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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개혁은 망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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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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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거니와 5년 동안 최선을 다하고 또 성심을 다 바쳤다. 모두가 개혁을 원했지만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이 나라 대통령으로서의 임무에 매일매일 부딪치면서 열정과 정성을 다했을 뿐 다른 계산이나 뒷날을 걱정하거나 하는 따위의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퇴임 3년 만에 쓰인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조선일보사 펴냄)의 한 구절입니다. 실패한 대통령의 실패할 수 없는 자기합리화를 다시 듣는 것 같아 실소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준비된’ 김대중 대통령도 장차 비슷한 회고록으로 자기변명을 해야 할지 모를 처지에 놓인 것 같습니다. 레임덕이 운위될 정도로 정권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지만, 여권 수뇌부의 상황인식은 소심하고 소극적입니다.

법무장관 퇴진사태를 둘러싼 여론, 이어진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당·정 쇄신 요구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개혁도 중요하지만 개혁 주체세력의 개혁 없이는 만사불통이라는 것을.

안동수 법무 사퇴파문은 여권 일각에서 주장하듯 해프닝의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위가 어떻든 잘못된 인사로 드러났고, 정권 재창출 운운한 것에서 보듯 인선기준이나 직무평가의 주요한 잣대가 충성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현 정권 들어 치열한 경합이 이뤄진 자리가 출신지역과 충성도 순으로 낙점된 사례가 적지 않으며, 조직 내에서 실세냐 허세냐 하는 것도 이 기준에 크게 좌우됩니다.

동교동계로 불리는 측근세력의 문제점은 많이 노출돼왔습니다. 인사개입, 비리의혹에 단골로 등장했습니다. 자리가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하는 논란이 있는데, 제가 봐온 동교동계 일부 인사는 사람은 충직하고 좋은데 자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민심을 떠나게 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가졌는데 이제는 더이상 떠나게 할 민심도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개혁 요구는 또한 직접적으로 대통령을 향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직언을 싫어하거나 귀담아듣지 않고, 자신이 모르는 사람은 믿지 않고 쓰지 않는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독재·부패라는 어두운 과거와는 단절했을지 모르지만, 한국적 권위주의를 탈피하지 않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오로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왔고 민주주의밖에 모른다고 한다면 권위주의 대신에 무오류주의라고 하겠습니다.

위기는 본질을 건드리지 않고 타개해 나갈 수 없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도 아들 현철씨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아 화를 자초했습니다. 김영삼 정권 때와 달리 김대중 정권은 정권이 망하면 개혁도 망한다는 절박감이 있습니다. 따라서 바닥을 딛고 일어설 여지는 있어 보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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