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그리고 콜롬비아
등록 : 2001-04-24 00:00 수정 :
입사시험에 채점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신문사는 작문과 논문을 중시하는데요, 작문 제목은 ‘한강’이었습니다. 어떻게들 썼을까 당연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7∼8할은,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빈과 부를 가르는 벽으로 설정하고 있었습니다. 집이 강북이고 학교가 강남이어서 다리를 건너 등하교를 하는데, 차라리 다리가 끊어져 교통이 없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적지 않았다는 토로도 있었습니다.
빈부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도나 실직과는 다른, 피안의 세계가 서울 강남의 청담동에 공간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해서 가봤습니다. 커피 한잔에 1만원, 그리고 미니멀리즘적 취향이 있다고 합니다. 오렌지족으로 불린 압구정동 졸부들과 다른, 그럴싸한 고급 소비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고 합니다(표지이야기 참조).
좋습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물질적 성취를 이루고 자기 과시를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부자들이 돈을 써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이론가들도 있습니다. 다만 노숙자는 아니지만 차라리 그 신세가 낫다고 여기는 이들이 늘어나는 한편에, 우리 안의 이국과 다름없는 고급소비 특구가 생겨나고 있다고 하니 어떤 얘기가 떠오릅니다.
어느 시인(경제학자가 아닌)이 쓴, 남미 콜롬비아에 갔던 경험담입니다. 강도가 들끓어 밤은 물론이고 낮에도 혼자 나다닐 수 없었다, 호텔 근처의 맥줏집에서 생맥주 한잔 마시는 데도 경호원이 따라붙었다고 합니다. 본디 이렇지 않았는데 정쟁과 부패를 겪다보니 죄의식 없는 형편없는 나라가 되었답니다.
우리는 평등, 동질성의 가치가 무너지고 계층이 분화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빈과 부, 20 대 80, 중산층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제지형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평생 여유있게 쓸 만한 자산이나 소득이 있는 유한계층. 좋든 싫든 몸으로 부대끼는 것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계층. 지금의 경제시스템과 법질서 아래에서는 도저히 매달려 있을 수 없는 추락계층.
추락계층은 옛날 지구가 평평하다고 여겼던 시절, 바다 끝으로 나가면 물과 함께 아득히 떨어지는 상상의 그림을 떠올리면 정확할 것입니다. 이 계층이 다시 올라설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없고, 유한계층은 부의 정당성을 말끔히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이런 사회가 언제까지나 온전할 수 있을까요? 특히 기성세대는 어릴 적에 비해 먹고 사는 것이 나아졌으므로 참고 삽니다만, 젊은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은 무겁고 단단해 보입니다. ‘나는 두렵다, 이렇게 가다간 우리도 콜롬비아처럼 될지 몰라서’라고 한 신경림 시인의 경고는 비약일까요?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