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사실상 ‘쿠데타’였다”

362
등록 : 2001-06-07 00:00 수정 :

크게 작게

도전인터뷰/ ‘질서있는 쇄신론’ 주장한 김민석 의원

있을 수 없는 ‘인사권자에 대한 도전’… 성명파와는 절차뿐 아니라 내용 등에서도 이견

그는 한때 정치권 안팎에서 개혁소장파의 리더로 불렸다. 그가 최근 위기를 맞았다. 지난 5월31일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내세운 ‘질서있는 쇄신론’ 때문이다. 국회의원 김민석(37)은 이날 인적 쇄신을 주창하며 성명을 발표하고 당직을 내던진 이른바 ‘성명의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당 기강과 규율을 어겼다며 절차상의 하자를 문제삼은 것이다.

쇄신 대상으로 지목된 ‘동교동 구파’에 속한 한 의원은 “게티즈버그 연설 이후 최고의 명연설”이라고 그를 극찬했다. 그러나 상당수 개혁성향 의원들은 “경악”했다. 김 의원을 ‘동교동의 경비견’으로 묘사한 언론도 있다. 그의 홈페이지(www.ms2030.or.kr)에도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치 모리배들의 모습을 당신에게서 본다”는 비판은 차라리 점잖다. “사진을 보는 순간 현기증과 역겨움으로 할말을 잃는다”다는 원색적 비난은 물론 “과연 당신은 누구냐”, “김영삼씨가 말한 인정, 보스, 조직 위주의 정치와 뭐가 다르냐”는 본질적 의문도 줄을 잇고 있다.

‘김 의원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행동했을까….’ 기자는 이런 의문을 갖고 6월2일 의원회관 634호로 그를 찾았다. 김 의원은 기자에게 “독하게 물어달라”고 주문했다. 먼저 경위부터 따져보기로 했다.


-5월31일 기조발제자로 나선 과정은.

=이번 (서명)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고민해온 입장에서 강한 분노를 느꼈다. 반드시 올바른 방향으로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일 아침 내가 아니면 말할 사람이 없겠다 싶어 발제를 자청했고, 오후 2시부터 2시간 정도 발제문을 썼다.

-정균환 의원(총재특보단장) 등 동교동쪽과 의논한 결과라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분명히 아니다. 나는 동교동이 잘 나간다 할 적에도 왔다갔다한 사람이 아니다. 마포 사무실(권노갑 사무실을 지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동교동에서 그 사실을 너무 잘 알 것이다. 김민석이가 그 정도는 아니다. 그 정도 안 해도 충분히 정치한다.

그는 동교동과 유착설을 정색하며 부인했다. 그러나 서명의원쪽 말은 달랐다. 이들은 “김 의원의 발언내용이 정균환 단장쪽에서 줄곧 얘기하던 내용이고, 지난해 최고위원 경선 때도 소장파들이 김 의원을 공개지지하는 대신 ‘1인 보스정치 철폐’와 ‘계파정치 청산’을 공개 선언할 것을 요구했지만 끝내 마다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동교동과 가까웠고 과거부터 계속 동교동을 의식해왔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독한 마음으로 따져 물었다.

-동교동과 친분이 두텁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권노갑 전 최고위원하고….

=지난번 전당대회 때 동교동에서 뭐 저를 도와줬습니까? 오히려 다른 분들을 도와줬으면 도와줬지.

-하지만 지난 4·13총선 때 ‘최재승-김민석’ 라인에 의해 386 신진들이 권노갑 최고 집을 드나들었다는 게 정설인데.

=나는, 나는요…. 원칙이 아니면 절대 안 한다. 다시 말하지만 사실관계가 아니다. 총선 때 30대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천 심사위원이 됐지만, 젊은 사람 누구한테 동교동 가보라고 말한 적 없다. 동교동에 가라고 말할 이유도, 동교동과 상의해 공천심사를 할 이유도 없다. 그들 중 누가 동교동 왔다갔는지 알지도 못하고…. 갔다면, 그건 그분들 문제다.

-기조발제 때 절차의 정당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현재 여당 상황이 절차의 정당성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전혀 그렇지 않다. 내 발제 요지는 쇄신이 우선이지만 반드시 기강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집권당답게 질서있는 쇄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냐.

=믿고 싶지 않지만 성명의원들 사이에도 친소관계에 따라 쇄신 대상에 누구를 넣느냐 마느냐, 또 특정인만 부각하는 일이 있었다. 게다가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했다. 이 정도 상황에서, 이 정도 파문이 일 것이라면…. “국민이 알 것”이라고 막연하게 얘기할 게 아니라 당당하게 밝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정정당당한 자세다.

-발제문 앞부분에서 쇄신의 필요성을 일부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성명의원들을 조지고, 쇄신 대상으로 지목된 인사들을 옹호해준 것 아니냐.

=임기 후반기 집권당의 쇄신 대상에는 국민이 바라는 국정 쇄신 대상 찾는 일과 동시에 당의 절차와 민주적 기율을 무시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확신한다.

-결국 “집권당 쇄신”이 절차를 무시할 정도로 급하지는 않다는 것이냐.

=그렇게 말한 게 아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그에 맞는 절차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여론만 반영해 당의 질서와 존속을 무시하면 실제는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국민여론 반영해 적극 쇄신하는 것이 첫째 과제지만, 레임덕을 예방해 임기 후반 개혁을 단단하게 할 수 있도록 대오를 유지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당직자가 의총소집, 지도부 면담 등을 요청·건의하는 과정없이 바로 언론 앞에서, 그것도 당직을 던지는 행위는 절대 합리화될 수 없다. 이 문제는 누가 뭐래도 공개토론할 용의가 있다.

그는 이어 이른바 ‘대통령과 면담 논란’에 대해 구체적인 비판을 시작했다.

2차성명도 문제다. 면담이 요구되고 대통령의 허락에 의해 성사된 상황이었다. 상식에 의해 추가행동은 하지 말자고 합의되고 끝난 것이다. 이것을 묵살하고 논의에 참가한 다른 사람 동의를 획득하지 않은 채 몇몇 소수가 그냥 집단행동을 했다. 어떻게 합리화되냐. 동지간의 신의, 민주적 합의에 대한 이해,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훼손… 이런 문제가 있다. 순수성에도 의혹이 있다.

대통령과의 면담문제로 논란을 옮겨가는 김 의원의 태도는 최근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과 정균환 의원이 ‘대통령 면담’을 의논하는 자리에 배석했던 천정배 의원은 “김 의원은 그 자리에도 없었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 오히려 김 의원의 발언 의도에 의혹을 제기했다. 서명의원쪽 한 핵심관계자는 “김 의원은 당시 2차성명을 발표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론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자리를 떴다. 그런데 성명발표를 문제 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아예 몇몇 소장파들은 “그동안 개혁소장파들의 논의 과정에서 배제돼온 데서 고사 위기를 느끼던 김 의원이 빌미를 잡아 역으로 치고 나온 게 아닌가 싶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당 윤리위에서 진상을 조사하자”고 맞받아쳤다.

윤리위 소집해 진상을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것을 조속히 정리하지 않으면 당과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의 절차에 따라서 적절하게 응할 생각이 있다. 결과에 따라 윤리위는 상응한 조처를, 당사자는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정동영 최고위원의 지시를 받은 몇몇 의원이 돌출행동을 했다는 것인가.

=당의 공식절차에 따라 이야기하겠다. 내 입장은 정 단장 얘기가 100% 사실이라는 것으로 대체하겠다. 성명의원의 충정은 99% 이해한다. 그렇지만 1%는 순수성을 인정할 수 없다. 그 부분이 밝혀져야 한다.

김민석 의원은 어쨌든 이 문제를 확대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재정·김성호 의원 등은 “사소한 것을 걸고 넘어져서는 안 된다. 왜 절차문제와 요구내용의 중요도를 동일시하는지 모르겠다”고 김 의원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1% 순수성이 의심돼도 쇄신론이란 대의가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최소한 침묵하는 쪽을 선택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절대 그렇지 않다. 내 발제문은 이번 과정에서 느낀 분노의 3분의 1도 안 담았다. 어떤 경우든 명분이 옳다고 모든 것을 무시하고 다른 중요한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사이비라고 생각한다. 당과 정치 장래를 길게 생각한다면 침묵하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쇄신대상으로 지목된 쪽이 오히려 반색한다. 결국 1%의 의혹 때문에 99% 뜻을 함께한 의원들의 힘을 뺀 것은 잘못 아닌가.

=난 그렇게 안 본다. 모든 게 사필귀정이다. 나는 쇄신과 기강확립,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개선되지 않는다면 쇄신 과정에서 당의 모든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홈페이지에 “김민석이 드디어 정체를 드러냈다”는 등 비판이 많다. 유권자들은 김 의원이 쇄신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민심을 중시하지만 일시적인 여론(비판)은 때로는 원칙과 진실에 입각해 감수해야 한다. 엄청나게 두들겨맞을 것이라 생각했고, 나한테 손해가 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별로 의탁할 생각이 없는 대상과 가깝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와 기반을 함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정면비판을 받으면서 혼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유는 하나다. 그게 옳으니까.

-정동영 의원에 대한 라이벌 의식의 표현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정 최고를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없다.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뜻인가.

=라이벌이 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김 의원의 충정을 십분 이해한다고 치자. 하지만 권위나 기강이 흔들리는 더 큰 원인은 빗나간 충성심이나 ‘비선조직’의 영향력 행사 아닌가. 좀 거칠게 여론을 담아 성명을 냈기 때문에 기강이 흩어진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한데.

=조직 장과 조직의 기본질서, 조직 구성원 동지들간 합의, 이것은 기본이다.

-그렇다면, 김 의원도 성명파나 추미애 의원 등이 제기한 권노갑 전 최고위원, 박지원 수석 등 이른바 ‘비선’의 문제점에는 동의하는 것이냐.

=내 입장은 이미 다 밝혔다. 그 이상도 이하도 가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성명파는 “꼭 집어서 증거를 대라”면 어렵지만 권 전 최고 등 비선조직이 위기의 본질이며 핵심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나는 서명의원의 문제제기 방식뿐 아니라 내용에도 의견을 많이 달리한다. 이미 대통령이 이유를 막론하고 (법무장관을) 조기경질한 상황이다. 적어도 인사권자가 판단한 상황에서 그 의도와 배경을 이해하거나 확인하지 않고 자질문제를 가지고 직격탄을 날렸다는 것은 인사권자에 대한 도전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쇄신을 주장했지만 사실상 쿠데타다.

김 의원은 인터뷰 내내 “무지무지 고민 많이 했고, 눈물 날 정도로 가슴아팠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강조하며 “쇄신과 기강잡기, 두 가지 다 단호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