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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산 고치는 ‘칠순 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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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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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무소에서 우산 고치는 자원봉사자를 뽑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한번 해보겠다고 나섰지. 집에서 놀면 뭐해. 늘그막에 주민들을 위해 일하는 것도 좋지 뭐.”

서울시 성북구 돈암2동사무소 3층에 마련된 2평짜리 ‘우산수선센터’. 권태국(71) 노인이 매일 출근하는 그만의 작은 공간이다. 권씨는 “소일거리 삼아 하는 일”이라고 했지만 근력이 달리는 칠순의 노인이 하루종일 우산을 고친다는 게 ‘소일거리’에 그치는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이웃 주민들을 위한 무료봉사라서 그럴까. 그는 “동사무소에 나와 우산 10여개를 고치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며 “무슨 대단한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라며 연신 겸연쩍어했다.

돈암2동사무소가 근처 아파트단지를 돌며 조금만 고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우산을 모아 무료로 수선해주는 일을 시작한 건 지난해 7월부터. 동네에서 우산 수선소를 쉽게 찾을 수 없고, 조금만 망가져도 쉽게 내버려지는 우산이 환경을 해친다는 점을 감안해 우산을 고쳐 써보자고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수선한 우산이 500여개에 달할 정도로 권씨의 우산 수선 봉사는 주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산을 수선해준다는 소식을 들은 정릉, 안암동 등 다른 동네는 물론 멀리 노원구, 도봉구 주민까지 수선을 의뢰해오고 있다. 주인없이 내버려진 우산을 고치는 일도 그의 중요한 봉사활동 중 하나다. 권씨의 손을 거쳐 새것처럼 고쳐진 우산은 비오는 날이면 동사무소를 찾은 민원인들이 활용한다.

우산 수선을 맡기 전까지 권씨는 동사무소에서 벌이는 취로사업에 참여해 생계를 꾸려왔다. 그동안 장사도 해보고 막노동도 했던 권씨가 우산을 수선해본 경험은 없다. 다만 젊은 시절 철공소에서 철가공 일을 하며 익혔던 기술을 우산 수선에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권씨 부부는 다 큰 막내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막내는 시력을 잃은데다 정신지체까지 겪고 있는 중복장애인이다. 권씨가 이웃을 위한 봉사에 나선 건 어쩌면 이런 막내아들을 겪으면서 더불어 사는 삶을 ‘아프게’ 느꼈기 때문일까.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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