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박사, 통일 날개 달다
등록 : 2000-08-16 00:00 수정 :
나비 박사. 이승모(77)씨의 이름 앞에는 항상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는 올해 강원도 철원군 민통선 지역에서 북한에서 날아온 호랑나비 암컷 10여 마리를 잡아 남한에서 잡은 호랑나비 수컷과 교배시켜 1천여개의 ‘통일 나비’ 알을 부화시켰다. 그래서 ‘통일 나비 박사’가 이씨의 이름 앞에 붙을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평양이 고향인 이씨는 한국전쟁 때 부모와 동생을 남겨두고 약혼녀와 함께 월남한 이산가족이다. 당시 그는 250종의 북한 나비 표본 수천개를 가지고 왔다. “나비가 너무 예쁘고, 노랫가락에 실릴 만큼 우리 정서에 익숙해 관심을 갖게 됐죠. 나비를 한두 마리 잡다가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나비는 예쁜 꽃에만 모이고, 어떤 나비는 곱지도 않은 꽃에 앉을까, 왜 나비는 종류마다 색깔이 다를까, 대자연의 섭리에 의문을 품게 된 겁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벌레’를 잡으며 놀았다. 나비나 잠자리를 잡다 넘어져 무릎이 깨진 일도 한두번이 아니다. 이때는 “관찰하는 단계”였다. 중학교 때 생물 관련 동아리에 들어가 취미생활을 겸해 곤충 채집에 열을 올렸다. 나비에 대한 그의 인식도 ‘벌레’에서 ‘곤충’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김일성종합대학 농생물학과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나비를 학문으로 연구하게 됐다. “북쪽 나비는 추운 지방에서 살아 색깔이 어둡고 날개도 작습니다. 남쪽 나비는 색도 화려하고, 열을 발산하기 위해 날개도 큽니다.”
남쪽과 북쪽을 통틀어 남북의 나비를 직접 채집·관찰하고 연구한 학자는 이씨밖에 없다. 그는 북한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2종의 나비 표본도 가지고 있다. 연주노랑나비와 황모시나비. 남쪽에는 서식하지 않는 나비들이다. 지난 8월3부터 20일까지 서울 강변역 테크노마트 1층 특별전시장에서 열린 ‘남·북·해외 평화의 나비축제’ 때도 연주노랑나비 표본은 가져오지 않았다. “너무 귀중해 행여 다칠세라 전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씨는 현재 전남 함평 곤충연구소에서 나비에 대한 교양강좌를 열면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100명의 이산가족 상봉이 합의됐지만 그는 상봉 신청을 하지 않았다. “복권 당첨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 같아서”다. 하지만 몇해 안에 꼭 이루고 싶은 한 가지 소망이 있다. “나비를 연구했던 북쪽의 동창생들과 함께 공동 연구 논문을 발표하고 싶습니다.” 지난 8월14일 이씨는 경기 파주 통일전망대에서 그의 소망을 통일 나비의 날갯짓에 실어 북녘으로 날려보냈다.
황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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