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될 정도로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린 6월24일. 이날 경남 밀양의 낮 최고기온은 온 나라를 통틀어 가장 높은 35.3도까지 올랐다. 사람 체온에 가까운 기온이니 오죽 더웠을까, 밀양에 가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된다. 이날 서울 용산 국제빌딩 앞 재개발 4구역도 덥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1월20일 다섯 세입자와 한 경찰관의 목숨을 앗아간 화염이 여전히 남일당 건물을 맴도는 듯했다. 당시 헐벗은 채 겨울바람을 맞던 가로수 은행나무 가지에 뻑뻑이 들어찬 푸른 잎들만이 그동안 많은 해가 뜨고 졌음을 증언했다.
시 짓고 판화하고 “연대는 정들어야 하는 것”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묻는다. 누가 누구를 마음대로 용서하느냐고. 피해자야말로 가해자를 용서하기 위해 영혼이 타버릴 것만 같은 고통을 눈물로 참고 버티는데, 가해자는 신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용서하고 제3자는 마음 편하게 가해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느냐고 묻는다. 참사의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남일당 건물 앞 은행나무도 묻고 있었다. 민간인 5명이 국가의 왼팔인 경찰의 진압 도중에 숨졌는데, 국가의 오른팔인 검찰은 왼팔이 한 일에 대해 국가의 이름으로 ‘혐의 없음’ 결정을 내림으로써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았는가. 나아가 희생자의 아들과 동료 등 9명을 기소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구원을 정당화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일까. 남일당 건물 1층에 마련된 분향소 시계는 이대로는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듯 2월20일에 멈춰 서 있다. 분향소 정면 펼침막에는 “용산 살인진압 한 달, 남은 것은 불신과 의혹뿐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앞에 놓인 다섯 영정 가운데 일흔두 살을 끝으로 생을 마감한 이상림씨의 옅은 미소가 도드라진다. 화재의 범인으로 몰린 그의 아들 충연씨는 사건 당시 망가진 무릎을 움켜쥔 채 서울구치소 밥을 먹고 있다.
철거가 진행 중인 용산의 한 공사판 가림용 철판은 이곳의 시곗바늘이 한 달을 지나 140일을 넘겼음을 알려준다. 노란색 페인트로 적혀 있는 김주대 시인의 ‘백사십일’이라는 시다. ‘그대 떠난 그 먼 곳에서/ 소리만 혼자 천리를 왔는가/ 내 가슴에 타는 불길 속에/ 내가 보내 보내지 못한/ 가지 않은 그대여!’
그렇게 보내지 못했음에도 시간은 다시 흘러 이날로 용산 시계는 참사 156일째를 맞았다. 사태는 조금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유가족과 대화할 생각이 없고, 경찰은 늘 그렇듯 사고 현장 인근을 지키며 배회한다. 불을 낸 혐의를 받고 있는 9명의 재판은 제자리걸음이다. 세상은 어느덧 용산을 잊은 듯 마음이 없다. 농성 천막에 앉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들이나 조끼 입은 범국민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을 바라보는 행인들의 표정은 느낌 없는 한마디를 담고 있다. ‘아, 그 사람들이구나.’
무심한 시선과 시간과는 무관하게, 마치 개미들이 제 짐을 이고 말없이 부산히 움직이듯, 이 지역에서는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김주대 시인과 함께 어깨를 결은 민중 예술인들. 누구는 시를 지어 벽에 새기고, 누구는 그 옆에 숨진 5인의 얼굴을 판화한다. 절망의 현장을 사진 찍어 인근 빈 포장마차에 인화지를 내건 이, 설치미술로 재개발 4구역 공간을 채우는 이도 있다. 30명이 넘는, 공감하는 슬픔을 표현하고픈, 예술인들이 그렇게 모였다. 그들의 근거지는 고 이상림씨가 운영하던 ‘레아카페’. 카페 1층엔 예술적 영감이 넘쳐난다. 한켠에 앉아 책을 읽던 회화작가 전진경씨는 “작품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전시 공간이 어디인지도 중요하다”며 “작품을 내건 공간은 작가가 어떻게 세상과 연대하려는지 보여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대는 사명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서로 정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ㅎ건설 관계자 “거의 끝나가고 있다”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는 이들도 4구역에 산다. 미디어센터 활동가들이다. 그들 육신의 안식처는 레아카페이고, 영혼의 활동 무대는 범대위 누리집(mbout.jinbo.net)과 자체 카페(cafe.daum.net/Cmedia)다. 현장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부지런히 올리고 있다. 6월19일 오후 시민들이 분향소를 사진 채증하는 사복 경찰을 붙잡아 카메라를 빼앗는 과정에서 나승구 신부가 경찰력에 제압당한 채 땅바닥을 나뒹구는 장면은 그렇게 네트워크를 탔다. 다음날 오후에 열린 ‘용산 참사 150일 추모대회’에서는 참가자 3명이 연행됐다. 이에 항의하던 전종훈 신부와 유가족들은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 다음날에도 경찰은 남일당 건물에 들이닥쳐 ‘대통령은 유족 앞에 사죄하고 용산 참사 해결하라’고 적힌 현수막과 분향소 앞에 사제단이 걸어놓은 ‘단식기도 6일째’라는 손팻말을 철거했다. 물론 영장 제시는 없었다. 이에 항의하던 문정현 신부는 의경의 팔에 목이 끼인 채 발버둥쳤다. 이 모든 장면들이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숨가쁘게 남아 있다.
연대하려는 이뿐만 아니다. 반대하려는 이들도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쉰다. 그동안 철거는 착착 진행돼왔다. 개인에서 조합으로 명도가 끝나지 않은 일부 주택을 빼고는 다 으스러졌다.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와 함께 부러진 철근과 가재도구 등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며칠 전 내린 비가 고여 웅덩이도 생겼다. 철거 현장에서 안전모 사이로 흐르는 땀을 닦던 ㅎ건설 관계자는 남아 있는 집들을 가리키며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용역 깡패들은 괜한 마찰을 우려해 함부로 나타나지는 않는단다.
범대위와 유가족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인근 상인들도 남일당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가게를 지키고 있다. 5구역에 있는 한 부동산중개소 사장은 거침없이 적대감을 드러냈다. “용산이 죽고 있어. 장사가 안 되니까. 동네 분위기 싸하잖아. 경찰이 뻗치고 있으니 사람들이 아예 여기로 오려고 하지 않아. 살벌하니까 이촌동에서 만나자고 해. 그 사건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거래가 여러 건 성사됐을 텐데. 사고 나기 전만 해도 벤츠고 비엠(베엠베)이 뻔질나게 들락거렸는데 말이야. (범대위나 유가족들은) 왜 저러고 있대? 빨리 안 나가고 말이야. 이 동네 사람들 다 욕한다니까.” 그 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자본의 욕망은 이처럼 쉽사리 잠들지 않고 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곱씹고 있는 용산 재개발 4구역 세입자들은 이런 얘기를 대놓고 비판한다. 이날 오후 5시께 찾은 광주주단 주인 여범구(72)씨는 상추에 된장을 얹어 밥을 싹싹 비빈 뒤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다. 4구역에서만 29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이곳 역시 발길 끊긴 손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럼에도 여씨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나라에서, 그것도 수도 서울에서 사람들 불태워 죽여놓고 그냥 나가라면 누가 나가겠냐”고 말했다. 여씨는 “남편들이 죽었는데, 눈에 보이는 게 있겠냐”며 유가족들을 감쌌다.
저녁 7시. 미사 시간이다. 김인국 신부와 문정현 신부 등 신부 8명이 옷을 갖춰입고 제단 너머에 섰다. 이날엔 충북 청주교구의 한지수 신부가 미사 집전을 맡았다. 80여 명의 사람들이 미사에 참가했다. 천생 시민인 듯한 이들을 비롯해 수녀 예닐곱 명,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용산 참사 피고인 변호인단의 이덕우 변호사 등이 모두 함께 은색 깔개 위에 앉았다. 하나같이 하느님의 은총이 이 저주받은 용산에도 뻗치기를 빌었고, <임을 위한 행진곡>과 <그날이 오면>을 불렀다.
남일당 건물은 이로써 성당
하느님을 믿는 자, 둘 이상 모이면 그곳이 교회라 했다. 남일당 건물은 이로써 성당이 됐다. ‘남일당 본당’ 주임신부는 이강서 신부이고 보좌신부는 문정현 신부라는 게 문 신부 스스로 즐겨 쓰는 농담이다.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의 한 손이 마이크를 잡았다. 떨리는 나머지 손은 마이크 밑을 받쳤다. “벌써 160일 됐답니다. 우리는 믿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매일 기도하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여기는 축복받은 곳입니다. 우리는 검찰이 공개하지 않고 있는 수사기록 3천 쪽을 꼭 돌려받아야겠습니다.”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유가족들의 열망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말들이다. 고 한대성씨의 부인 심숙자씨와 고 윤용헌씨의 부인 유영숙씨가 바로 앞에 앉아 얘기를 듣고 있다. 모두 한날 과부가 된 동지들이다. 마침내 해는 길 건너편 빌딩 사이로 졌다. 수십 개의 촛불이 켜지고 미사는 촛불문화제로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참사 156일째 밤이 깊었다.
참사 다음날인 1월21일 용산 4구역을 찾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씨는 이렇게 말했다. “난 <난쏘공>을 쓸 때 미래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썼어요. 이런 슬픔, 이런 불공평, 이런 분배의 어리석음, 이런 정치·경제 정책을 하면서는 미래가 깜깜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는 건 우리가 벼랑 끝을 향해서 가는 거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난쏘공>은 벼랑 끝에 세운 ‘주의’ 팻말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난쏘공>에 보면 폭력은 경찰 곤봉이나 군대 총만이 아니라고 했어. 우리 시대 어느 아이 하나가 배고파 밤에 울면,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그치게 하지 않고 놔두는 것도 폭력이라고 그랬다고. 어제 어마어마한 폭력이 가해졌는데도 우리가 그냥 지나간다면 우리는 죄를 짓는 거야. …그래서 동시대인으로서 우리는 다 같은 죄인이야.” 이 말이 꺼내진 지도 155일째다.
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용산 참사 153일째인 6월22일 저녁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옆에서 전국사제시국기도회가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희생자 영정 앞에 촛불을 놓고 있다. 세상이 무심한 듯하지만,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은 여전히 있다.
그렇게 보내지 못했음에도 시간은 다시 흘러 이날로 용산 시계는 참사 156일째를 맞았다. 사태는 조금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유가족과 대화할 생각이 없고, 경찰은 늘 그렇듯 사고 현장 인근을 지키며 배회한다. 불을 낸 혐의를 받고 있는 9명의 재판은 제자리걸음이다. 세상은 어느덧 용산을 잊은 듯 마음이 없다. 농성 천막에 앉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들이나 조끼 입은 범국민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을 바라보는 행인들의 표정은 느낌 없는 한마디를 담고 있다. ‘아, 그 사람들이구나.’

6월22일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 옆에서 전국사제시국기도회가 열리는 동안 한 참석자가 들고 있는 국화의 모습.
문정현·전종훈(맨 왼쪽부터) 신부 등 사제들이 전국사제시국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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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