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통일시에서 묵의 향기가…

321
등록 : 2000-08-09 00:00 수정 :

크게 작게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해서 사람들이 통일문제에 많이 주목하는데, 통일이야기를 맘놓고 하기까지 싸워온 사람들도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권영환(51)씨는 그런 ‘싸워온’ 사람들이 남긴 글을 예술로 다시 옮기는 사람이다. 바로 서예다.

“70∼80년대 통일운동가들은 시 한편만 써도 여기저기서 고초를 겪곤 했어요. 그렇게 힘들게 쓰인 시들이 책에 묻혀만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통일시를 되살리는 손은 ‘나의 왼팔’이다. 왼손잡이여서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서예를 배운 그는 85년 공장에서 일하던 중 갑작스런 감전사고로 오른팔을 잃었다. 그래도 붓은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글씨를 쓰기 위해 왼손을 단련했다.

통일시에 빠져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이었다. 그가 경기 성남 주민교회에서 빈민공동체 일을 돕고 있을 때였다. 문익환 목사의 ‘통일은 다됐어’, 북한작가 오영재씨의 ‘자리가 비었구나’ 등이 발표될 때마다 한자 한자 옮겨 쓰기 시작했다. 그가 쓴 통일시 서예작품은 민간차원의 통일논의가 금기시되고 있던 90년대 초의 암울한 상황에서 갖가지 사연을 낳기도 했다. 93년 제2회 전시회를 열 때는 오영재씨의 시를 출품했다가 경찰에 불려가기도 했다. “당시 <한겨레신문>에 오영재씨 시가 실린 것을 보고 그대로 썼는데 왜 나만 잡느냐고, <한겨레신문>도 잡으라고 형사한테 그랬지요.”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통일시는 문 목사의 ‘문석이 형님’. 자신의 평소 생각을 이 시가 고스란히 담아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형님하고 (남한의)나하고 오다가다/ 북청이나 단청쯤 어느 주막에서 만나/ 술자리 한 판 떡 벌어지게 차리”는 것이 통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요컨대 통일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먼저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통일관’이다.

그의 왼손은 15년째 단련을 계속해오고 있지만 감전사고의 후유증으로 갈퀴모양으로 굳어 움직이지 않는다. 마비된 둘째손가락과 셋째손가락 사이에 붓을 끼워 쓰다보니 한 작품에 한주도 걸리고 한달도 걸린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손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마다않고 주무르고 또 주물러주는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그런 작품들을 모아 그가 이번에 세 번째 전시회를 가진다. 8월9일부터 22일까지 ‘긴냇 권영환 통일시 모음전’이란 이름으로 서울 안국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다. 그는 “예전에는 전시회하는 날이면 관람객보다 정보과 형사들이 먼저 모여들었지요. 이젠 그런 일은 없겠지요”라며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그의 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이 사는 경기도 안산에 장애예술인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낡은 트럭 한대를 사는 것이다. 트럭은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뭇 사람들에게 자신이 ‘다시 쓴’ 통일시를 보여주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그 트럭이 북한까지 달려갔으면 하는 것이 통일시대를 앞둔 그의 소망이기도 하다.

이민아 기자mustard@hanimail.com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