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이 엄마는 ‘열네살 투사’
등록 : 2001-05-29 00:00 수정 :
‘유가족’이라는 이름에는 살아 있는 가족의 삶을 수동화하려는 ‘혐의’가 있다. ‘남아 있는 가족.’ 이 이름 안에서, 살아 있는 자는 죽은 자의 그림자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산화한 아들·딸·형제·자매의 뜻을 이어가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의 이름은, 그런 면에서 볼 때 부적절하다. 그들은 결코 그림자가 아니다.
오영자(60)씨는 유가협 회원들 가운데서도 가장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도 하루에 2∼3군데씩 집회에 나선다. 지난 5월10일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사일방어(MD)체제 반대시위를 벌이다 경찰관들에게 팔다리를 들려 나왔고, 지난 겨울엔 기록적인 혹한을 견디며 열흘 동안 명동성당 앞에서 국보법 철폐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박선영’은 오씨의 죽은 딸 이름이다. 서울교대 3학년에 다니던 지난 1987년 2월20일 만 21살 꽃다운 나이에 ‘죽어 깨어나라, 진정 역사가 원하는 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라’라는 글을 남기고, 서울 종로구 창신동 자취방 부엌에서 목을 맸다. 비민주적인 서울교대의 학사운영과 폭압적인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과 가족의 안타까운 반대 사이에서 택한 길이었다.
다음날 죽은 딸을 마지막 보내는 자리에서 어머니 오씨는 치마를 걷어붙이고 홀연 딸의 주검 위로 올라가 사지를 맞대고 엎드려 딸의 차가운 입술에 자신의 입을 맞댔다. “아가! 잘못했다. 내가 너의 고통을 너무 몰랐다. 약속할게. 네가 하던 일을 내가 할게. 네가 죽은 그 시간에 나는 죽고 너는 살았다. 이제부터 내가 박선영이다.”
그리고 오씨의 삶은 폭발적인 변화를 맞았다. 1991년에는 강경대 치사사건 재판정 소란사건으로 8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고, 여러 해 수배생활을 겪기도 했다. 세기가 바뀌었어도 오씨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대사관과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오씨의 싸움은 이제 죽은 딸의 삶을 대신하는 민주화투쟁을 넘어서서 통일을 위한 싸움으로 ‘상승’하고 있다.
고 박선영은 ‘알려지지 않은 열사’다. 그런 그의 삶을 조명하는 추모집 <저는 열네살 선영이에요>(김기선 지음, 도서출판 삶이보이는창 펴냄)가 5월24일 출간돼 6월1일 오후 6시30분 서울교대 학생회관 2층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오씨는 매우 달랐다. 딸의 죽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재해석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선영 추모집을 발간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오씨를 취재해온 저자 김씨는 “어머니는 이미 딸의 죽음을 넘어서 전면적인 투사의 삶을 살고 있다”며 “박선영의 삶을 다루려고 했는데, 그의 이야기는 액자형식으로 들어가고 오히려 어머니의 이야기가 됐다”고 말했다.
‘열네살 선영이’는 14년 전 딸의 죽음으로 다시 태어난 어머니 오씨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