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친구 ‘에밀리 쉰들러’
등록 : 2001-05-02 00:00 수정 :
“에밀리 쉰들러 리스트를 아시나요?”
스티븐 스필버그가 <쉰들러 리스트>에서 외면했던 오스카 쉰들러의 부인 에밀리 쉰들러(93)의 참모습이 세상에 알려질 전망이다.
아르헨티나에 머물고 있는 그를 수년 동안 취재해온 독일의 여성 저널리스트 에리카 로젠버그가 그의 ‘진실’을 담은 <나, 에밀리 로젠버그>를 올해 말께 출판할 예정이라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 책에 그려진 에밀리의 모습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렸던 ‘착한 아내’만이 아니다. 오스카 쉰들러의 곁에서 유대인 구출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동지’였을 뿐만 아니라 ‘쉰들러 리스트’와는 별도로 ‘에밀리 쉰들러 리스트’를 갖고 있는 여성이다. 2차세계대전 때 마지막 가스실로 끌려가는 유대인 300명을 혼자 구해내는 등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했다.
하지만 에밀리 쉰들러의 현재 삶은 곤궁하다. 그는 유대인 구출에 전 재산을 소모했던 남편과 함께 1946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끼니걱정을 해야 할 만큼의 가난이 두 부부를 고통스럽게 했다. 더욱이 1974년 남편이 독일로 돌아간 뒤 그는 홀로 아르헨티나에 남아 이스라엘과 독일 정부가 주는 몇푼 안 되는 연금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노환으로 수술을 받기까지 했다.
에밀리는 지난 99년 독일 힐데스하임시에서 살고 있는 남편 친구의 집에서 발견된 ‘쉰들러 리스트’를 돌려받기 위해 <슈투트가르트자이퉁>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리스트의 반환과 함께 10만마르크의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이다.
로젠버그는 “에밀리는 가난과 고통에 강해진 여성”이라며 “몇년 안 되는 여생 동안 얼마나 쓸 수 있을지 모르는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쉰들러의 아내이고, 동지였다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소송을 걸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독일법원은 최근 에밀리가 ‘적법한 상속자이고 남편 쉰들러가 사망 전에 다른 여자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조건으로 2만5천마르크(16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에밀리에게 세상은 스필버그가 설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강남규 기자/ 한겨레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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