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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공인된 살인’을 그만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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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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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교도관이었던 한 노인이 사형제폐지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지난 6월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집행현장에서 본 사형수’를 발표한 고중열(79)씨가 그 주인공이다.

53년부터 72년까지 19년간 교화업무를 담당했던 고씨는 조봉암 선생을 비롯해 200여명의 사형집행현장에 입회했다. 깡패이든 간첩이든 정치범이든 그가 마지막 길을 지켜본 이들의 죽음에는 “사연 없는 게 없었다”고 한다.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사람, 억울하게 죽는다고 울부짖는 사람, 종교에 귀의해서 편안한 얼굴로 기다리는 사람 등 죽음을 대하는 자세도 제각각이었다. 간첩과 몸이 묶인 채 사형집행된 조봉암 선생의 경우 “이승만에게 밀려서 가게 됐다”고 담담하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집행날짜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형수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는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도 국가의 이름으로 사형하는 것은 일종의 보복살인이자 죄악”이라는 생각을 굳혔다고 한다. 특히 돈없고 백없어 억울한 살인누명을 쓴 이들과 서로 다투다 공교롭게 상대가 사망하는 통에 살인자가 된 이들을 보면서 “국가를 대신한 판·검사라도 신이 아닌 이상 오판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사형판결은 국민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또다른 범죄가 아닌가” 하는 혼란에 시달렸다고 한다.

정년퇴임 뒤부터 줄곧 성당에서 활동한다는 고씨는 팔순을 앞둔 노인답지 않게 목소리도 크고 움직임도 활기찼다. “정부가 사형제를 고수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줘서 범죄를 예방하자는 것인데, 범죄자는 반드시 잡힌다는 수사력에 대한 신뢰회복이 더 중요하다. 또 흉악범에 대한 국민들의 법감정을 예로 드는데, 사형은 결코 죗값을 치르는 처벌이 될 수 없다. 밧줄에 걸려 숨이 끊어지는 시간까지는 불과 5분이다. 종신형이든 무기징역이든 범죄자가 자신의 죄를 알고 진정으로 죗값을 치르도록 하는 다른 처벌방법은 국민적 합의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현재 사형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거나 사실상 폐지한 나라는 108개국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48년 이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이 모두 902명. 김대중 정부에서는 한 차례도 사형집행이 없었으나 현재 40∼50여명의 사형수가 수감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주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협의회 등 6개 종단은 지난 1월 사형제도 페지를 위한 범종교연합을 발족해 다양한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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