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골프회동
등록 : 2001-05-08 00:00 수정 :
민주당·자민련·민국당 등 여3당 지도부가 호화판 골프를 친 것이 세간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5월6일 텔레비전 방송과 다음날 신문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민주당과 언론사로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당사자들은 “휴일날 골프 한번 뻑적지근하게 친 것 같고 뭘 그러느냐” 항변을 하겠지만, 혀만 차고 넘길 수 없는 사안 같습니다. 정치가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 아니, 일부 정치인들이 퇴출돼야 할 이유를 상징적으로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기골프와 관련된 한심한 대화, 고가의 상품과 호화판 뒤풀이도 욕먹을 만한 일이지만, 그보다 옆에 텔레비전 카메라와 기자들이 있는데도- 곧 공개된 공적 회동인데- 어려운 사회현실이나 일반 정서와 한참 떨어진 행태를 버젓이 보인 것이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민국당으로 말을 갈아타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김상현 최고위원은 “싱글을 하면 민주당 권노갑 전 최고위원이 1천만원을 내놓기로 했다”고 했으며, 옆에 누구는 89타만 치면 500만원을 주겠다고 거들었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라운드 뒤 “잘 쳐서 돈을 받았지” 하고 자랑하다가 덕담삼아 한 얘기로 상금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돈이 오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평소 1천만원 보기를 어떻게 해왔는지 짐작이 갑니다.
골프장쪽은 일제 혼마골프채와 고급퍼터, 발리골프화 등을 상품으로 협찬했으며,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이름이 새겨진 골프채를 혼마 회장에게서 선물받았다고 자랑했습니다. 김윤환 민국당 대표는 혼마 파이브스타 가격이 2400만원 이상이라고 거들었습니다. 이들은 9홀을 추가로 돌아 27홀을 마친 뒤 조니워커블루 5병으로 만찬을 했다고 합니다.
3당연합으로 원내 과반수를 겨우 만든 지 한달째. 하지만 개혁입법이 물건너가는 등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는 자괴감이 여당 내부에서 한껏 높아진 시점입니다. 시민들이 느끼는 실망감은 오죽하겠습니까? 값비싼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골프장에서의 행태가 (권력)탐욕, 부패, 놀음, 건달 등의 이미지와 오버랩되는 것을 떨치기가 어렵습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신뢰의 지전은 이미 떨어졌으며, 남은 동전 몇닢마저 땡그랑 달아났습니다.
특히 골프로 물을 흐려온 김종필 명예총재는 필드나 정치판, 아니면 둘 다를 정말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는 지난해 골프 약속 때문에 국회일정까지 변경해 “이름대로 종일토록 필드에서 살고파서, 3김씨 중 유일하게 제일 잘하는 것이니까, 양지만 찾아다니는 습성대로 탁 트인 골프장이 좋아”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습니다.
단, 정치발전의 전기가 된다면 이번 골프회동은 값진 일로 기록될 것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