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독도를 지킨다
등록 : 2001-06-07 00:00 수정 :
지난 6월2일 오전 독도 정상. 바닷바람을 벗삼아 두 젊은이의 뼛가루가 뿌려졌다. 독도수호대 사이버사업국장 김제의(27·사진 오른쪽 끝)씨와 서울경기지부 이미향(28)씨는 이로써 영원한 독도지킴이가 됐다. 남은 뼛가루는 대한민국 영해 12리의 시작을 알리는 표식 아래 작은 돌무덤이 되어 묻혔다.
두 사람은 5월27일 오후 독도수호대 전국총회를 마치고 계룡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다 타이어 펑크로 승합차가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이튿날 끝내 숨을 거뒀다. 함께 타고 있던 동료 5명도 중경상을 입었다.
지난해 11월 말 <한겨레21> 336호 ‘사람과 사회’ 취재를 위해 독도수호대 사무실을 찾았을 때 김씨는 운동복 차림이었다. 끼니를 사무실에서 해결하며 독도탐사대 조직, 네티즌 교육 등으로 밤낮없이 컴퓨터에 매달려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피곤한 기색없이 발랄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며 독도수호대의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했다. 웹프로그래머였던 김씨는 독도수호대 홈페이지(
www.tokdo.com) 제작을 해주다 아예 이 단체의 상근활동가로 진로를 바꿔버린, 자타가 공인하는 ‘독도 열애자’이기도 했다. 그는 취재 당시 “우리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와 감정적인 국민의식”을 일본의 경우와 비교하며 영토주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래서 한달 활동비 5만원으로 버티며 독도수호대를 지켰던 것일까. 독도수호대 김점구 사무국장은 “사고 전날에도 회원들을 위해 라면을 끓이고 온갖 뒤치다꺼리를 도맡았던 소중한 일꾼이었다”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함께 숨진 이미향씨 역시 활동비 한푼 받지 않고 독도수호대 서울경기지부 연락책을 자임했던 열혈회원이었다.
최근 독도수호대는 열악한 재정난으로 고민이 많았다. 세 차례 총회를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 전날 마지막 총회에서 “유료회원제로 조직운영방식을 바꿔서라도 활동을 이어가자”고 결의했다. 그런 가운데 김제의씨는 ‘독도지키기 동해안 7번국도 걷기행진’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그를 아끼는 한 회원이 행사 때 신으라며 운동화를 선물해줬기 때문이다. 독도수호대 동료들은 그의 49제가 열리는 7월14일 부산 도착을 목표로 한번도 신지 못한 김씨의 운동화를 번갈아 신으며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부산까지 걸어갈 예정이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