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지까지 떠받드는 우리 언론의 외신 맹신… 자의적 해석에 멋대로 인용 등 난무
외신은 진실만을 말한다?
우리 언론의 외신에 대한 믿음은 지극하다. 외신에 났다 하면 앞뒤 재지 않고 사실이라고 믿고 들어가는 게 습성처럼 굳어져 있다. 외신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는 독자를 우롱하는 오보의 남발로 귀결된다. ‘맹신’이 부른 ‘망신’을 보여주는 희극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를 보자.
<조선일보> 1999년 8월12일치 7면은 “섹스 스캔들에 지친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여사가 남편 빌 클린턴 대통령을 폭행해 눈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는 미국 타블로이드판 주간지 <위클리 월드 뉴스>의 1면 머릿기사를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이 외신기사에 덧붙여 한쪽 눈이 퍼렇게 멍이 든(?) 클린턴 대통령의 얼굴을 실은 <위클리 월드 뉴스> 1면을 사진으로 싣기까지 했다.
작문 기사를 깍듯이 대접한 거대 신문
그러나 이 기사는 두말할 것 없는 오보였다. <위클리 월드 뉴스>는 ‘외계인은 클린턴을 지지한다!’, ‘사마귀 피아노 독주회 단독 중계’ 따위의 작문을 기사라고 써내는, 그저 한번 웃고 버리는 황색주간지다. 그런데 ‘믿거나 말거나’식 작문을 번역해 내보낸 것이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이 보도를 사실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정치적 개그’라는 걸 모두 알고 있는데, 우리 독자들은 그걸 진실이라고 믿고 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희극이 우리나라의 사정과 관련된 문제에서 발생하면 비극이 된다는 데 있다. 최근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뉴욕타임스>의 한국 신문 관련 기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문제의 기사는 <뉴욕타임스>가 지난 7일치에 게재한 ‘진보주의자들로부터 공격받고 있는 한국의 보수계 신문들’이라는 제목의 돈 커크 기자가 쓴 기사다. 이 기사는 한국에서 김대중 정부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이른바 ‘빅3 신문’간에 언론사 세무조사 등을 둘러싸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각 신문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이 기사가 나가자 조선·중앙·동아는 다음날치에 이를 2면에 비중있게 보도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이 기사는 사실 확인이라는 보도의 기본 원칙과 관련해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왜곡보도였다. 먼저, 돈 커크 기자는 “<한겨레>가 1987년 대선과 92년, 97년 대선에서 반정부 정치인 김대중을 지지했다”고 썼는데 이는 명백한 오보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한겨레> 창간일이 88년 5월15일임을 생각하면, 창간도 되지 않은 신문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의 기사에 나타난 잘못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기사는 “한국 정부가 3대 신문에 대한 세무조사 기한을 6월19일까지 연장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런 조처가 고발에 필요한 증거를 찾으려는 정부의 결심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세무조사 연장대상은 방송 3사를 비롯해 조선·중앙·동아, 그리고 <한겨레>를 포함해 모두 15곳에 이른다. 이 기사는 한국 정부가 조선·중앙·동아만을 표적조사하고 있는 것처럼 독자를 오도하고 있다. 유재천 한림대 부총장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 부분도 잘못됐다. 기사는 유 부총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심지어 기자들조차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는데, 유 부총장은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런 오보투성이 기사를 쓴 돈 커크 기자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한국 특파원이며, 이번 기사는 그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비록 <뉴욕타임스> 기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뉴욕타임스>는 중대사안을 확인없이 게재한 데 대해 책임을 면할 길이 없고, 이 신문에 대한 신뢰는 한국 국민 사이에서 크게 떨어졌다는 게 언론계 안팎의 평가다. 정부도 지난 8일 <뉴욕타임스>가 왜곡보도를 했음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사실왜곡 기사를 부풀려 보도하기도
외신의 부정확한 보도도 문제지만 국내 신문들이 이런 보도를 무분별하게 옮겨실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사의 입맛에 맞게 원문을 멋대로 짜깁기하고 내용을 부풀리기까지 한다는 사실이 더욱 문제다. <뉴욕타임스>의 이번 기사에서도 조선·중앙·동아는 이런 상습적 악폐를 그대로 재현했다. 원문에 없는 문장을 추가하거나, 표현을 과장하고 특정인의 주장을 따옴표로 인용한 것을 <뉴욕타임스> 자체의 견해인 양 보도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8일치 기사에서 “한국 정부는 3대 신문의 비판으로 김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속히 떨어지자 이 신문들을 저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옮기면서 “그 수단으로 국세청과 공정거래위 조사가 동원되고 있다”고 썼다. 같은날치 <동아일보>도 “최근 지지도가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김대중 정권을 비판한 3대 보수파 신문이 국세청, 공정거래위 등 정부부처로부터 집중적인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돈 커크 기자가 쓴 기사는 “조선·중앙·동아 등 판매부수가 많은 빅3의 경영진은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 조사가) 그들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말한다”고 보도해 조사가 3대 신문에 집중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주체가 이 신문사 경영진임을 밝히고 있다. 조선·동아 기사는 누가 그런 주장을 하는지를 생략함으로써 마치 <뉴욕타임스>가 그렇게 주장한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비판적 보도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은 이 신문들만의 생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는 조선의 기사는 원문에도 없는 내용이다.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김영희 중앙일보 부사장과 인터뷰 내용 중 “3대 신문을 재갈물리려고”라는 부분과 “이런 조사(발행부수 부풀리기, 경품제공 등의 공정거래위 조사)의 확대는 이 신문 책임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의심을 키우고 있다”고 한 부분을 자의적으로 짜깁기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는 “<뉴욕타임스>는 또다른 언론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정부의 세무조사는 비판적인 빅3 신문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자기 신문의 부사장을 ‘또다른 언론관계자’로 표현함으로써 제3자의 견해인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중앙은 또 “김대중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해온 ‘빅3 신문’을 탄압하기 위한 의도가 짙은 것으로 보는 내부 시각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고 썼으나, 원문에는 ‘탄압하기 위한 의도’라는 문구는 들어 있지 않다. 중앙은 나아가 “한국 정부는 ‘빅3 신문’들의 계속적인 비판 공세로 인기가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대북정책 등 정부정책 추진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을 부담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고 옮겼으나 이 또한 왜곡보도다. <뉴욕타임스>의 원문은 “3대 신문은 김대중 대통령이 화해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과 타협하느라 경제문제를 풀지 못했다고 비판해왔다”고만 쓰고 있을 뿐 ‘부담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은 없다. 중앙은 또 유재천 부총장의 말을 인용한 부분을 번역하면서 “기자 개인들에 대해서도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는데,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란 구절은 원문 어디에도 없다.
유 교수가 한 적 없는 말을 끼워넣은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그대로 옮긴 데 더해 원문에 없는 말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동아일보>의 기사도 “정부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최근 지지도가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김대중 정권”, “언론사의 탈세행위를 ‘기필코 추적해 고발하려는’ 정부의 의지” 등 원문에 없는 수식어를 넣어 내용을 과장했다.
외신은 한국 언론의 경전이란 말인가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기사의 서두를 <한겨레>의 탄생과정을 설명하는 데서 시작하고, <한겨레> 정연주 논설주간의 말을 인용해 “김 대통령이 뒤탈을 걱정해 언론개혁을 세차게 밀어붙이지 못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고 끝내고 있는데도, 조선·중앙·동아 가운데 이 사실을 보도한 신문은 단 하나도 없다. 다들 자사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 발췌한 뒤 부풀린 것이다.
외신에 대한 맹신, 나아가 외신 왜곡 보도는 한국 신문의 고질병이다. 97년 대통령선거 직후 <월스트리트저널>의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보도를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이 거두절미하고 옮겨 김 당선자를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악의 섞인 오역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특히 대북 관련 보도에서 <조선일보> 등이 보여주는 맹신과 과장은 낯뜨거울 정도다. 일본의 우익 <산케이신문>의 반북 편향의 근거없는 보도를 즉각즉각 받아쓰는 것이 한국의 이른바 ‘거대 신문’들이다. 외신보도는 깨져야 할 성역이다.
고명섭 기자/ 한겨레 여론매체부 michael@hani.co.kr

사진/ 최근 사실확인도 없이 언론전쟁을 다루어 물의를 일으킨 <뉴욕타임스>의 인터넷사이트.
그러나 이 기사는 두말할 것 없는 오보였다. <위클리 월드 뉴스>는 ‘외계인은 클린턴을 지지한다!’, ‘사마귀 피아노 독주회 단독 중계’ 따위의 작문을 기사라고 써내는, 그저 한번 웃고 버리는 황색주간지다. 그런데 ‘믿거나 말거나’식 작문을 번역해 내보낸 것이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이 보도를 사실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정치적 개그’라는 걸 모두 알고 있는데, 우리 독자들은 그걸 진실이라고 믿고 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희극이 우리나라의 사정과 관련된 문제에서 발생하면 비극이 된다는 데 있다. 최근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뉴욕타임스>의 한국 신문 관련 기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문제의 기사는 <뉴욕타임스>가 지난 7일치에 게재한 ‘진보주의자들로부터 공격받고 있는 한국의 보수계 신문들’이라는 제목의 돈 커크 기자가 쓴 기사다. 이 기사는 한국에서 김대중 정부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이른바 ‘빅3 신문’간에 언론사 세무조사 등을 둘러싸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각 신문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이 기사가 나가자 조선·중앙·동아는 다음날치에 이를 2면에 비중있게 보도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이 기사는 사실 확인이라는 보도의 기본 원칙과 관련해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왜곡보도였다. 먼저, 돈 커크 기자는 “<한겨레>가 1987년 대선과 92년, 97년 대선에서 반정부 정치인 김대중을 지지했다”고 썼는데 이는 명백한 오보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한겨레> 창간일이 88년 5월15일임을 생각하면, 창간도 되지 않은 신문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의 기사에 나타난 잘못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기사는 “한국 정부가 3대 신문에 대한 세무조사 기한을 6월19일까지 연장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런 조처가 고발에 필요한 증거를 찾으려는 정부의 결심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세무조사 연장대상은 방송 3사를 비롯해 조선·중앙·동아, 그리고 <한겨레>를 포함해 모두 15곳에 이른다. 이 기사는 한국 정부가 조선·중앙·동아만을 표적조사하고 있는 것처럼 독자를 오도하고 있다. 유재천 한림대 부총장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 부분도 잘못됐다. 기사는 유 부총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심지어 기자들조차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는데, 유 부총장은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런 오보투성이 기사를 쓴 돈 커크 기자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한국 특파원이며, 이번 기사는 그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비록 <뉴욕타임스> 기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뉴욕타임스>는 중대사안을 확인없이 게재한 데 대해 책임을 면할 길이 없고, 이 신문에 대한 신뢰는 한국 국민 사이에서 크게 떨어졌다는 게 언론계 안팎의 평가다. 정부도 지난 8일 <뉴욕타임스>가 왜곡보도를 했음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사실왜곡 기사를 부풀려 보도하기도

사진/ 오보투성이 기사를 자사의 입맛에 따라 해석·인용한 조선·중앙·동아의 관련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