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이 너무 비싸다 /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아닌 걸 아니라고 하기가 왜 이리 힘겹나 몇 년 묵은 얘기인데, 내게도 비용을 치러야만 했던 일이 있었다. 앞에 열거한 사례에 비해 너무 하잘것없지만. 이라크전이 발발하자 나는 평화를 주제로 한 수업을 했다. 이러저러한 경로로 이 수업이 신문에 실리게 됐고. 대통령은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 교사를 문책하라 하고, 교육청은 학교에 조사를 명하고, 교장·교감 선생님은 나를 몰아붙였다. 의연한 듯 대처하기는 했다. 문제가 생겨도 내가 승소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도 무서웠다. 어쨌든 내 생활을 갉아먹게 될 것이 분명한 그 상황 자체가. 별일 없이 마무리됐지만, 내가 치른 대가는 스트레스만은 아니었다. 나는 더 소심해졌다. 코끼리가 자기 힘으로 충분히 끊을 수 있는 쇠사슬에 묶인 채, 인간에게 복종하도록 하는 법을 아는가? 아기 코끼리일 때 쇠사슬에 묶였던 기억이, 아무리 애써도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던 그 기억이, 성장해 큰 힘을 가지게 된 뒤에도 코끼리를 묶어놓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코끼리는 쇠사슬에 묶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소심함에 묶여 있다는 것. 우리가 정의롭지 못한 크고 작은 일들에 항거하는 품격 있는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일신의 안일을 먼저 구하는 소심한 삶을 사는 원리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이미 불의의 쇠사슬을 끊어낼 만한 힘이 충분히 있는데, 힘 없던 시절의 상흔이 우리를 묶어놓은 게 아닐까. 그러니까 최근 들어 내가 느끼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우울함, 무력감, 좌절감, 분노 등)의 원인은 결국 나 자신인 것이다. 누구를 탓하랴, 비용을 치르기를 두려워하는 비겁한 인간이라서 그런 것을. 맞다. 다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억울하다. 품격을 지키는 삶에 너무 비싼 값을 매기는 이 사회가 문제 아닌가.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지키면서 살려면 밥줄 끊기는 것도 각오해야 하고, 법정도 감옥도 겁내지 말아야 하는 이 세상이 더 문제 아닌가.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겨운 거야. 박현희 서울 구일고 사회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