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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신용불량자에게 희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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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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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마저 실패하면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자. 죽음으로 이쯤에서 고생을 끝내리라. 그렇게 독한 맘을 품고 죽을 각오로 나섰지만, 이번에도 일은 뜻 같지 않다.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실패만 하고 마는 것일까.

참담한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던 중 우연찮게 한 목사를 만나고, 그의 설교를 듣게 됐다. 지금은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 설교가 그때는 가슴을 파고들었다. 석승억(33)씨의 새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외환위기 직전으로 경제불황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던 때였다.

석씨는 이때부터 자살하려고 품고 다니던 칼을 버렸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과 담배도 끊었다. 또 자살 시기는 3년 뒤로 미뤘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이제 그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고 있는 시민운동가가 돼 있다. 지금 그에게 달려 있는 직함은 ‘과중채무자들의 모임’(www.freechal.com/blacklist) 대표,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www.credit815) 발족위원회 위원장이다.

한때 신용카드회사 직원이기도 했던 석씨가 신용불량자로 등재된 것은 지난 1995년. 회사를 떠나 자영업을 하면서 사채를 얻어 쓴 게 빌미가 됐다. 사채를 빌려 쓰며 사업을 하다 한 군데서 펑크가 나자 연쇄적으로 일이 꼬였다. 알게 모르게 신용카드대출 연체가 발생하고, 덜컥 신용불량자 리스트에 올랐다. 당시는 사채업자들한테 쫓겨다니느라 연체된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빚독촉에 시달리는 가운데서도 다른 사업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번번이 쓰라린 실패만 하고 말았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다단계판매 회사에도 다니고, 한동안 신문배달도 했습니다. 새벽 2∼3시에 일어나 신문 돌리는 일을 3년 정도 했는데, 여러 번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힘겹게 마음을 다잡았다. ‘비슷한 처지에 빠진 이들이 적지 않을 텐데, 이들을 찾아 경험을 나누다보면 서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후 신용불량자들의 모임을 만들고 인터넷에 사이트를 개설, 신용불량자들의 갖가지 경험담을 축적했다. 이 과정에서 우연히 서울 신정동 세계선교교회의 정충원 목사를 만나게 돼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석씨는 이번에 자신의 행적과 회원들의 경험담을 담은 <신용불량 공화국>(도서출판 행정DB)을 펴냈다. 이 책에는 누구나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신용관리 체계 및 이에 대한 개선 방안도 함께 실려 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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