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와 함께 사는 소설 속 노인은 그렇다치고, 도시 속 노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굳이 ‘노인과 도시’를 언급하는 것은 “할아버지는 시골에”라고 할 수 있는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나갔기 때문이다. 오늘날 상당수 노인들은 도시나 아니면 도시화된 농촌에 살고 있다. 또한 귀농이나 전원생활은 결코 일반화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노인문제나 노후대책을 연금, 보험, 재테크, 노후창업, 양로원, 실버산업, 귀농 등의 관점에서 많이 이야기하지만, 사실 노인들의 일상적 삶이 이루어지는 도시가 노인들을 위해 어떤 배려장치를 갖추어야 하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양로원 또는 시니어스타운에 ‘조기 입주’하거나(그것이 아무리 호텔급이라고 해도) 아니면 ‘밀려서’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상당수의 노인들에게 그런 생활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들은 되도록 오랫동안 남들과 같이 살고 싶은 것이다. 자신들이 젊었던 시절부터 살았던 삶의 터전에서 노년을 보내는 것을 진정으로 더 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인=전원생활’, ‘노인=양로원’이란 도식이 사회 전체를 보고 그 구성원 모두의 밝은 미래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최후의 선택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물론 그런 선택으로서 고려돼야 하고 사회적으로 마련돼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게토화’로서 차선책일 뿐이다. 이제(사실은 전부터 그랬어야 하지만) 도시는 노령화시대를 맞아 어느 정도 ‘노인적 삶’을 위한 공간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도시 안에 다양한 연령층이 공존하며 진정으로 공동체적 의미를 구현할 수 있다. 그러한 공간의 예는 무수히 많다. 지면상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최근 들어 재래시장 활성화가 이슈다. 그런데 가게와 시장이 필요한 이유가 노인인구의 증가와 직결돼 있다는 생각은 얼른 하지 못한다. 노인 부부만의 핵가족이나 독거노인의 급증은 눈앞의 불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매 동선의 간편화다. 자가운전에 한계를 갖는 노인들은 가깝고 편리한 곳에서- 그리고 쇼핑몰처럼 현란하고 복잡함을 구매욕구 유발의 전략으로 삼지 않는 곳에서- 생필품을 사야 할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유럽 도시들에서는 노인들이 대형매장보다는 동네 가게를 이용하거나 근처 시장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 안에 정기적으로 식품을 비롯한 생필품시장이 서기도 한다. 하얀 ‘비둘기의 꿈’을 위하여 앞으로 도시와 동네에서 함께 어울려사는 노인들을 ‘확보’하는 일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세대간의 통시적 다양성은 미래의 문화적 풍요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수명을 연장해놓고는 그를 평생 익숙해진 삶의 터전으로부터 축출하는 것을 우선의 사회정책으로 알고 있는 문명은 그 자체로 야만이다. 사람은 패배할 수는 있어도, 산 채로 축출될 수는 없다. <노인과 바다>에서 소년이 지켜보는 가운데 깊은 잠에 빠진 산티아고는 ‘사자의 꿈’을 꾼다. 나는 오늘 우리 사회의 노인들이 도시 곳곳을 제 집처럼 날아다니는 하얀 ‘비둘기의 꿈’을 꾸기 바란다. 김용석/전 로마그레고리안대 교수·철학 uchronia@netsg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