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자의 문제로 다시 돌출되는 것은 이른바 ‘다이어트’로 대표되는 ‘몸의 이미지 관리’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간 2조원 정도의 돈이 다이어트에 쏟아부어지고 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도 여덟 번째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하니, 가히 다이어트에 관해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욕망할 만한 몸’을 가지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죽음조차 무릅쓴다. 약간의 말장난을 하자면, 다이어트가 아니라 다이이트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굶어라. 먹으면 죽는다”? 현대사회에서 몸이 삶의 전면에 부상하는 이유는 중요한 문화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몸이 인간에게서 존재 발현의 매개체로 인지되기 시작한 것은 생각처럼 오래된 일이 아니다. 몸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생산수단이므로 지배자들의 관리대상이었다. 그것을 아름답게 꾸며서 존재감을 만끽하는 것도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몫이었다. 게다가, 몸은 늘 그 가변성으로 인해 정신에 비해 무력하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져왔다. 이것이 인간이 욕망을 효과적으로 다스려야만 좀더 나은 성취에 이를 수 있었던 근대까지 지속된 몸에 대한 전반적인 관점이었다. 인간은 몸보다 훨씬 더 항구적이라고 여겨지는 정신적 가치들에 기대어 자신의 삶을 영위해왔다. 그러나 이제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신도, 형이상학도, 존재의 면면함에 대한 감각을 부여해주던 공동체도 없다. 남아 있는 것은 ‘욕망하는 기계’인 나, 특히 나의 육체뿐이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인간의 육체는 존재의 실감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매개체로 다시 인간 풍경의 전면에 떠오른다. 따라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나의 육체를 꾸미고 가꾸는 것, 그것이 늙음에 효과적으로 저항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 주는 것, 그것을 비난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나는 육체를 기획의 수단으로 삼는 일체의 시도가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보고 있지는 않다. 아름다운 몸은 주체의 자기 실현을 보장해주는 매우 구체적인 수단으로서 의미를 부여받는다.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몸의 기획은 존재에 관해 이렇다 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대중으로 하여금 존재를 발현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길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다이어트는 문화적으로 수긍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정신을 채우지 않으면…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주체의 발현을 위해 다시 심각한 고려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몸에 대한 기획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다시 자본이 장사를 위해서 대량으로 퍼뜨리는 이미지에 예속돼가고 있다. 몸을 관리하는 시스템도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따른다. 돈이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든다. 대중은 접근도 해볼 수 없는 정보들, 대중은 사용할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이 몸의 이미지 뒤에서 음험한 미소를 흘리고 있다. 그것은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다시 몸을 예속시키고 있다. 몸은 주체가 아니라 다시 객체가 돼가고 있다. 몸은 좀비처럼 달성되지 않는 갈망의 실현을 향하여 텅 빈 채 달려간다. 그 육체의 주인은 당신이 아니다. 그 육체의 주인은 육체에 대한 이미지를 팔아 돈을 버는 자본가들이다. 현대사회는 치열한 자기 성찰성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 정신없는 상황 안에서 언제라도 유령의 처지로 떨어져버리고 만다. 다시 정신을 채우지 않으면, 이번에는 몸이 정신을 잡아먹을 것이다. 김정란/ 시인·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