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이민아] 생사의 전쟁터… 나는 떨었다

357
등록 : 2001-05-02 00:00 수정 :

크게 작게

인간의 무력함을 느낀 응급실 체험…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통제된 혼돈’ 속으로

응급실에 환자가 호송돼온 모습. 사진에서 기자가 운반도구에 손을 붙이고는 있지만 실제로 환자를 운반할 기회도 없었다. 방해 안 되게 환자 옷가지를 챙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통제된 혼돈(controlled chaos). 의사들 사이에서 응급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혼돈 속에서 과연 어떤 드라마가 생겨나는지 환자들과 부대끼며 관장도 해보고 석션(suction: 환자의 가래 및 이물질을 뽑아내는 것)을 해볼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울산 동강병원 응급실에서 2박3일 동안 같이 먹고 자기로 일정을 잡아두었다. 그러나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 관련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의료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출발을 앞두고 뒤늦게 알게 되었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잔심부름만 하게 되더라도 일단 부닥쳐봐라.” 취재 지시가 떨어졌다. 의료진 옆에서 제3자 입장으로 살펴보며 저기 피닦아라 하면 닦고, 쓰레기통 비우라 하면 비울 각오로 26일 아침 울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너덜거리는 살점…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인턴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하는 전문의.
그러나 이게 웬걸, 26일 목요일 종일토록 응급실에서 대기했어도 환자들이 별로 없었다. 하루 평균 60명, 붐빌 때는 120명도 온다고 하더니, 침상이 텅텅 비었다.


금요일 오후 7시.

“터미널 병원(그 지역에서 환자들이 최종으로 실려오는 종합병원)이라더니 환자가 없네요?” 금요일 저녁 참을성이 바닥난 내가 물었다. ‘이렇게 한가하다니 진작 의술의 길로 접어들 것을.’

“오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내공이 강하신가봐요. 환자가 근접을 못하네요. 원래는 정말 정신없는데.”

간호사 한명이 웃으며 말했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말 떨어지고 십분도 안 돼서 밖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가 오토바이 타고 가시다가 사고나셨습니다!”

하체를 잘 움직이지 못하는 할아버지 한분이 들것에 실려 들어오셨다. 앉아 있던 응급실 과장이 튕기듯 일어났다.

“소독 준비.”

간호사 두명과 의사 셋이 달려들어 할아버지를 옮겼다. 몸이 들썩였다. 그러나 운반과정에서 실수라도 하면 큰 일이므로, 나는 할아버지 옷가지만 챙겼다. “어디가 안 좋은 건가요?” 할아버지와 같이 온 사람이 물었다. “자세히 봐야 알겠지만 대퇴부 골절로 보입니다.” 골절만이 아니었다. 의술의 길을 걸어볼까 하는 생각은 할아버지 다리를 보는 순간 사라졌다. 마치 칼로 얇게 껍질만 벗겨낸 것처럼 다리 피부가 벗겨져서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힘줄과 핏줄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응급과장은 여자분이었는데, 조금 전까지 “연애할 시간이 너무 없다”며 농담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너덜거리는 살점을 열심히 씻어내고 있었다. 일곱시 삼십분, 응급처치가 끝나고 바로 각종 검사에 들어갔다.

‘이것 봐라.’ 꿔다놓은 보릿자루의 비애가 사라졌다. 서울에서 미리 공부해온 응급실 처리과정을 그대로 좇아가는 의료진들을 보며 잠시 감독관 기분에 빠져본다. 환자가 응급실에 가면 다음의 과정을 거친다. 가장 먼저 환자가 왔음을 알리고 접수한다. 접수를 해야 전산처리가 시작되고, 비로소 엑스레이 촬영요청서 등을 보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뒤 의사는 환자나 보호자에게 환자의 병력(病歷)을 묻고 진찰한다. 동시에 피검사, 초음파, 엑스레이 등 각종 검사요청서를 보내고 치료한다. 검사결과가 나오면 환자의 입원, 수술, 퇴원을 결정한다. 이 할아버지는 대퇴부 골절에 복숭아뼈도 골절된 상태.

오후 8시10분경.

정말 혼돈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할아버지 육십에 사십인데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날카로왔다. 혈압이 최고 육십에 최저 사십이란 뜻.

매맞는 아내들

단순 찰과상을 입은 아기의 상처를 봉합하는 모습. 아기는 의외로 힘이 세서 두사람이 붙잡아야 한다.
“육십에 사십이라고요! 센트럴 라인 준비!” 사고로 인한 쇼크였다. 일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중환자 세명이 더 들어왔다. 부정맥으로 인해 위급한 상황에 있는 할머니, 알레르기로 인해 쇼크위험이 있는 남자…. 신문사로 치면 마감시간 삼십분을 남기고 대형사건·사고가 한꺼번에 터진 꼴이었다. 차라리 손가락이 잘린 사람은 덜 위급하다. 손가락을 식염수에 넣어놓고 24시간 안에 붙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쇼크를 일으키고 있는 환자의 처리는 분초를 다툰다. 간호사들이 이리저리 뛰기 시작했다. 주삿바늘이라도 대신 찾아주어서 일손을 덜어주고 싶었지만 나는 어떤 바늘이 적당한 크기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오후 8시15분경.

의료진들이 모두 노령환자들에게 매달려 있자 기다리던 아기엄마가 몹시 흥분했다. 돌쯤 돼보이는 아기가 놀이터에서 뒤로 넘어져서 엑스레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흥분하는 것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같은 시간도 아기엄마에겐 몇배나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엑스레이 결과 아기는 두개골에 금이 가 있었다. 두개골에 금이 간 경우 4주면 붙는다. 문제는 출혈인데, CT를 찍지 않아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기가 잘 울고 팔다리를 자유로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서 출혈은 없어 보였다.

“아기 두개골에 금이 갔습니다.” 과장의 말이 떨어지자 아기엄마가 폭발했다. “젊은 목숨이 중요해요, 늙은 목숨이 중요해요! 언제부터 기다렸는데 나이든 사람들한테만 매달리는 거예요!” “젊은 목숨이나 늙은 목숨이나 다같이 중요해요.” 과장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이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통행에 방해 안 되게 가만히 있는 것뿐이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그뒤 참 힘든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소중한 자식의 머리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나라도 아기엄마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더 경각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이날 저녁 이분은 사망하셨다. 결과적으로 의사의 판단이 옳았던 셈이다.

오후 8시 30분경.

뜨거운 물에 손을 덴 아기가 들어왔다. 2도 화상. 울음소리가 높았다. “얘 좀 어떻게 해주세요!” 또다른 아기엄마가 가만히 서 있는 나에게 말했다. 이름표를 붙이고 있지 않으니 청소부로 생각할 거라고 믿었는데, 흰 가운만 입으면 다 의사인줄 아는가 보다. 힘들었다. 하루종일 서 있어서 생긴 피로보다 그 자리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힘들었다.

오후 10시경.

웬 아주머니가 거의 실신상태가 되어 걸어들어왔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간호사들이 침대에 환자를 눕히고 수액(흔히 링거액이라 하지만 링거액은 수액의 한 종류일 뿐이다)을 꽂았다. 정황으로 보아 남편을 피해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곧이어 여자분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찾아와 안타깝게 말했다.

“아니 왜 그렇게 살아? 계속 그렇게 살 거야?” 누워 있는 여자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두 시간쯤 있다가 남편이 쭈뼛쭈뼛 아내를 찾아왔다. 보호자가 왔으니 집으로 데려가야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인턴 의사가 “아직 정밀검사 결과가 나와야 됩니다”라며 말렸다. 그러고는 내게 귓속말로 말했다. “임프레션(impression: 진단이 내려지기 전에 임상적인 증상과 신체검진만으로 내리는 추정진단)으로 봐서는 직접적인 외상은 별로 없는데, 심적 스트레스로 인해서 스스로 병이 생기는 경우 같습니다. 여자분들은 저런 경우가 많아요. 부부싸움하다 꼭 맞지 않아도 스트레스가 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맞고 오는 경우도 많고요.” 응급실이 본의 아니게 집 말고 갈 곳 없는 아내의 피난처 구실을 하는 듯했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아내는 안전한 공간에서 누워 있을 시간을 벌게 되는 것이다.

새벽 3시.

이때쯤 되면 응급실 환자들은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간다. 비로소 한숨 돌렸다.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의료진에게 해줄 건 있었다. 음료수를 뽑아 의료진에게 나눠주며 “아까 고생하셨지요” 하고 위로했다. 한 인턴 의사가 “오늘은 한가한 편이었는데요”라며 웃는다. 나중에 들으니 아까처럼 환자들이 많을 때 한 환자가 “왜 저는 안 봐주세요”라고 항의할 때는 “저분이 더 급해요”라는 대답을 해선 안 된다고 한다. ‘저 환자 때문에 내 진료시기를 놓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해 환자를 더 흥분한다는 것이다. 그럴 땐 지키지 못할 약속일망정 “네, 금방 봐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낫다고 한다. 한 의사는 “아까처럼 중환자들이 겹칠 때면 몸이 공중분해돼서 어디론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라고 털어놓았다.

3월에는 입원하지 말라?

사용한 수술장갑을 씻는 모습. 살균한 수술장갑은 얼음주머니로 재활용하기도 한다.
이틀이 지나자 내가 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을 비로소 찾을 수 있었다. 단순 찰과상을 입은 아기의 상처를 봉합하는 동안 붙잡는 일이었다. 응급실에는 아장아장 걷다가 폭 고꾸라져서 눈가를 찢고 오는 아기가 많다. 하루에 5∼6명은 온다고 한다. 두살 남짓한 아기들은 가만 있으라고 타일러도 알아듣지 못하고, 붙잡으려 하면 어디서 생겼는지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맘먹고 팔딱팔딱 뛰면 어른 둘이 붙잡아도 못당한다. 예민한 눈가라서 수술은 더욱 조심스럽다. 그래서 대개 보호자 한명과 간호사가 머리와 몸통을 잡는다.

내가 있는 동안에는 아기 두명이 와서 눈썹부위를 봉합하고 갔다. 둘 다 걷다가 넘어져서 가구에 찧였다고 한다. 아기엄마와 함께 아기를 잡고 있으려니 아기가 자지러질 듯 울기 시작했다. 아기엄마도 아기 얼굴을 외면하면서 같이 울었다. 아기를 잡는 나도 땀이 뚝뚝 떨어졌다. 한땀 한땀이 고행길이었다. 그런데 시술이 끝나고 한 보호자가 “누가 이렇게 아프게 했어. 때찌 해줘라”면서 나를 가리키자 아기가 때찌때찌 하며 나를 때리는 시늉을 하는 거였다. 아기 몸은 같이 잡았는데 아기는 나만 원망한다. “다 당해본 일입니다.” 한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응급실 의료진들도 가지가지다. 혹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누굴 붙잡고 이야기할지를 알기 위해서 적어본다. 응급실에는 환자를 단순 수송만 하는 응급기사, 한가한 낮시간에 나와 실습하는 간호대 실습생, 6개월만 훈련하면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간호조무사가 있다. 간호사 중에도 간호과장, 차지간호사(charge간호사: 주로 기록을 담당하는 간호사), 간호사가 있고, 의사로 인턴, 레지던트, 전문의가 근무한다. 대학병원에서는 의대 실습생이 나와서 심전도 정도를 찍기도 한다.

인턴에는 3월턴이 있고 5월턴이 있다. 3월턴은 3월에 들어온 인턴이라서 그렇게 부른다. 대개의 인턴들이 여기에 속한다. 5월턴은 군대에 갔다온 사람들이 5월에 들어와서 5월턴이라고 부른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3월에 환자들이 가장 많이 죽어나간다”는 농담이 있다. 특히 성형외과 같은 경우는 수술날짜를 9월로 잡는 게 좋다는 말이 있다. ‘초보의사’ 인턴들 때문에 나온 말이란다.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응급실 인턴은 12시간 근무하고 12시간 쉬며, 간호사들은 하루 3교대로 근무한다. 역시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이 병원 전문의는 일주일에 다섯번은 하루 12시간 근무를, 두번은 8시간 근무를 하고 있었다. 자정부터 오전 여덟시까지는 응급실의 사각시간대다. 대개 레지던트들이 받쳐주기는 해도, 인력이 부족해 전문의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의 사흘은 천사를 악마로 바꿔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환자들에 대한 연민보다는 짜증이 앞서기 시작했다. 환자들이 무섭고 싫었다. 아프다고 하는 사람보다 아프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더 무서웠다. 아프다고 하는 사람은 꿰매고 조처해주면 되지만, 정말 아픈 사람은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응급실에 온 사람들이 점잖은 사람들만은 아니었다. 술먹고 응급실 앞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도 부지기수고, 환자 옆에 보호자가 너무 많이 모여 있어 진료에 방해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면 누군가 위력을 써서라도 이들을 내보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곤 했다. ‘진료를 방해하거나 의료기기 등 기물을 손상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응급실 들머리에 적힌 글귀다.

무시무시한 신경전

팽팽하게 엇갈리는 생사의 기로만큼이나, 응급실 환자와 의사의 신경전 역시 무시무시하다. 고통 속에서도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전혀 못 갖고 있는 환자의 입장도, 또 한정된 인력과 지식으로 순간순간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의사도 결코 쉬운 입장이 아니다. 아기엄마들이 아기를 데리고 와서 하는 첫말은 “흉터 안 남겠지요?”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의사의 대답은 이랬다. “찢어졌는데 흉이 어떻게 안 남습니까.” 그러고보니 질병과 사고 앞에서는 의사를 포함한 인간 모두가 지극히 무력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혼돈을 통제된 혼돈으로 만드는 정도인가! 응급실을 떠나면서 씁쓸하게 떠오른 생각이었다.

취재협조: 울산 동강병원

글/ 이민아 기자 mina@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