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노동자 표현의 자유 완전히 박탈한 서울지법 50민사부의 오만한 판결
우리 헌법 21조는 1항과 2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이런 권리는 과거 군부독재 치하에서 오랫동안 사문화한 채 문서 속의 글자로만 존재했다. 1987년 ‘합헌적이면서도 불법적인’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거쳐 군사정권이 물러나고서야 비로소 이 기본권은 국민들이 실제로 누릴 수 있는 권리로 한발 더 가까워졌다.
현수막이나 피켓도 안 돼
그러나 그렇게 시민항쟁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집회와 시위의 권리, 나아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이른바 ‘국민의 정부’에서 또다시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징후들이 속속 불거지고 있다. 더구나 이번엔 경찰 등 정권의 공안기구뿐 아니라 국민 인권의 최후 보루여야 할 사법부까지 기본권 허물기에 동참하고 나선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누구보다 ‘보수적’이어야 할 법원이 오히려 이를 제한하는 데 필요한 갖가지 ‘혁신적’ 논리 제공에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5월14일 서울지방법원 50민사부(부장판사 이공현)는 가처분신청에 대한 결정 하나를 내렸다. 교보생명보험주식회사(대표이사 신창재)가 교보생명 해직자 17명을 상대로 낸 업무방해금지 등 가처분신청에 대해 회사쪽 주장을 거의 대부분 수용해,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교보생명과 해직자들은 지난 98년 이래 진행된 구조조정의 정당성을 두고 법적 다툼을 벌여온 사이였다. 회사쪽은 “해직자들이 스스로 사표를 내고 나간 것이니만큼 회사쪽의 책임이 없다”는 입장인 반면, 해직자들은 “회사의 지속적인 강압으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인 만큼 부당해고를 철회하고 원직복귀시키라”고 주장하고 있다. 500여 해직자들은 ‘교보생명해고자원상복직투쟁위원회’(위원장 최수)를 결성해 서울 광화문의 교보생명 본사와 창립자 및 대표의 집, 전국 지점 등을 돌며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를 벌여왔다. 가처분신청은 이 집회·시위와 관련한 것이었다. 회사쪽은 이 집회와 시위 과정에서 온갖 확인되지 않은 구호들이 쏟아져나와 회사의 신용과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이를 금지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이런 신청을 거의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해직자 17명에 대해 교보생명 본사와 창립자·회장 집앞 및 교보생명 전국 43개 지점 앞에서 회사쪽이 업무방해라며 특정한 몇 가지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했고, 이를 어길 경우 위반행위 1회당 50만원씩을 물도록 결정한 것이다. 문제는 이번 금지 결정으로 해직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복직투쟁과 관련한 본질적 주장을 사회에 알릴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봉쇄당하게 됐다는 점이다. 가령, 재판부는 규정된 장소에서 앰프와 스피커, 기타 확성장치를 사용하거나 고성으로 다음과 같은 구호를 제창해선 안 된다고 엄격히 규정했다. “교보생명 부당해고 중단하라”, “교보생명 명예퇴직 0순위는 신용호(창립자)다”, “부당해고 자행하는 신용호를 박살내자”, “강요 속의 부당해고 교보인은 죽어간다”, “교보생명 박살내어 원직복직 쟁취하자”, “각서강요 사직강요 교보생명 해명하라”, “고객만족 경영대상 계약자는 비웃는다”, “기타 교보생명이 소속 직원을 부당하게 해고하였다는 내용”. 이에 따르면, 사실상 부당해고라는 해직자들의 주장은 어떤 것이든 외치거나 알릴 수 없게 돼버렸다. 재판부는 더구나 이런 내용을 현수막이나 피켓에 써서 일반인에게 알리는 행위조차 엄격히 금지했다. 교보생명, 삼성생명, 그리고…
금지목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재판부는 나아가 이 모든 내용을 유인물에 기재하여 배포하는 행위도 안되며, 상복을 입고 이런 내용을 담은 피켓을 들고 서 있는 행위도 안된다고 했다. 압권은 이런 내용을 언론출판물에 광고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게시해서도 안된다고 규제한 것이다.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싸우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어떤 표현법으로도 부당해고라고 주장하는 것을 가로막고 나선 것”(최수 위원장)이다.
해직자들의 반발은 클 수밖에 없다. 최 위원장은 “우리는 계속된 사직서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냈기 때문에 원천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번 결정은 우리의 이런 주장을 사회에 알릴 방법을 원천적으로 가로막은 것”이라며 “모든 집회와 시위를 하지 말고 아예 입을 닫으라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사실 법원이 이처럼 업무방해 등의 가처분신청에 의거해 본원적인 기본권이라 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4월19일에도 비슷한 취지의 결정이 이미 내려졌던 것이다. 이때도 재판부는 서울지법 50민사부. 다만 재판장은 박재윤 현 대법관이 맡고 있었다. 보험회사인 삼성생명이 복직투쟁을 벌이던 해직자들을 대상으로 낸 가처분신청이었다는 점도 이번 결정과 비슷한 정황이다. 당시 재판부 역시 삼성그룹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김성환 위원장 등 해직자들에 대해 특정한 구호를 외치거나 업무방해를 목적으로 출입하는 등의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결정했다. 금지된 구호에는 “삼성생명 사기행각에 강제퇴직자 분노한다”와 “폭력집단, 범죄집단 삼성재벌 해체하라” 등 삼성그룹의 ‘범죄성’을 규탄하는 것과 “초일류 삼성생명, 초일류 여성차별”이나 “악덕기업 삼성재벌, 부당해고 철회하고 생존권 보장하라” 등 삼성그룹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묘사와 주장 등 구체적인 다섯 가지와 함께, “기타 이와 유사하게 신청인 회사를 비방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결정 이후 해직노동자들은 사실상 삼성생명 앞의 집회가 불가능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주장하는 바를 단 하나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집회를 할 수 있는가? 플래카드나 유인물을 나눠줄 수도 없고, 하다못해 혼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을 수도 없다. 집시법으로도 처벌할 수 없는 1인시위조차 사실상 금지돼버린 것이다.”(성영주 해복투 서울대표)
한추복 해복투 총무는 “당시 재판장이던 박재윤 부장판사는 이전에도 참여연대가 이건희 삼성회장의 아들 이재용씨를 대상으로 삼성SDS의 주식인수와 관련해 낸 가처분신청에서 삼성쪽의 손을 들어줬다가 대법관 인사청문회 때 논란이 됐던 판사”라고 말했다. 서울지법 50민사부는 96개 재판부로 이뤄진 서울지법 민사부의 수석재판부다. 이곳 부장판사는 일반 재판부 부장보다 한 직급 높은 고등법원 부장이 맡게 된다. 현 이공현 부장판사도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거쳐 임용될 정도의 요직으로 인정받고 있다.
경찰에만 있는 표현의 자유?
이런 주요재판부가 거듭 내놓은 닮은꼴의 결정이니만큼, 이에 대한 우려가 더욱 높을 수밖에 없다. 소장법학자들도 이에 대한 비판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곽노현 방송대 법학과 교수는 “기본권 보장에 앞장서야 할 사법부가 표현의 자유를 이렇게 심각하게 제한하고 나선 점이 놀랍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나온 결정들은 양쪽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한쪽의 주장만을 옳다고 전제하고 다른 한쪽의 주장을 완전히 제한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언론·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과 회사 영업자유 사이에서 법원이 너무나도 지나치게 회사 영업자유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장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 해고노동자들은 가처분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법적 절차를 밟는 한편, 필요하면 법원의 결정에 반해서라도 자신들의 주장을 알려나가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성영주 대표는 “노동계, 법학계와 연대해 언론자유 수호차원에서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최수 위원장은 “재판부 결정 뒤로도 계속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며 “회사쪽에서 우리에게 청구한 위반벌금만 450만원이지만 이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법원의 이번 결정 직후인 지난 5월24일 정광섭 서울 종로경찰서장은 각 언론사에 배포한 ‘준법과 포용이 요구되는 시대’라는 기고문에서 “최일선 법집행 책임자로서 변질된 1인시위를 최대한 막겠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부평에서 합법적인 노동자의 집회를 가로막다 기어이 유혈폭력사태를 빚고 말더니, 이번엔 일개 경찰서장이 ‘기이한’ 유권해석을 끌어들여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단속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공현 부장판사는 이번 가처분결정에 대해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견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로서는 정당한 결정을 내렸다고 본다”며 “이의가 있으면 상급법원의 판단을 물으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이들은 묻고 싶어한다. “법원이 먼저 온갖 논리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나서는 판에 경찰에게만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기본권은 이렇게 쉽게 금지돼도 좋을 만큼 가치없는 것인가?”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사진/ 교보생명 해고노동자의 1인시위. 서울지방법원은 피켓이나 다른 매체에 광고하는 것까지 금지시켰다.(강창광 기자)
지난 5월14일 서울지방법원 50민사부(부장판사 이공현)는 가처분신청에 대한 결정 하나를 내렸다. 교보생명보험주식회사(대표이사 신창재)가 교보생명 해직자 17명을 상대로 낸 업무방해금지 등 가처분신청에 대해 회사쪽 주장을 거의 대부분 수용해,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교보생명과 해직자들은 지난 98년 이래 진행된 구조조정의 정당성을 두고 법적 다툼을 벌여온 사이였다. 회사쪽은 “해직자들이 스스로 사표를 내고 나간 것이니만큼 회사쪽의 책임이 없다”는 입장인 반면, 해직자들은 “회사의 지속적인 강압으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인 만큼 부당해고를 철회하고 원직복귀시키라”고 주장하고 있다. 500여 해직자들은 ‘교보생명해고자원상복직투쟁위원회’(위원장 최수)를 결성해 서울 광화문의 교보생명 본사와 창립자 및 대표의 집, 전국 지점 등을 돌며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를 벌여왔다. 가처분신청은 이 집회·시위와 관련한 것이었다. 회사쪽은 이 집회와 시위 과정에서 온갖 확인되지 않은 구호들이 쏟아져나와 회사의 신용과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이를 금지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이런 신청을 거의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해직자 17명에 대해 교보생명 본사와 창립자·회장 집앞 및 교보생명 전국 43개 지점 앞에서 회사쪽이 업무방해라며 특정한 몇 가지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했고, 이를 어길 경우 위반행위 1회당 50만원씩을 물도록 결정한 것이다. 문제는 이번 금지 결정으로 해직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복직투쟁과 관련한 본질적 주장을 사회에 알릴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봉쇄당하게 됐다는 점이다. 가령, 재판부는 규정된 장소에서 앰프와 스피커, 기타 확성장치를 사용하거나 고성으로 다음과 같은 구호를 제창해선 안 된다고 엄격히 규정했다. “교보생명 부당해고 중단하라”, “교보생명 명예퇴직 0순위는 신용호(창립자)다”, “부당해고 자행하는 신용호를 박살내자”, “강요 속의 부당해고 교보인은 죽어간다”, “교보생명 박살내어 원직복직 쟁취하자”, “각서강요 사직강요 교보생명 해명하라”, “고객만족 경영대상 계약자는 비웃는다”, “기타 교보생명이 소속 직원을 부당하게 해고하였다는 내용”. 이에 따르면, 사실상 부당해고라는 해직자들의 주장은 어떤 것이든 외치거나 알릴 수 없게 돼버렸다. 재판부는 더구나 이런 내용을 현수막이나 피켓에 써서 일반인에게 알리는 행위조차 엄격히 금지했다. 교보생명, 삼성생명, 그리고…

사진/ 상복을 입고 피켓을 든 시위마저 불법이다. 이번 판결은 노동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봉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박승화 기자)

사진/ 삼성일가의 변칙증여에 반대하는 국세청 앞 1인시위.(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