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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여성이 이끄는 ‘몸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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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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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낙태 외친 <슈테른> 사건 30주년… 남성 위주의 문화 뒤흔드는 움직임 활발

사진/ “우리는 낙태한 여자들이다!”는 문구와 사진으로 충격을 던진 독일 시사주간지 <슈테른> 표지.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71년 6월 첫주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테른>은 엄청난 ‘사고’를 쳤다. 그 누구도 입에 올려본 적 없는 완벽한 금기를 깨고 낙태를 표지기사로 다룬 것이다. 당시 독일은 낙태금지조항인 헌법 218조가 맹위를 떨치고 이에 대해 여자들의 볼멘소리가 웅성거리던 시점이었다.

<슈테른>은 표지에 여성 28명의 얼굴사진을 쫙 깔았다. 이들은 독일 역사상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용모를 가졌다고 평가받은 로미 슈나이더를 비롯해 지성과 미모를 갖춘 인기 절정의 여배우들과 문화계 인사들이었다. 이들의 얼굴을 배경으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제목은 이랬다. “우리는 낙태한 여자들이다!” 본문기사에는 이 특종을 터뜨린 알리스 슈바르처와 그의 어머니 에리카 쉴링을 비롯해 21살의 아가씨로부터 77살의 할머니까지 낙태한 여성 374명의 실명과 주소가 실려 있었다.

낙태한 여배우·문화계 인사의 ‘인간선언’


사진/ 독일 여성들은 낙태금지조항 철폐를 위해 30여년 동안 보수세력에 맞섰다. 여성을 범죄자로 만드는 낙태금지조항 218조 철폐를 위한 토론회.
알리스 슈바르처는 현재 독일 최고의 저널리스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입지전적 인물이지만, 당시에는 동네신문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던, 고졸학력이 전부인 풋내기였다. 하지만 그가 준비한 특종의 파장은 엄청났다.

찬반 양쪽으로 갈린 사람들이 연일 시위에 가담하고 서명운동이 잇따랐으며, 몇몇 주에서는 검사가 앞장 서서 낙태 사실을 고백한 여자들을 색출하고 기소했다. 보수언론들은 <슈테른>에 실린 고백녀들을 싸잡아 프리섹스를 외치는 미친년들이고 염치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천한 것들이라고 매도했다. 그리하여 낙태금지조항을 둘러싸고 길고 끈질긴 싸움이 시작됐다.

20세기 독일의 여성운동은 이렇게 불이 붙었다. 그 무렵 한국의 신문들은 이런 유의 기사를 ‘해외토픽’난에서 다루곤 했다. 당시의 해외토픽은 점잖은 이들이 우스갯거리로 삼는 소재를 제공하는 지면이었다. 오늘날 연정(聯政)을 통해 독일의 여당이 된 녹색당의 출현이나 그 무렵 시작된 이혼율의 급증 같은 변화도 가십거리쯤으로 다뤄지곤 했다. 지구촌 곳곳의 사회변동을 말해주는 중대한 ‘징후’들과 성숙한 사회를 향한 ‘갈등’들은 그래서 80노파를 향한 18살 청년의 순정이라든가 늙은 호색가의 팔에 안긴 반라의 금발미녀, 복권 당첨으로 졸부가 된 다음날 벼락 맞아 숨진 기구한 인생 등과 뒤죽박죽 섞인 채 실리곤 했다.

하지만 우리의 가십란에 그렇게 다뤄졌던 이 <슈테른> 사건은 독일사회의 변화에 굵은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30년 전 유럽의 낙태문제는 완강한 가톨릭의 전통과 포개져 지금 우리의 경우보다 훨씬 더 억압적이었다. 멀쩡한 여자들이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끝에 몰래 낙태해야 했고, 심지어 발각되면 처벌까지 받았다. <슈테른>에 등장한 여성들은 사회에서 매장당할 각오를 하고 일을 벌인 것이다.

통일 뒤 동서독의 구헌법도 통일됐지만 낙태금지법은 최후의 조항으로 통일돼지 않은 채 남았다.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독소규정은 없어졌지만 낙태금지분위기는 여전하다. 최근 이런저런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한 경우에 한해 3개월 내에서만 낙태를 허용하고 그 외에는 엄격히 금지하는 걸로 개정됐지만, 아직도 최종안의 결정은 보류된 상태이다. 논란이 심하다보니 218조는 거의 고유명사처럼 돼버렸다. 완강한 가톨릭적 전통을 고수하는 독일사회에서 낙태는 여전히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슈테른> 사건을 계기로 많은 독일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에 눈을 떴다. 유럽의 경우 낙태를 둘러싸고 여성운동가들이 목소리를 내는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똑같은 가톨릭 전통이라도 낙태율이 훨씬 낮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와 자의식을 갖고 배짱을 키운 여성의 경우 원치 않은 임신의 빈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인간관계의 본질을 온전히 바꾸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독일의 여성운동가들은 이런 변화를 밑천으로 절대 바뀔 수 없을 것 같은 사회의 관행, 일상의 습관들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내 몸은 남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사진/ 여성들이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다.
라인 강변의 가장 오래된 성루, 독일 퀼른의 바이엔탑을 장악해 여성문서보관소로 개조한 도서관에서 슈바르처는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여성적 시각에서의 새로운 도서분류법을 만들어 쓰고 있다. 가사노동, 가정폭력, 성차별, 성폭행, 이런 것들은 과거에는 개인들의 문제일 따름이었다. 모두들 조금씩만 참고 살면 그만인 소소한 일상의 문제였다. 그런데 독일 여자들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어머니에게 툭하면 손찌검을 하는 남자는 워낙 성질이 더러운 우리 아버지뿐인 줄 알았는데 너무나 많은 세상의 딸과 아내들이 아버지와 남편에게 손찌검을 당하고 살고 있구나. 이 사실에 마을의 아녀자들이 함께 뛰쳐나와 분노를 터뜨린 셈이다. 피임 하나 제대로 못해 뱃속의 생명을 죽여야 했던 ‘칠칠맞은 살인녀’인 까닭에 그 누구에게도 감히 ‘낙태’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는데, 그렇게도 끔찍한 고통의 기억이 모두 스스로 자기 몸의 주인이 아닌 성적노예의 신세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은 순간 이런 절박한 사정은 더이상 기구한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중요한 정치적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여자들은 “내 몸이 남자들의 것”이라고 믿게 했던 막돼먹은 사회제도에 항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독일사회는 법과 제도뿐만이 아니라 언어와 생활습관에까지 여성주의가 개입하게 됐다.

지난 30여년 동안 우리 사회도 많이 바뀌었다. 절대 바뀔 것 같지 않던 가족마저도 해체의 위기에 놓였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혼율은 특히 30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이 증가하여 아시아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여자들의 취업률이 느는 것에 비해 출산율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운동이 일상의 문화로 정착되며 이런 과정을 먼저 겪은 유럽의 경우, 가족해체가 아니라 가족의 다양성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다양성이 어떤 모습으로 수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있다.

독일 연방국회에서 발행한 국회의원 수첩을 보면 다양한 가족형태의 양상이 드러난다. 기혼과 미혼의 이분법 대신 무려 22종류의 가족형태로 분류돼 있다. 독신, 동거, 동거 사이의 자녀 유무, 결혼, 결혼 사이의 자녀 유무, 사별, 사별 사이의 자녀 유무, 이혼, 이혼 사이의 자녀 유무, 게이, 레즈비언 등의 통계가 점잖은 의원나리들의 신상 명세와 함께 나와 있는 것이다. 이는 누구의 의지나 결단이 아닌 자연스런 사회변화의 결과일 것이다.

이런 변화에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 이들은 여성운동가들이다. 서구의 여성운동은 이제 엄연한 문화혁명으로,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사회혁명으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더이상 어머니의 삶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나가버렸는데, 세상의 절반이 자기 권리를 찾아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기로 작정했는데, 나머지 절반이 어떻게 옛날 식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겠습니까?”

여성운동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천주교 신자이자 주지사를 두 번째 연임한, 60대의 보수당 남성 에른스트 알브레히트 박사가 한 이야기이다. 최근 독일에서 집계된 자료를 보면 2000년 현재 남자 세명 중 한명꼴로 여자친구 혹은 아내와 참으로 동등한 입장에서 진정한 파트너의 관계를 맺고 싶다고 응답했고, 두명 중 한명은 남녀평등은 더욱 널리 적용되고 확산돼야 하며 여성운동은 더욱 큰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여성이 경영하는 경제특구 세우기도

사진/ “마음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실천한다.” 독일 여성들은 낙태문제를 통해 스스로가 몸의 주인임을 깨달았다.(SYGMA)
지난 1994년 의문사한 녹색당의 공동 창립자 페트라 켈리. 80년대 중반부터 이 여성의 곁에는 군축과 반핵운동 등 평화운동의 전선에 늘 함께 섰던 바스티안이 있었다. 그는 원래 NATO주둔 사령관이었다가 머리로 생각하고 몸으로 행동하는 대신 마음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지순하고 강인한 켈리의 말과 행동에 감화를 받고 ‘사랑에 눈이 멀어’ 삶의 지향을 바꾼 대표적인 남성이다. 켈리보다 서른살이 더 많은 이 노신사의 ‘실존적 변신’은 어쩌면 오늘날 한국의 40대 남성이 경험한다는 ‘자아 찾기’와 닿아 있는 점이 있다. 특히 과도하게 부풀리고 왜곡된 남성중심주의의 신화에 지친 이들에게는 더욱 상통하는 면이 있을 것이다.

사민당 총재였던 라퐁텐이 늦둥이 기르는 재미에 푹 빠져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버리고, 국민들 앞에서 갓난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블레어 총리가 더이상 남세스런 모습이 아니라 당연한 자기권리를 찾는 남자로 보이는 것은 지난 30년 동안 여성운동이 그만큼 사람들의 감수성과 삶의 가치를 변화시켜놓은 결과이기도 하다.

21세기의 비전을 제시하는 하노버 엑스포가 지난 4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렸다. 이곳에서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전세계에서 몰려온 여성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프로젝트는 여성경제특구였다. ‘경제적 독립 없이 정신적 독립도 없다’는 자각은 이제 성적 정체성을 확립한 여성들이 이 세상을 전혀 새로운 곳으로, 가부장제의 잔재를 말소한 새로운 형식으로 꾸려간다는 용의주도한 도시계획이다.

여성을 정치적으로 대접하는 제도를…

사진/ 최근 국내에서도 여성 관련 문제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모성보호 관련법 개정을 주장하는 여성 노동자들.(박승화 기자)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남성중심사회에 신물이 난 아줌마들이 모여서 만드는 여성경제특구는 서유럽의 대도시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대안사회의 전형이다. 베를린의 ‘암컷경제’, 브레멘의 ‘베기네’, 뮌헨의 ‘여자가 산다’ 등 대표적인 여성경제특구 모임에 가면 화들짝 놀라게 된다. 매맞고 사는 서러운 여자들의 하소연이 아니라 두팔 걷어붙이고 새로운 세상을 꾸려가자는 여자들의 수다와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하기 때문이다. 프로이센의 후예들이 쓰고 다니던 굳은 가면을 벗어버리고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넉넉한 인간의 얼굴을 한 독일로 거듭나게 하는 힘은 이렇듯 지역마다 생겨난 여성들의 자치모임에서 생성되고 있다.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난 여성모임에서 먼저 시작한 일 중 하나는 몸에 대한 공부였다. 여자들끼리 모여 가랑이를 벌리고 서로의 몸 안을 들여다보고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며 그동안 성에 대해 배우고 알았던 모든 지식이 여자들의 몸에 그렇게도 맞지 않는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그건 모두 남자들이 생각해낸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30년 전 촉발된 여성운동은 이른바 ‘성해방’이라는 의미심장하고 애매한 개념과 뒤엉켜 쓸모없는 오해를 산 점이 많다. 성해방? 이는 무엇보다 극명하게 68혁명을 특징짓는 말이다. 욕망과 성장 위주의 경제모델, 이데올로기의 방편이 되어버린 정치제도, 위선적이며 권위적인 가족과 종교윤리 등 기성세대가 물려준 모든 것을 의심하고 거부하며 거기에서 이탈해야 한다면 그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금기인 성윤리를 타파해야만 했다. 성에 대한 시대적 요청! 답은 간단했다. “배타적 남녀관계는 내던져라. 다양한 파트너를 갖도록 하고, 어떤 경우에도 상대를 독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건 부르주아들의 천박한 습속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건 운동권 ‘남자’애들의 멋진 철학이었고, 거기에 휘둘리던 여자들은 결국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노라고 주저앉았다. 정의를 외치는 신세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갈망하는 당시의 여자들에게 그러나 성해방의 물결은 자유와 행복을 선사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기만과 불감증을 심화시켜 줄 따름이었다.

그뒤 여성들의 현안인 낙태문제와 취업, 가사노동을 둘러싼 논의가 시작되고 심도를 더해갈수록 여성문제의 핵심은 역시 성(性)의 불평등임이 드러났다. 남자들의 성해방이 ‘파트너와 테크닉의 경계를 넘어서’였다면, 여성의 성해방은 남성에게 종속된 노예 같은 성관계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동등한 파트너의 관계를 모색하자는 쪽이었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가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대립하는 이런 상황은 지난 30년 동안 점점 더 악화되었고, 언제부턴가 ‘성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됐다. 서구에서는 낙태율뿐만 아니라 출산율 또한 급격히 줄어들었다. 2000년 현재 35살에 해당하는 여성의 3분의 1은 무자녀로서, 이들은 소리소문없이 출산파업을 감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실은 이미 비슷한 사회적 변동이 시작된 우리 사회에도 상당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세계의 여성과 관련한 자료에서 한국이 인용되는 사례를 보면, 첫째가 여아살해요 둘째가 성폭력이다. 여성을 ‘없는’ 존재로 치는 우리의 호주제는 해당하는 개념이 없어 설명조차 쉽지 않지만, 불과 30년 전 유럽에서 남편이나 아버지의 승인 없이는 부동산 매매도 어려웠던 사정을 상기한다면 뭐 그런 망측한 제도가 잔존하려니 금세 알아듣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관련 쟁점들이 부글부글 끓는다. 30년 전 독일의 여성들이 낙태금지문제를 전면에 걸고 불꽃을 지필 수 있었다면 우리 사회는 다양한 분야, 다양한 공간에서 여러 문제들이 동시에 파닥파닥 일렁인다. 여성노동자의 비정규직화, 호주제, 모성보호법, 청소년성매매, 성폭력·가정폭력, 여아낙태문제까지 성차별은 뿌리깊고 넓게 퍼져 있다. 그러나 정책입안자나 관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문제들은 경제나 국방에 비해 하잘것없는 사소한 사항으로 분류될 뿐이다.

한 국가의 경영을 기획하려면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우선돼야 한다. 95년께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해당하는 ‘대전환 21’이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된 일이 있다. 국가경영전략을 책임지는 내로라 하는 관료와 전문가들이 대거 결합했다. 이 프로젝트팀은 유사한 프로젝트를 먼저 진행한 독일에 가서 자문을 구한 일이 있다. 한국의 팀은 20세기와 21세기를 극명하게 구분짓는 중대한 변화요인을 세 가지로 압축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정보화사회, 국경없는 시장경제, 그리고 환경위기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 발제를 듣던 독일 니더작센의 주지사 알브레히트 박사는 고개부터 크게 내젓기 시작했다.

“제일 중요한 게 빠졌습니다. 냉전과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기껏해야 100년짜리였어요. 지금 5천년의 정치제도가 무너지고 있는데, 이 엄청난 변화를 계산에 넣지 않고 어떻게 국가를 경영할 청사진을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21세기 변화발전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될 여성주의는 왜 빠져 있느냐는 지적이었다.

21세기 발전의 동력은 여성에게 있다

에이즈를 예방하는 안전한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보건부 장관이 발기한 남자의 성기모양 석고상과 콘돔을 들고 텔레비전에 등장해 안 찢어지게 꼼꼼히 덮어씌우는 요령을 설명하는 점잖치 못한 나라, 독일. 그러나 이는 지난 30년 동안 독일의 여성운동이 바꿔놓은 사회분위기가 아니었다면, 그들이 삶의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체험을 해보지 않았더라면 쉽게 수용되지 않았을 접점이기도 하다.

김재희/ <이프> 편집위원 gaia21@un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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