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로 맞서는 114 안내원
등록 : 2001-05-15 00:00 수정 :
“경희 언니, 어떡해.…” “안 돼! 여보 안 돼!”
5월7일 오전 9시. 경기도 분당의 한국통신 본사 로비에서 여성 노동자 여섯명의 삭발식이 진행됐다. 성혜경(40·한국통신노조 114협의회 대전지부장)씨 등 한국통신에서 114 안내일을 한 지 10년이 넘는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바리캉이 머리를 훑고 지나갈 때마다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던 114협의회 대구 지부장의 남편은 끝내 “차라리 단식을 하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굵은 눈물이 검은 머리카락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회사는 이날 저녁 7시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소집해 114 번호안내 분사안을 통과시켜버렸다. 일방적으로 분사 방침을 발표한 지 나흘 만이었다. 삭발을 한 성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한때 4천명에 이르던 114 안내원들이 이젠 1천명여명밖에 남지 않았어요. 부부사원이니 명예퇴직이니 해서 다 내보낸 거죠. 남은 1천여명 중 800여명이 여성 가장들입니다. 어떻게 먹고살라고…. 명백히 성차별적인 해고예요.”
스무살에 한국통신에 입사한 성 지부장은 올해로 114 안내일을 20년째 해오고 있다. 50분 업무에 10분 휴식을 기계처럼 되풀이하며 보낸 세월이었다. 하루 걸러 다가오는 야근에 어깨가 뭉치고 팔이 저려도 묵묵히 참아왔다. 20년 만의 안식년을 몇달 앞둔 그에게 회사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퇴직을 명령했다. 5월3일 분사 방침을 듣자마자 114 조합원들은 옷을 챙겨 서울로 올라왔다. 성씨도 고3 아들 뒷바라지도 미뤄둔 채 서울행을 택했다.
“언제는 ‘한국통신의 얼굴’이라며 부려먹더니 이젠 나가라네요. 자꾸 적자사업이라고 하는데 말이 안 돼요. 114안내를 받고 나서 고객들이 또 전화를 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수익이 생기는 거 아닙니까? 왜 그런 효과는 감안하지 않는 거죠?”
한국통신은 지난해 1조2천억원의 흑자를 냈다. 하지만 적자사업 분야라는 이유로 114분사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수준의 절반밖에 안 되는 임금과 3년 고용 보장. 회사가 제시한 안이다. 114 분사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다. 만약 분사가 회사안대로 진행된다면, 한통당 80원 하는 안내 요금도 원가인 220원 이상으로 오를 전망이다. 이처럼 공공서비스는 이윤의 논리 앞에 무력해졌다. 생전 처음 머리띠를 묶어 본다는 성씨는 “국민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신윤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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