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전적이고 총명하고 창의적이고 개체적이던 젊음은 곧 순응적이고 기계적인 단위로 변신한다. 사유의 의지를 포기한 ‘둥글둥글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윤리적 감수성이 강한 사람은 미치거나 아니면 자신의 도덕을 포기한 대가로 생기는 지독한 자기혐오 속에서 완전히 타락하기 쉽다. 다른 인간을 도구로 보게 하고 또한 자신을 도구화하는 집단에 자신을 맞춰나가는 학습을 끝내서야 그는 비로소 ‘성인’으로 대접받게 된다. 세상에서는 여전히, 그 과정을 유약한 철부지가 ‘사람이 되어가는’ 혹은 ‘착실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로 오인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병자’다. 동시에 그는 다른 사람에게 언제라도 폭력적 상해를 입힐 수 있는 잠재적 가해자로서 변해 있다. 나는 아직도, 호기심과 생기로 가득 찼던 수많은 제자들이 군 생활 뒤 어떻게 변해 돌아오는지를 매 학기 목격할 때마다 가슴이 저리다. 결국 가부장적 동원 분단체제가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수십만의 동질적인 ‘남자 부속품’을 생산하는 공정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폭력성, 가학적 가부장주의, 민주적 의사소통의 부재, 아귀다툼 문화는 과연 이러한 공정과 무관할까? 징병 거부는 여전히 불온한가 헌신적이고 소박한 많은 직업군인을 매도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외경심을 갖고 있다. 다만 신체·정신 건강한 만 20살의 남자를 자신의 의지와 조건에 관계없이 군 조직에 편입시키는 징병제의 반인간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것은 ‘국가안보’를 위해 마땅히 요구되는 제도일까? 개인의 존엄성과 신념을 짓밟으면서 존속되는 ‘국방’은 과연 누구의 안전을 지키고 보장하는 것일까? 요즘 병역비리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뇌물 따위로 징집을 피해가는 데 한몫 한 사람들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혹시 비리에 대한 ‘범국민적’ 규탄 속에서 강화되는 것은, 병역 의무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아닐까? 도처에서 군대를 갔다온 ‘떳떳한’ 사람들의 ‘비리’ 비판이 강조될수록 재삼 강화되는 것은 ‘병역의무의 신성함’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징병제도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 비판과 질문이다. 이제는 병역대체제도와 지원병제도의 도입에 대한 본격적 얘기가 시작될 때가 아닌가? ‘합법적 폭력 연습과정’에 대한 참여 거부의 권리 얘기는 아직도 ‘불온한가’? 지금도 12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그 권리를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당대비평 편집위원 http://dragon.taejon.ac.kr/~kwonh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