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싸우는 이유
등록 : 2001-06-13 00:00 수정 :
타들어가는 들녘만큼이나 답답한 곳이 CBS입니다. 200여명의 기자, 피디, 아나운서 등이 파업을 시작한 지 250일이 넘었습니다. 사랑과 화해의 기독교, 자유로워야 할 언론의 결합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어느덧 일상처럼 되어버린 CBS파업사태는 한 사업장, 한 방송사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과 속을 지배하는 ‘종교와 언론’의 단면일 수 있다고 여겨 표지이야기로 다뤘습니다. 노조는 정치적 성향과 경영스타일을 문제삼아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잠재적·현재적 갈등이 언론계에 두루 있는데, CBS노조가 유독 독하게 나온 것입니다.
경영진은 노조의 요구를 권한을 벗어난 인신공격이라고 일축하며 빗장을 걸어잠그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교회정치, 교권주의라는 기독교의 또다른 측면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파업 250일째인 6월11일 민경중 노조위원장이 몸무게가 15kg 줄었다며 심경을 전해왔습니다. 전에 같이 국회를 출입했던 그는 100kg이 넘지만 결코 둔하지 않은 민완기자였습니다. 노사라는 이해당사자의 한편이어서 무척 조심스럽지만 경영진은 민감한 시기라며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어, ‘정형’으로 시작되는 편지를 소개합니다.
평범한 기자였던 내가 노조위원장을 맡아 엄청난 일을 계속하는 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묻더군요. 두 가지 기자체험이 싸움을 계속하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87년 말 대통령선거전이 치열했던 당시 구로구청에서 부정투표함 개함 시비가 있었지요. 점거농성을 벌이던 학생과 시민들은 자신들을 폭도로 매도한 기존 언론사 차량에 돌을 던지며 출입을 막았습니다. 그때 군사정권에 보도기능을 빼앗겼다가 7년 만에 부활한 CBS는 유일하게 현장취재를 했고 농성자들의 목소리는 전파를 타고 전국에 알려졌지요.
또 하나, 80년 해직됐던 선배 언론인 몇명이 시국에 대한 불만을 유인물에 담았답니다. 그런데 그 유인물이 결국 내란음모와 국가전복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했답니다. 거기서 깨달았답니다. 하찮은 유인물일지라도 진실을 담고 있다면 큰 언론 매체가 될 수 있고, 매체가 아무리 커도 진실을 담지 못하면 한장의 유인물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최근 언론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지요. CBS 조합원들은 몸을 던져 언론개혁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모순을 극복해내지 못하면 과거의 찬사는 독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 때문입니다. 또 내부 문제점을 드러내고 개혁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개혁을 요구한다면 이율배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끝이 어딘지 모르지만 오늘도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