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비로 부활하는 ‘5월의 예수’
등록 : 2001-05-15 00:00 수정 :
‘그대,/ 슬픈 오월의 작은 예수/ 동트지 않는 아침을 깨우려/ 온 몸을 던져 새벽길을 간 이여.’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스러진 한 젊음을 기리는 추모비가 신학대학 교정에 세워진다. 호남신학대학교 후학들이 20여년 만에 고 문용동(당시 28살·사진 한 가운데 기타들고 있는 사람) 전도사의 추모비를 건립하기로 한 것이다. 목회자를 키우는 신학대 교정에 추모비가 세워지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그동안 수차례 추모비 건립이 추진됐지만 종교적 이유 등이 얽히고 설키면서 번번이 무산되고 이번에야 비를 세우게 된 것이다.
사실 진상규명과 추모 작업은 신학대 동문들을 중심으로 80년 직후부터 이뤄졌다. 당시 전남도청에 같이 있었던 생존자들을 만나 증언을 듣는 등 그의 짧았던 삶 중 ‘치열했던 마지막 나날’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기록들은 <새벽길을 간 이>라는 제목의 추모 자료집으로 나올 예정이다.
광주항쟁 희생자들이 대개 그렇듯, 그가 역사의 물줄기에 휩쓸려들어간 것도 어찌보면 우연이었다. 그는 운동권도 아니고 호남신학대에 재학중이면서 상무대교회 전도사로 일하던, 한 사람의 순수한 신앙인일 뿐이었다. 그런데 5월18일 교회에 다녀오던 그는 한 시민이 공수부대원한테 맞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를 말리기 위해 달려갔고 이내 그는 항쟁의 한복판에 선 ‘투사’가 되었다. 그는 부상자들을 위한 헌혈운동에 적극 나서는가 하면 5월21일 계엄군이 물러난 뒤 전남도청 지하 무기고 관리를 맡았다. 그리고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시작된 5월27일 새벽 3시께, “탕 탕 탕”. 최후까지 도청에 남았던 그는 가슴에 계엄군의 총을 맞고 쓰러졌다.
문 전도사에 대한 추모예배와 추모비 제막식은 5월17일 호남신학대 교정에서 열린다. 추모비에는 ‘그대,/ 슬픈 오월의 작은 예수…’로 시작되는, 김안식 목사(고인의 대학동기)의 추모시가 새겨진다. 문 전도사의 유해는 현재 광주 망월동 새 묘역에 안치돼 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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