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마음을 얼음에 새겼다
등록 : 2001-05-02 00:00 수정 :
4월29일 오후, 부처님오신날을 이틀 앞두고 차없는 거리가 된 조계사 앞길은 축제분위기로 들썩댔다. 하늘에는 색색가지의 연등이 걸려 있고, 각종 바자회가 길 양쪽에 이어졌다. 대로의 중앙에서는 목수들이 나무를 부려놓고 장승을 깎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목수행렬의 끄트머리에서 괴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빡빡머리의 사내가 전동톱으로 얼음을 깍고 있었던 것이다. 사내는 북극곰, 펭귄에 이어 불상도 다듬었다. 화가 최병수(41)씨였다.
시간이 지나자 얼음조각들이 녹아내렸다. 부처님의 손도 녹아내렸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경고하기 위해 이러한 행위미술판을 벌인 것이다. 최씨는 며칠 전 지구의 날을 맞아 손톱 끝에 미사일을 단 갈퀴 같은 손이 지구를 삼키는 모양을 형상화한 ‘NMD 미국의 환상’전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벌이기도 했다.
그를 따라다니는 직함은 여러 개다. 환경미술가, 설치미술가에서 바리케이드화가라는 별명까지…. 중학교 중퇴학력으로 식당 주방보조원, 선반공 등을 거쳐 목수로 일하던 그는 86년 홍익대생들이 정릉담벽에 <상생도>를 그릴 때 사다리를 설치해주러 갔다가 우연히 붓을 잡았다. 이적표현물 제작혐의로 치도곤을 당했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한 재능있던 청년은 역사와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이한열 열사의 사망소식을 접하고는 신문에 난 그의 사진을 하룻밤새 널빤지에 새겼다. 이 판화는 그뒤 수천, 수만장의 손수건에 찍혔고 대형 걸개그림으로도 제작됐다.
그뒤 지금까지 최씨는 분단문제와 생태환경파괴를 경고하는 실험적인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97년 교토 지구온난화대책회의에서 얼음조각작품 <펭귄은 녹고 있다>를 발표해 세계적인 환경미술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작업이 이뤄지는 곳은 주로 현장이다. 요즘에는 전북 부안의 해창갯벌에서 아예 농가를 한채 얻어 새만금 갯벌살리기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 틈틈이 반미집회나 언론개혁집회가 있으면 두말 않고 달려간다. “창작의 소스가 끊이지 않으니 붓과 망치와 끌을 놓을 수 없죠. 현장미술은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밑빠진 독에 불상을 들어앉혀 환경파괴를 경고한 설치전 ‘초심불심’은 5월6일까지 조계사 앞마당에서 열린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마음이 상생의 마음”이라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