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의 비애를 망치로 날린다
등록 : 2001-04-24 00:00 수정 :
지난 4월23일 월요일 정오, 서울 명동의 한빛은행 앞에서는 때아닌 망치질이 한창이었다. 곤색 조끼를 걸친 ‘한국통신 계약직노조’ 김수완(34·사진 오른쪽) 조합원과 하늘색 캐디(골프장 경기보조원) 유니폼을 입은 민주노총 서울본부 김원정(27·왼쪽) 조합원이 ‘근로기준법’이라고 적힌 검은 상자를 힘차게 내리치고 있었다. 망치질에 맞춰 구호 소리가 이어졌다.“근로기준법 박살내고 고용안정 쟁취하자!” “비정규직 철폐하고 정규직화 쟁취하자!” ‘비정규 노동자 기본권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비정규 노동자 주간’ 선포식이었다.
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한빛은행 앞에서는 한주 내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가 이어진다. 24일에는 보험모집인 노동자, 25일에는 레미콘 노동자, 26일에는 파견용역 노동자, 27일에는 계약직 노동자가 릴레이로 집회를 이어갔다. 집회뿐 아니라 서명운동, 사이버 시위, 공청회 등도 준비돼 있다.
망치질을 끝낸 김수완 조합원은 “울분이 풀리지 않는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가 속한 한국통신 계약직노조는 이날로 파업 131일째를 맞았다. 지난해 연말 한국통신이 7천명의 노동자들을 계약해지 형태로 해고하면서 시작된 싸움이다. 석달이 넘는 싸움을 거치며 홍준표 위원장 등 6명이 구속됐고 196명이 사법처리됐다. 포항에서 올라온 김씨도 어느새 두 번째 계절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여섯살배기 딸이 눈에 밟히고, 박봉을 아껴 모아둔 생활비마저 바닥날 지경이다. 그래도 그는 “이대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다짐한다.
“지난 겨울에는 비닐 한장만 덮고 거리 농성을 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비닐에 얼음이 얼어 있고….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위협도 해보고, 전화국을 점거해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어요. 한국통신이, 세상이 우리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까지 결코 물러설 수 없습니다.”
사정은 이날 참석한 다른 비정규 노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레미콘 노동자들은 파업집회중 회사쪽에서 보낸 레미콘에 부딪혀 부상을 당했다. 학습지 교사나 골프장 경기보조원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노동3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비정규 노동자 주간을 통해 힘을 모은 이들은 4월30일 오후 7시 종묘공원에서 비정규 노동자대회를 열 계획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