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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조·중·동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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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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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치러진 4·26 보궐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주당은 왕창 쪽이 팔렸습니다. 서울은 물론 기반인 호남에서도 보기좋게 물을 먹었습니다.

승리자는 한나라당? 표정관리에 바쁜 한나라당 당직자 당원들 외에는 안타깝게도 “오, 예!” 하며 손뼉쳐줄 국민이 그리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패자만 있고 승자는 없는 선거? 그런 선거는 없습니다. 사생결단의 싸움인데 누군가 승자와 패자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지요.

그러면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리자는 누구일까요. 이런 기준으로 따져보는 것이 공정할 것 같네요. “누가 가장 민주당이 안 되기를 바랐고, 안 되도록 애를 썼고, 그리고 안 돼서 쾌재를 부를까?” 3박자를 빠짐없이 가장 제대로 갖춘 곳은 아마 ‘조·중·동’ 또는 ‘조·동·중’일 것입니다.

정신나간 정권, 브레이크 풀린 정권, 강성정권, 언론탄압정권, 재정파탄정권, 부패정권, 무능정권, 지역정권, 독재정권, 권주정권, 폭력정권, 태생적 한계정권, 친북정권, 치매정권…. 융단폭격에 가까운 비판을 해왔습니다.

독자로서 제가 받은 메시지는 “부패하고 무능하며 막돼먹은 정권이므로, 믿어서도 안 되고 힘을 실어줘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민족지 또는 고급지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연일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데 어떻게 따르지 않을 재간이 있겠습니까? 심지어 한나라당도 야당 구실 제대로 못한다며 엉덩이를 걷어차곤 했습니다.

이른바 ‘메이저신문’의 문제정권에 대한 위대한 승리입니다. “선거를 누가 하는데. 민주주의는 여론정치고, 여론 하면 바로 우린데, 감히 어따 대고!”하는 자축의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조·동·중 또는 조·중·동이 ‘언론탄압’에 굴하지 않고 할소리를 다한 것은 언론자유의 신장으로 칩시다. 그리고 이렇든 저렇든 선거결과는 누구나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만, 저 역시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선거는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가 여럿 있는 싸움판에서 혼자 이지메를 당한 꼴이 됐기 때문입니다.

민주화, 세계화를 맞아 우리가 겪는 변화와 혼란은 깊고 큽니다. 의식과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국면입니다. 집권당이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근저를 따져보면 야당, 언론, 기득권 세력 등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정권 때리기가 언론 세무조사에 대한 반작용으로 한바탕 난리를 친 것이라면요? 반대는 좋지만 선거국면에서 그것에 압도된 보도는 민주주의를 비웃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선거결과야 아쉬울 게 없지만, 선거과정에서 레퍼리가 돼야 할 ‘메이저신문’들이 플레이어처럼 뛰고는 “거봐라” 하며 우쭐해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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