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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쥐꼬리 월급에 풀칠도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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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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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 노동자… 시간당 2천원도 되지 않는 서글픈 삶

사진/ 아파트 청소용역인으로 일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 월급은 50만원에 불과하다.(이정용 기자)
“뼈빠지게 일해도 한달 44만원밖에 못 받아요. 남편은 병들어 누워 있는데 병원비 대고 나면 어떻게 먹고살란 말입니까?”

인천의 한 의료원에서 청소일을 하는 정아무개(62)씨는 “아무리 고된 일을 해도 좋으니 1만원이라도 월급이 올랐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이곳에서 일한 지 3년8개월 됐지만 처음 들어올 때 받았던 44만원 그대로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치솟아도 의료원쪽은 임금인상이란 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고 있다. 그 역시 임금인상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처지다. “내가 먼저 월급을 올려달라고 했다가는 그나마 있는 이 일자리도 잃을 게 뻔하잖아요.” 그의 5월 급여명세서에 적힌 기본급은 34만5천원. 밤 늦게까지 일해 받는 연장근로수당과 남들 쉬는 날에도 일해 받는 휴일근로수당을 합쳐 그의 월급은 44만원으로 찍혀 있었다. “며칠 전, 새로 계약을 맺을 용역회사 직원이 와서 임금을 3만원 줄이겠다고 했는데…”라며 채 말끝을 잇지 못한 정씨의 얼굴에 검은 설움처럼 그늘이 드리웠다.

연장근로에 휴일근로 해도 고작 44만원


부산의 한 백화점에서 7년째 청소일을 하는 김아무개(60)씨도 정씨처럼 ‘먹고살기조차’ 힘들 정도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오전 9시에 나와 저녁 8시까지 9층 백화점을 층마다 돌며 밤낮으로 쓸고 닦고 일해봤자 김씨가 받는 임금은 한달 38만원. 일터가 백화점이다보니 휴일도 없다. 그렇게 쉬는 날도 없이 일하지만 회사는 특근수당이나 연장근로수당을 한푼도 주지 않는다. 상여금이 있을 턱도 없다. 백화점 지하 보일러실의 차가운 바닥에서 박스를 깔고 앉아 잠깐 쉬다보면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김씨가 받는 한달 38만원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협하는 살인적인 저임금이다. 현재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1865원, 하루 8시간 일한다치고 월급으로 따지면 42만1490원이다. 하지만 이 최저임금은 각종 수당과 상여금을 뺀 통상임금이다. 38만원을 받는 김씨뿐 아니라 수당까지 다 합쳐 44만원을 받는 정씨도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셈이다.

이렇듯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들이 꼭 나이 많은 노동자들에 국한하는 건 아니다. 경기도의 한 대학교에서 청소용역으로 일하고 있는 김아무개(44·경기도 안산시)씨는 여성가장이다. 실직당한 남편과 아들딸 등 4가족의 생활비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의 임금은 기본급 35만원에 각종 수당을 합쳐 한달 52만5천원. 나중에 받을 퇴직금을 쪼개 달마다 임금에 넣기 때문에 그나마 50만원이 넘는다. 생계를 꾸리기 불가능할 정도로 워낙 임금이 낮다보니 아예 퇴직금을 미리 받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일도 힘들지만 더 힘든 건 얄팍한 50만원 월급봉투”라며 막막해 했다.

최저임금제도는 주변부 노동자들의 상대적 저임금을 해소하고 다른 노동자들과의 임금격차를 줄여 소득분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지난 88년부터 도입됐다. 그렇다면 현재 최저임금 혜택을 받고 있는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해 11월부터 최저임금을 1인 이상 전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른 최저임금 수혜 노동자는 상용노동자(임시·일용직 등 비정규직을 뺀 상시노동자) 669만명 가운데 2.1%인 14만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실’은 이 마저도 안 된다. 1200만 노동자 중 적용대상에서 빠져 있는 비정규직 500여만명을 감안하면 실제 최저임금 수혜자는 전체 노동자의 1.1%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런 수혜율은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는 멕시코(17.6%), 프랑스(11.0%), 네덜란드·헝가리·폴란드·미국 등(3.8∼5.1%)과 비교할 때 가장 낮은 수치다. 최저임금 수혜 노동자는 지난 89년 10.7%에 이르렀다가 그뒤 크게 낮아지기 시작해 99년에는 적용대상 노동자 513만여명 중 0.4%인 2만3천여명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제도가 된 셈이다. 그 이유는 물론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낮아 현실을 반영하기 못하기 때문이다. 현행 월 최저임금 42만원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평균임금인 121만원의 34.7%에 불과하다. 게다가 최저임금 노동자는 대부분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조차 못 받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전체 노동자의 평균 임금총액(176만원)으로 따지면 23.9%에 그친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 심의위원(노·사·공익위원으로 구성)이 △생계비 수준 △유사 노동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등을 반영해 정한다. 노동계는 올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적용될 최저임금으로 시간급 2837원, 월급 64만1162원(하루 8시간, 한달 226시간 노동기준)을 요구하는 안을 최저임금위에 제출했다. 이는 전체 노동자 임금의 절반 수준이다. 민주노총 황종일 정책차장은 “최저임금이 그동안 임금 억제수단으로 악용되면서 너무 낮게 책정돼 노동자간 소득격차가 심해졌다”며 “전체 임금노동자 통상임금의 절반 수준인 64만원으로 정하면 최저임금 수혜자는 전체 노동자의 5% 안팎이 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위가 실태 조사한 올해 30살 이하 단신가구의 생계비는 월 79만4166원으로, 노동계가 요구한 64만원은 최저생계비를 충족시키는 것도 아닌 최소한인 셈이다.

최소한의 요구마저 외면하는 사용자 단체

사진/ 의료원과 대학에서 청소일하는 정아무개씨와 김아무개씨의 월급명세서.
그러나 사용자쪽인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시간급으로 2천원을 넘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임금 노동자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을 다 같이 올리는 역할을 한다”며 “시간당 2천원 이하로 묶는 안을 사용자 안으로 최저임금위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최저임금이 전체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불러오는가. 경총이 펴는 논리는 사업장마다 임금협상이, 최저임금이 새로 적용되는 9월 이전에 이미 끝난다는 점에서 곧바로 설득력을 잃는다. 사실 1월부터 12월까지로 돼 있던 최저임금 적용기간은, 최저임금이 전체 임금인상을 가져오는 것을 막기 위해 94년 이후 9월부터 다음해 8월까지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경총은 “봄에 일단 임금을 올린 뒤 최저임금에 미달하면 가을에 또다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조도 많은 게 현실”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경총은 특히 각종 수당과 보너스를 포함시키면 비록 최저임금이 42만원이라 해도 최저임금 노동자의 월급은 실제로 70만∼80만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 42만원이라도 생계 유지는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과연 그런가.

지난 5월31일, 서울 마포구의 한 대규모 아파트단지. 50대 아주머니 3명이 불볕더위 속에서 흐르는 땀을 훔쳐내며 아파트 20층 꼭대기부터 1층까지 청소하고 있었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아파트 복도며 층계참에 쭈그려 앉아 물청소를 하던 김아무개(52)씨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 “보너스도 없고 수당도 없지 뭐. 연월차가 뭐야? 아무것도 없어. 이거라도 해야 밥먹고 사는데 어쩔 수 없지.” 20층짜리 아파트 7개 동을 다른 두명과 함께 3명이서 다 청소하지만 김씨가 받는 월급은 고작 50만원에 불과하다.

사용자뿐만 아니라 정부도 최저임금 대폭인상은 물가상승으로 이어져 경제에 어려움을 준다며 최저임금을 현 수준으로 묶으려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최저임금 적용대상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1.1%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나 사용자가 내세우는 또다른 논리는 최저임금을 크게 높이면 지불능력이 없는 한계기업은 인건비 부담으로 쓰러지고 만다는 것이다. 물론 최저임금 적용 노동자에게 그 이하를 주는 사용자는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처벌받게 돼 있다. 이에대해 민주노총 황종일 차장은 “정부가 세제혜택 등을 통해 중소 영세사업장을 지원해주면 큰 부담없이 더 많은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노동계는 또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취업한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은 18살 미만의 수습 노동자와 △아파트 경비원을 비롯한 감시·단속적 노동자를 최저임금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수습 노동자가 미용실 보조미용사다. 하루 12시간가량 일하는 보조미용사의 월급은 평균 30만∼40만원으로, 미용기술을 배우는 ‘수습’이라는 이유로 혹독한 저임금에 시달린다. 서울경인지역평등노조 미용지부 정석철(29)지부장은 “아무리 기술을 배우는 처지라 해도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그리고 최저생계비를 생각할 때 최소한 60만원 이상은 돼야 한다”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습과 저임금에 시달리다 못해 어렵게 딴 자격증을 던지고 미용실을 떠나는 이가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무대책·정규직의 무관심의 합작품

최저임금은, 그 적용대상을 상용직만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차별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업장 규모와 관계없이 1인 이상 사업장에는 모두 적용되지만 고용형태가 용역직, 임시·일용직 등인 비정규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황종일 정책차장은 “정부 못지않게 그동안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최저임금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 것도 최저임금 수혜율을 1.1%에 불과하도록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현재 전국여성노조와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www.kwwnet.org)는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사이버서명을 받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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