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여성앵커 단독진행

357
등록 : 2001-05-02 00:00 수정 :

크게 작게

나는 지난 3년 동안 TV를 거의 보지 않았다. 3년 전 1년 계획으로 시작한 ‘TV 안식년’을 연장 시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TV를 안 보고도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애청자들 못지않게 잘 안다. 우리같이 TV의 사회 문화 침투력이 강한 나라도 드물기 때문이다. 나는 드라마 <태조 왕건>을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줄거리, 뜨는 스타, 그에 연관된 에피소드, 상업적 효과 등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우리나라 사회 문화 분위기가 그것을 알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다양성이 없어서 하나를 알면 열을 추정하는 일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한TV공화국’에 대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기 드라마에 대해서는 말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니, 그래도 내가 가끔 시청하는 뉴스에 대해서 말해보자. 나는 우리나라 TV뉴스는 왜 꼭 남녀 쌍으로 진행하는지 궁금하다. 메인 뉴스는 말할 것도 없고, 좀 중요한 시간대의 진행은 어김없이 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독진행 뉴스가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다.

왜 멀쩡한 인간을 로봇으로 만드나

더구나 TV 속 남녀 앵커는 우리의 전통적 사회 구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모든 것을 주도하는 남성과 그를 다소곳이 보조하는 여성이란 패턴이 뉴스진행만큼 잘 반영돼 있는 곳도 없을 것이다(앵커구성을 무슨 가족구성으로 착각하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아무리 여권운동이 있고, 여성부가 정부기구로 들어서며, 여성의 날 행사를 거국적으로 치러도 뉴스시간대 ‘사각의 틀’ 안은 그 상징처럼 꽉 막힌 무풍지대다.


나는 21세기의 여권신장운동은 ‘전략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찌든 때를 무턱대고 문지른다고 벗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기득권이라는 것이 ‘사회의 문신(文身)’처럼 한번 새겨지면 끝장인 곳에서 타파 전략을 말하는 것 자체가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될지는 모르겠다(하긴 학계와 교육계의 기득권을 어쩌지도 못하는 나 자신을 생각하면 무슨 조언을 하랴만).

어쨌든 전형적으로 ‘암탉 거느린 수탉’의 패턴을 수십년 해왔기 때문에 아직 그것이 이 시대에 무슨 문제인지 의식조차 못하는 상황에서는 ‘암…수탉의 어깨동무’ 패턴으로의 즉각적 전환은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이제 해결책은 명확하다. 갈라서는 것이다. 나는 여성앵커 단독진행을 제안한다. 남성앵커 단독진행이야 따라오는 것이니까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제 더이상 뉴스 시간에 ‘큰오빠’ 남성앵커 휘하에 ‘귀여운 누이’ 같은 모습으로 바비 인형의 미소를 지으며 중요도가 떨어지는 뉴스거리만 골라서 예쁘게 입만 벙긋대는 여성앵커를 보고 싶지 않다.

왜? 그때의 여성앵커는 아무런 활력도 생명력도 없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히 여권신장의 문제가 아니다. 보편적 인간 존엄의 문제다. 왜 멀쩡한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고 인형으로 만드는가. 생명력 없는 인간의 모습을 가뜩이나 활력을 상실한 우리나라 방송의 ‘사각의 틀’ 안에서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 나는 평온 속에서도 에너지가 분출되는 그런 앵커의 모습을 보고 싶다.

남녀 앵커가 단독진행하면 각자 자기의 모습을 찾을 것이다. 즉 인간의 모습을 되돌려 가질 것이다. 남자앵커는 더이상 위엄스런 로봇 같은 자세를 취하지 않아도 되고, 여성앵커는 더이상 분위기 맞추는 예쁜 인형의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같이하고 싶으면 다시 만나 ‘친구처럼’ 재미있고 의미있게, 곧 생명력 있게 함께 진행하면 된다.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문제

굳이 수많은 외국의 성공 사례를 들 필요도 없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우 실용적인 접근법이기도 하다. 이상적인 남녀 앵커 ‘커플’을 구성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앵커의 원래 뜻을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앵커는 원래 단수로서 더 의미가 있지 ‘앵커즈’가 되면 커플구성에 특별히 성공하지 않는 한 별로다). 그리고 각 방송에서 단독진행하는 여성앵커, 남성앵커들이 서로 정공법으로 신나는 경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번 상상해보라. 신나는 일 아니겠는가? 앵커들은 생명력을 되찾고, 방송사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 않으며, 시청자는 즐거움을 만끽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방송이든 먼저 시작하면 득을 볼 것이다. 후발 주자는 모든 방송사가 여성앵커를 선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남성앵커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릴지도 모르니까…. 내가 ‘방송의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건가?

김용석/전 로마그레고리안대 교수·철학 uchronia@netsgo.com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