사할린이 숫제 타향일 수만은 없는 이들의 속사정이 담겨 있다.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한 노인은 흘러간 옛노래로 설명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곳에는 자나깨나 그리운 아들·딸과 손자·손녀가 있었던 것이다. 사할린아파트는, 말하자면 전체가 대규모 실버타운이다. 아파트단지 어딜 가도 삼삼오오 모여 있는 건 노인들뿐이다. “최연소자가 50대입니다.” 직원 4명과 함께 이곳에 나와 파견근무하는 문양교 안산시 복지사업2팀장은 “지난해 2월 입주한 분들 가운데 벌써 서른두분이 돌아가셔서 천안 망향의 동산에 묻히셨다”고 귀띔했다. 드물게 보이는 젊은이와 어린 아이들은 귀에 선 러시아어를 썼다. 부모와 조부모를 찾아 여행비자로 잠깐 한국에 들린 사할린 거주 동포 2·3세들이었다. “늙은이들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고향마을노인회 고창남(66) 사무국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식들도 이곳에서 같이 살았으면 하는 게 우리들 남은 소원입니다. 다는 말고 한 명이라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 영주귀국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겁니다.” 고 국장은 “물론 이렇게 우리를 불러들여 집도 주고 생활비도 주니 고맙기는 하지만…” 하고 다시 한번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예의를 깍듯이 차렸다. 그의 예의는 몸에 밴 듯했으나, 조국에 대한 고마움에도 과장은 없어 보였다. 문양교 팀장은 그를 “이런 데 계실 분이 아니다”라고 소개했다. 고 국장은 모스크바대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고 사할린의 정부 연구소에서 일한 저명한 해양학자이고, 이미 사할린에서 국내 연구소들과 여러 차례 연구 교류를 하기도 했다. 그런 그도 조국에 돌아와서는 다른 영주귀국자들과 마찬가지로 부부가 합쳐서 한달에 70만원쯤 받는 ‘기초생활보장대상자’일 뿐이다. 아파트 관리비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겨우 반토막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귀국한 것일까. “귀국하기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고 국장은 “살아서 조국에 온 것만 해도 어디냐”고 말했다. 몇백만원 하는 병원비 감당 못해

사진/ 사할린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던 염성호씨. 부인은 날품팔러 나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