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형태의 조직화로 차별 해소 몸부림… 지역일반노조 등 통해 자주적 단결 추진
“우리에게 노동조합은 그림의 떡이었다. 중소 영세·하청기업 노동자 및 임시·계약직, 파견·용역노동자에게 정규직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노조는 이제 더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2000년 4월1일.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창립결의문)
전체노동자의 절반을 웃도는(53%)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화에 나섰다. 물론 비정규직 조직화가 놀랄 만한 일은 아니고 새로운 사실도 결코 아니다. “우리도 노동자”라고 외치며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우는 건 이미 노동현장의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한국통신계약직노조의 길고 외로운 투쟁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우리도 노동자라는 외침에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조직화 결의’와 함께 설움이 동시에 배어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조진원 사무국장은 “근로기준법이 봉건적인 신분 및 남녀 차별만 금지하지만 비정규노동자 차별은 고용형태를 빌미로 한 ‘근대적 차별’”이라며 “조직화의 어려움은 비정규직이 온전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노동자의 노동조합 결성노력이 이제 첫걸음을 뗀 정도에 불과하지만, 조직화 방식은 사업장, 전국, 지역단위 등에 걸쳐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비정규직의 다양한 ‘존재양식’에서 비롯된다. 단순화한 비정규직은 계약기간으로 볼 때 일용직, 임시직 혹은 계약직이 있고 고용형태별로는 간접고용된 파견, 하청, 용역노동자들과 특수고용된 학습지교사, 지입차주, 보험모집인 등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런 존재양식이 조직화로 가는 ‘다양한 길’을 낳는 것이다.
존재양식 달라 조직화 방법도 서로 달라
우선, 사업장별로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정규직 중심의 기존 노조와 별도로 노동조합을 따로 조직하는 흐름이 있다. 지난해 말 7천여명이 해고당한 한국통신계약직노동자들이 올해 초 결성한 계약직노조나 홍익회매점노조, 롯데월드비정규직노조 등이 그렇다. 광주 하남공단에 있는 (주)캐리어 사업장내 6개 하청업체노동자들은 지난 2월 사내하청노조를 꾸린뒤 2년 이상 연속근무한 하청노조원은 원청에서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조직화 시도는 곧 자신들의 고용을 거는 결단이기도 하다.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면 원청업체는 곧바로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해지해버리기 일쑤다. 조직화의 대가로 돌아오는 해고를 무릅써야 하는 셈이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사업장 틀을 뛰어넘어 업종별 전국단일노조를 구성하기도 한다. 레미콘운전기사 등으로 구성된 전국건설운송노조, 학습지교사노조, 전국보험모집인노조 등이 그렇다. 특히 전국여성노조는 비정규직의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노동자를 조직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기존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을 끌어안는 조직화 노력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일종의 ‘기득권층’이라 할 정규직노조가 ‘노동자는 하나’라는 깃발 아래 비정규직노동자 차별 철폐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롯데호텔노조와 이랜드노조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회사쪽과 싸운 게 대표적이다. 보건의료노조 고대병원지부는 올해 임단협에서 정규직은 임금을 12% 인상하는 대신 비정규직은 15% 인상안을 내놓고 있다. 비정규직의 인상폭을 더 높여 임금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경희대병원지부는 지난해 6일간의 파업 끝에 조무사 등 비정규직 40여명을 정규직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대병원이나 경희대병원 모두 조합원으로 가입한 비정규직은 한명도 없다. 노조규약이나 단체협약상 가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해도 회사쪽이, 물론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 노조 가입을 이유로 고용계약을 해지해버리는 탓에 비정규직이 쉽사리 노조의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고대병원지부는 “비정규직 조합가입은 노조에게 비정규직 조합원을 보호할 책임과 부담을 지운다”며 “기존 노조들은 아직 여기에 대한 자기해답과 대응준비가 덜 돼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에서 금융노조는 각 금융기관에 기존 정규직노조와 별도로 비정규직 지부를 두기로 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기존 단위지부마다 비정규직 보호에 노조의 역량을 쏟아부어야 하는 부담을 토로한다”며 “지금처럼 노동계의 산별 건설 초기단계에서는 따로 비정규직 지부를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산별노조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포괄하는 형태이지만 아직 기업별노조를 완전히 벗지 못한 만큼 비정규직을 안고 가려면 별도의 지부를 둘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노동자 내부의 걸림돌을 뛰어넘으려면…
특히 그는 “비정규직노동자의 조합가입에 대한 정규직노동자의 말없는 저항이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제도화된’ 차별 못지않게 노동자 내부의 차별과 불평등 문제가 함께 가로놓여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정규직노조들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제발 정규직화만 들고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여기에는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정규직이 ‘고용안정’의 안전판으로 삼는 기득권 욕망이 숨겨져있다. 정리해고 때 비정규직부터 잘려주면 자신들의 고용은 상대적으로 안정된다는 것으로 정규직은 어쩌면 비정규직이 당하는 차별의 수혜자다.
이런 몇 가지 비정규직 조직화의 한계를 인식하고 나아가 그 한계를 극복할 방안으로 나타나고 있는 또다른 흐름이 부산지역일반노조와 같은 지역일반노조 건설이다. 지역일반노조는 같은 ‘지역’노동자들이 기업, 업종, 산업을 뛰어넘어(노동자 ‘일반’) 하나의 노조 깃발 아래 묶이는 것이다. 정규/비정규직을 가리지 않는 지역일반노조는 ‘비정규성을 띠는 노동자 일반’을 광범하게 조직한다는 점에서 산별노조 및 업종별·직업별 지역노조(예컨대 청계피복노조나 성남제화공노조 등)와 다르다.
지역일반노조는 지난해 4월 결성된 부산지역일반노조를 시작으로 진주, 안양, 마산, 울산 등 몇몇 지역에서 이미 결성했거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지역일반노조 정의헌 의원장은 “일반노조는 노조를 꾸리기 어려운 중소영세기업노동자들과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연대해 결성하는 것”이라며 “영세사업장 노동자는 고용이나 노동조건이 불안정하고 사회적 지위에서도 비정규직과 비슷하기 때문에 같이 단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지역일반노조에는 현재 마을버스, 유선방송, 청소업체 등 30여개 사업장 노동자 500여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그동안 10여개 사업장과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박영삼 정책기획국장은 “주변부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확보할 유력한 수단으로 지역일반노조운동을 내세우는 건 어쩌면 현재의 노동운동 지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 안에서 비정규직이 고립과 차별로부터 벗어나려면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경인지역평등노조도 지역일반노조다. 학교청소원, 외국인노동자, 판매업종노동자 등 영세사업장 비정규노동자를 중심으로 100여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서울경인지역평등노조 임미령 위원장은 “노동3권으로부터 소외되고 하루 12시간 일해도 연장근로수당도 못 받는 노동자들이 조합원의 대다수”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등에서 차별이 없는 평등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서울경인지역평등노조는 노동현장에서 겪는 고통의 강도가 클수록 노동자 스스로 조직화하려는 노력도 커진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임미령 위원장은 “어떤 사업장 소속노동자 중 단 한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더라도 사용자와 교섭을 벌인다”며 “현재는 대학내 청소원과 식당노동자 등 서너명을 위해 학교당국과 교섭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월 설립된 경기도노동조합은 조합원 800여명으로, 영세사업장 제조업 노동자뿐만 아니라 미화원, 하수도청소원, 건널목관리원 등 주로 자치단체에 고용된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가입하고 있다. 노조는 올해 고양시청, 부천시청 등과 단체협약을 맺기도 했다. 경기도노동조합 진현정 위원장은 “다양한 비정규직을 끌어안기 위해 개별적으로 조합원을 받고 있다”며 “간접고용 때문에 일자리가 불안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들을 묶기 위해 일반노조를 꾸리게 됐다”고 말했다.
산별 조직전환 맞물려 노동계 갈등 불씨도
그러나 비정규직 중심의 지역일반노조 흐름은 정규직 중심의 전체 노동계가 꾀하고 있는 산별 조직전환과 맞물려 있다. 민주노총 김정근 조직2국장은 “아직 기업별노조의 틀이 유지되고 있는 산별 초기단계에서 비정규직을 안고 가기 어려운 점이 있는 만큼 비정규직 스스로 일반노조를 건설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그러나 산별 전환 흐름과 일반노조 건설 흐름이 노동계에 갈등을 불러올 소지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박영삼 국장도 “양쪽 모두 ‘불구화된’ 산별노조와 ‘이상한’ 일반노조가 혼합된 구조를 갖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만큼 노동계가 상호보완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지역일반노조는 복수노조 허용이 5년간 유예된데다 작업장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 단결권보장에 적극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서 비정규직노동자가 자주적으로 단결하는 유력한 길로 떠오르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부산지역일반노조가 부산MBC 계약직노동자의 권리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고용안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 이정용 기자)

한국통신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오랜 싸움을 통해 계약직노조를 출범시켰다. 배선작업을 하고 있는 한국통신 노동자.(사진/ 윤운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