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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공안꾼이 양심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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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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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송학삼씨 국보법 기소 국제적 논란… 무리한 수사 일삼는 공안수사 관행 여전

사진/ 뉴욕 송학삼씨의 자택에 걸려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친필 휘호. 사진은 송학삼씨의 부인과 아들, 딸의 모습.
김대중 정부의 국가정보원은 얼마나 변했나. 1998년 새 정부가 들어선 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라는 이름은 국정원으로 바뀌었고, 원훈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에서 ‘정보는 국력이다’가 됐다. 초대 이종찬 원장은 “국가보안법 적용을 엄격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환골탈태의 몸부림으로 읽혔다.

그러나 최근 국정원이 수사해 기소한 한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안기부 시대와 국정원 시대가 어떻게 다른지 헷갈린다.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해내는, 옛 안기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적출판물’ 혐의 사건 증인으로 입국


문제의 사건을 따라가보자. 4월5일 재미동포인 뉴욕민족통일학교장 송학삼(56·자주민주통일미주연합 뉴욕지부장)씨가 서울에서 구속기소됐다. 국정원이 송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녹록지 않다. 국가보안법의 고무·찬양과 이적표현물 제작·판매, 특수 잠입·탈출 등이 모두 포함됐다. 북쪽의 지령을 받아 입북하고, 그 목적수행을 위해 북의 지령을 받고 다시 남쪽으로 입국할 때 적용되는 ‘특수 잠입·탈출죄’의 경우 법정형은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상당히 무거운 편이다.

송씨 구속을 두고 말들이 많은 것은 일단 그가 1988년 미국 국적을 취득한 시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뉴욕주 상·하원의원 등이 나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미국 언론들 역시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내용의 보도를 잇따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구속이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국적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는 국내 법원이 진행하던 형사사건 재판에서 증인으로 채택돼 법정에 나서기 위해 입국했다가 구속됐다.

그가 증인으로 나선 사건은 사회과학출판사 ‘도서출판 살림터’의 대표 송영현(42)씨의 국가보안법 사건이었다. 송영현씨는 지난해 11월 <김정일의 통일전략>이라는 책을 펴낸 혐의(이적표현물 제작·판매)와, 이 과정에서 송학삼씨, 책의 저자인 재일동포 군사·외교평론가 김명철씨 등과 연락을 주고받은 혐의(회합·통신)로 구속됐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송영현씨가 낸 보석청구를 받아들여 지난 1월19일 그를 석방했다. 국정원이 수사를 개시하고 구속기소한 사건의 피고인에 대해 법원이 보석을 허가하는 것 역시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어쨌든 송학삼씨는 송영현씨가 석방된 뒤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되던 중 입국해 법정에서 송영현씨를 위해 증언한 바로 다음날인 2월28일 구속됐다. 공소장을 토대로 살펴본 국정원쪽의 주장은 대략 이렇다. “송학삼은 김명철의 책이 반국가단체인 북쪽의 대남적화통일전략을 선전·선동하기 위한 내용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번역·출판하도록 했다. 송학삼은 이를 위해 송영현에게 초판 1쇄 비용 가운데 250만원을 송금했다. 또 북쪽의 지령을 받아 활동하는 김명철로부터 북쪽의 입북지령을 전달받은 뒤 고려항공편으로 평양으로 갔고, 지령을 받고 목적수행을 위해 다시 서울로 들어왔다.”

문제가 된 <김정일의 통일전략>은 김명철씨가 애초 일본에서 <한국붕괴:김정일의 군사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던 것이다. 김씨는 이 책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대로 북한이 미국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이기고 미국을 무력화·중립화시킨 뒤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미국에 예속된 남한정권은 존재의의를 잃고 자동소멸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연방통일을 이루는 주역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출판물 저자 색깔 입힌 근거는 영사증명서

사진/ 지난해 <김정일의 통일전략>을 국내에서 발간한 도서출판 살림터 대표 송영현씨. 그는 송학삼씨와 자신의 관계는 출판의뢰자와 출판업자 사이일 뿐이라고 말했다.(강창광 기자)
이 책은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분위기를 타면서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 정치·사회분야 베스트셀러 집계에서도 5주 연속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지난해 5월 발간된 뒤 6개월 이상 일반인에게 판매되다가 국정원이 송영현씨를 구속한 11월 말부터 판매금지 조처됐다. 국정원이 멀쩡하게 팔리던 책에 대해 이적표현물의 낙인을 찍고 수사를 시작한 배경도 의심을 사고 있다.

한편 송학삼씨는 이같은 수사결과에 대해 한마디로 터무니없다고 말한다. 송씨쪽은 먼저 이 사건의 기본전제가 틀렸다고 주장한다. 국정원은 김씨가 반국가단체인 총련 구성원으로 북한의 지령을 받으며 북한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인물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제시한 증거는 다른 해외동포 관련 국보법 사건에서처럼 ‘영사증명서’가 유일하다(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송씨의 변호인인 송기방 변호사는 “일본 총련쪽에 자료요청을 통해 확인한 결과 김씨는 총련과는 관련없는 사람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총련쪽에서는 김씨가 “1985년 조선신보사 피플스코리아 기자를 맡던 과정에서 다른 편집위원들과 의견충돌이 있어 퇴직하게 됐다”는 등의 자세한 배경설명까지 곁들였다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김씨는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미국 내 한반도 정책 관련자들과 상당한 교분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미국 국무성의 존 메릴, 찰스 커트먼, 스캇 스나이더 등과 특히 친하며, 국방정보국이나 중앙정보국 관계자들과도 교류가 있다. 이상한 것은 그가 주로 미국 내 보수적인 연구자들과 자주 교류하며 공화당계와 깊은 인맥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김창수 정책실장도 “김씨는 북한의 군사력을 과장해 설명해왔다”면서 “이 때문에 미국 내 보수 강경파들의 입지를 넓혀줘 결국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추진세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송학삼씨쪽은 방북을 국정원이 ‘잠입·탈출’로 규정한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송씨쪽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동행할 수 없어 두고온 막내동생 학춘씨를 만나러 간 것이고 주장한다. 실제 송씨와 방북 시기가 일치했던 <주간동아> 김당 기자도 “주요한 관람코스에서 송씨를 4번 정도 만났다”고 확인했다.

송학삼씨가 평양에 가기 전과 갔다온 직후 두번에 걸쳐 서울에서 송영현씨를 만난 이유도 북쪽의 지령 때문이 아니라 출판과 관련해 인세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두 사람의 공통된 주장이다. 실제 열악한 출판사 사정에 따른 돈문제로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겼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어 북쪽의 지령에 따라 움직였다는 국정원의 수사결과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송씨는 민족주의자일 뿐이다”

특히 송씨는 김대중 대통령이 1980년대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설립한 한국인권문제연구소의 회원으로 가입해 김 대통령의 미국 내 활동을 후원하기도 했다. 송씨는 김 대통령이 감사의 뜻으로 써준 ‘정의’(正義)라는 친필 붓글씨를 지금까지 집안 거실에 걸어놓고 지냈다고 한다. 송 변호사는 “국정원의 염려처럼 피고인이 공산주의자인지 아닌지는 이것만으로도 그 해답이 분명하다”며 “송씨는 단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민족주의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개폐와는 별개로, 공안 수사기관의 기능 재조정과 인력 물갈이가 이뤄지지 않고는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공안수사 관행이 바뀌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은 다시 한번 확인해 줄 것으로 보인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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