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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 많은 임대료는 누가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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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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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인의 죽음으로 이어진 동대문 밀리오레 운영과 관리를 둘러싼 오래된 비리

사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상가. 동대문 밀리오레를 둘러싼 불법·비리 의혹이 집중 제기되고 있다.
광주에서 5·18 기념식이 열리고 있던 5월18일 오전. 서울 동대문의 복합상가빌딩인 밀리오레 후문 경비실 부근에서 한바탕 승강이가 벌어졌다. 물건을 가게로 들이려는 몇몇 상가 점원들과 경비원들 사이의 몸싸움이었다. 이날의 승강이는 뜻밖에도 한 상인의 ‘죽음’으로 이어져 파문이 일고 있다.

유종환 사장의 ‘입김’은 어디까지

사건의 발단은 단순했다. 1층 상가에서 일하고 있는 몇몇 점원들이 팔 물건을 들고 들어가려고 하자 건물 경비원들이 이를 막고 나섰다. 상가 ‘홍보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 점원은 상인들의 단체인 ‘밀리오레를 사랑하는 모임’의 김재만 회장(63)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사실을 알렸다. 김 회장은 밀리오레 3층 181호 숙녀복 점포 주인이자 상인으로, 유종환 (주)밀리오레 사장에 맞서 홍보비와 운영비 납부 거부운동을 벌여오고 있던 터였다. 그는 1층에 다다르자 자신이 대신 물건을 갖고 들어가려고 시도했으며 이 또한 제지당했다. 이런 과정에서 61살의 김 회장은 갑자기 쓰러졌으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지만, 이날의 몸싸움과 무관치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김 회장의 죽음 뒷면에는 동대문 밀리오레를 둘러싼 뿌리깊은 불법·비리 시비가 실타래처럼 뒤얽혀 있다. 밀리오레 점포주 및 상인과 관리회사 사이에 하루가 멀다하고 다툼이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었으며 이 다툼의 중심에는 유종환 밀리오레 사장이 서 있다.

여기서 동대문 밀리오레의 운영구조를 잠깐 살펴보자.

동대문 밀리오레 운영의 두축은 운영위원회(대표 이희경 수석이사)와 밀리오레M&D(대표 이상규)이다. 운영위는 입점·퇴점 등 상가 운영과 관련한 결정을 내리는 곳이며 M&D는 시설(빌딩) 관리를 맡고 있다. 시설관리 중 경비업무는 ‘썬워즈’라는 용역업체에 맡겨져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나 이상한 점은 유종환 사장과 동대문 밀리오레 사이의 관계이다.

유 사장은 5월25일 전화통화에서 “난 동대문 밀리오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곳 운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1500여 점포주들의 모임인 ‘구분소유자협의회’(대표 김정자)나 ‘밀리오레를 사랑하는 모임’(점포주, 세입자 등 130명 안팎)쪽에선 이희경 이사나 이상규 대표 모두 유 사장의 최측근이어서 운영관리권이 사실상 유 사장의 손아귀에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처럼 엇갈리는 양쪽 주장의 진실은 무엇일까. 지난 2월15일 동대문 밀리오레 정문 앞에 유종환 사장 명의의 안내문이 나붙었다. ‘현재의 상가관리단운영협의회는 예전처럼 빌딩 관리에만 전념하고 노하우가 필요한 상가운영은 새로 조직되는 집단운영체제에 맡긴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때부터 동대문 밀리오레의 총체적인 운영구조가 지금처럼 이원화됐다. 따라서 유 사장이 동대문 밀리오레 운영과 무관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당시 유 사장은 안내문 끝에 ‘동대문밀리오레관리단 의장’ 직함을 명기하고 있었다. 밀리오레 운영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김재만 회장의 죽음을 계기로 증폭된 유종환 사장쪽과 반(反)유종환 세력(구분소유자협의회, 밀사모 등) 사이의 다툼의 핵심은 운영체제의 합법성 여부이다. 구분소유자협의회 등은 운영위원회를 비롯한 현재의 운영·관리기구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임의단체일 뿐이어서 홍보비, 운영비 등을 거둘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현행 ‘집합건축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동대문 밀리오레처럼 다수의 소유주들이 상가를 나눠가진 건축물은 점포를 분양받은 점포주들에 의해 자동적으로 상가관리단이 구성돼야 함에도 이런 절차가 생략됐다는 것이다.

점포주 위임 받지 않은 관리기구

사진/ 밀리오레를 사랑하는 모임(밀사모) 소속 상인들이 자율적인 운영기구 추진을 결의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 의문이 든다. 동대문 밀리오레가 문을 연 게 98년 8월이었는데, 그렇다면 점포주들로부터 관리위임을 받지도 않은 단체가 어떻게 3년 가까이 버젓이 관리·운영권을 행사해올 수 있었을까.

동대문 밀리오레 상가는 유종환 사장이 이곳에 있던 을육빌딩을 헐고 새로 지은 건물이다. 당시 을육빌딩 건축주들(을육재건축조합)이 공동으로 참여했는데, 이들은 분양대금 정산을 둘러싸고 유종환 사장과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지어진 동대문 밀리오레 상가는 다른 대형상가와 달리 등기분양하는 절차를 거쳤다. 쉽게 말해 상가를 빌려준 게 아니라 조각조각 나눠서 팔았던 것이다. 여기서 분쟁이 싹텄다. 상가의 소유권은 넘어왔지만, 운영권은 건물을 지어 판 유 사장쪽에서 그대로 쥐고 행사하는 데 따라 다툼이 불거진 것이다. 상가 분양 때부터 2년간은 문제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분양 당시 유 사장쪽에서 2년간 점포의 운영관리권을 위임받아 행사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위임 기간이 끝난 2000년 8월28일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동안 운영관리권을 행사해온 운영위원회는 활동 근거가 사라져 점포주들의 요청에 따라 권한을 넘겨줘야 할 처지에 빠졌다. 그런데도 운영이사회는 관리단운영협의회, 운영위원회로 이름을 바꿔가며 그대로 존속하면서 운영권을 유지해왔다.

이와 관련, 유종환 사장은 “현재의 운영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상인)총회에서 (상인들의) 60% 이상 동의를 얻어 적법하게 구성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점포주나 상인들은 물론, 운영위원회의 이희경 수석이사조차 운영위 구성을 위한 총회를 연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의 운영위는 밀리오레 분양 초기 때의 운영이사회를 그대로 승계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따라서 현재의 운영위는 적법하다고 보기 어렵다.

점포주나 상인들쪽에선 자체적으로 합법적인 운영위원회를 꾸려 운영·관리권을 접수하려 했지만, “유종환 사장쪽에서 갖가지 방해공작을 펼쳐 뜻을 이룰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분소유자협의회는 지난해 7월 한양대 동문회관에서 밀리오레 구분소유자 1500여명 중 참석 364명, 집회결의 993명 등 1357명(85%)이 모여 창립총회를 열어 정식으로 밀리오레 상가관리단을 발족시켰다. 그런데도 운영·관리업무를 인계해주지 않자 서울지방법원에 유종환 사장 등을 상대로 관리업무 금지 및 관리인 선임 가처분신청서를 내 법적 다툼에 들어가 있다.

홍보비, 희한한 계산법?

사진/ 밀리오레 빌딩 관리단이 붙여놓은 안내문. 구분소유자협의회등의 자율운영기구 설립 추진을 경고하고 있다.
구분소유자협의회, 밀사모 등에선 유 사장쪽이 합법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운영위원회, 관리단을 통해 제멋대로 관리·운영비 및 홍보비를 거둬왔으며 이 과정에서 종종 집단폭력이 행사되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이렇게 거둬들인 각종 비용이 어떻게 쓰이는지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며 다른 곳으로 빼돌렸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빼돌린 돈의 상당액은 다른 지역의 밀리오레를 짓는 데 쓰였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이나 의혹제기는 유종환 반대파의 흑색선전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구분소유자협의회에 따르면, 상인들이 내는 임대료의 상당액이 중도에 증발하고 있다. 동대문 밀리오레의 운영방식에 따라 세입 상인들의 임대료는 일단 운영위원회을 거쳐 점포주들에게 돌아간다. 상인들이 운영위에 ‘입금’하고, 운영위가 점포주들에게 ‘송금’하는 절차를 거치는데, 입금과 송금에서 다달이 적지 않은 차이가 생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을 예로 들어보자. 입금은 10억4399만2천원인데, 송금은 7억3029만원에 지나지 않아 무려 3억1370만2천원의 차액이 발생했다. 바로 직전인 9월에도 2억3342만6천원(10억8687만9천원-8억5345만3천원)이나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구분소유자협의회 관계자는 “운영비 등을 별도로 내기 때문에 상인들의 입금과 운영위의 송금 사이에 차이가 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차액이 있다면, 은행에서 약간씩 떼는 수수료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구분소유자협의회가 확보하고 있는 ‘임대료 입금-송금 현황’ 자료가 지난해 9월, 10월 몫뿐이어서 전반적인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점포주나 상인들쪽에선 그 이전이나 이후에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홍보비를 둘러싸고도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구분소유자협의회나 밀사모쪽에선 지난해부터 운영위쪽에 홍보비 자료를 공개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4월5일 1차로 3월 한달의 홍보비가 공개된 적이 있었다. 이 내역서에서는 광고비, 인쇄비, 제작비, 홍보잡비 등을 합쳐 3월 홍보비가 모두 5억6474만8660원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자료를 두고 밀사모쪽에서 CF제작비, 방영료 등이 다른 상가(다른 지역의 밀리오레)에 전용됐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4월13일 새로운 자료를 내보냈다. 이때의 3월 홍보비는 1억1032만4060원으로 무려 다섯배가량 차이가 나 상인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희경 수석이사는 당시 차액보고를 통해 1차 때 발표는 ‘예비’지출내역서(향후 지출될 금액까지 포함된 금액)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밀사모쪽은 “3월 예비지출내역서는 3월 이전에 발표해야지 4월 들어 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점포주나 상인들쪽에선 운영위에 대해 지난 1999년, 2000년의 홍보비 자료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아직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임대료와 마찬가지로 홍보비도 상당부분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런 의혹투성이 속에서 점포주와 상인들은 모임을 꾸려 홍보비, 운영비를 낼 수 없다며 싸움에 들어갔으며 이번에 급기야 김재만 회장이 숨지는 불상사로 이어진 것이다.

서울지검, 상인 피해 확인

사진/ 동대문 밀리오레 점포주들이 상가 운영과 관련,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
동대문 밀리오레를 둘러싼 각종 불법·비리 의혹은 이미 검찰의 수사대상으로 떠올라 있다. 점포주와 임차인(세입자)들의 고소, 고발이 끊이지 않는 데 따른 것이다. 현재 유종환 사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고소, 고발이 형사관련만 무려 300건 안팎에 이를 정도로 법적 다툼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특기할 점은 검찰이 지난 3월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서 동대문 상인들에게 돌린 ‘안내문’이다.

피해사례를 수집하기 위해 배포된 이 안내문에서 서울지검 강력부는 “집합상가(동대문 밀리오레 등)의 분양 및 관리와 관련한 문제점으로 인해 민원이 끊이지 않고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구조적 문제점과 잘못된 관행들이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못박았다. 또 “그동안 점포주와 임차인들은 분양회사나 관리회사쪽의 부당한 각서 및 동의서 징수,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입점 방해, 임대보증금 외 웃돈(속칭 핏값) 요구, 부당한 강제퇴출 등 불법 부당한 행위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왔다”고 명시하고 있다. 점포주와 상인들의 주장을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한 것이다.

유종환 사장은 이와 관련, “내 이름을 팔고 다니는 놈들이 일부 상인들한테서 몇천만원씩 받아먹고 다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난 그런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유 사장은 동대문 밀리오레에는 신경쓸 겨를도 없을 정도로 바쁘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형상가 운영을 둘러싼 잡음이 으레 그렇듯 동대문 밀리오레 운영과 관련해서도 폭력배 연계설, 정치권 배후설이 끈끈하게 얽혀 있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글/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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