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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부도나면 서민부터 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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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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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떼이고 쫓겨날 위기에 처한 파산 임대아파트 입주자들의 눈물

사진/시흥 동보아파트 임대입주자들이 비상대책위원회에 모여 피해대책을 논의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우리가 잘못해 부도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합니까.”

지난 4월11일,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동보임대아파트 단지에 꾸려진 ‘시흥 동보아파트 임차인 비상대책위원회’. 동보건설 파산으로 임대보증금을 죄다 떼일 처지에 놓인 입주자 대여섯명이 잔뜩 시름에 겨운 얼굴로 모였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판에 잠이 올 리가 있겠느냐”던 입주자 이일순(54)씨의 걱정은 이내 분노와 설움이 뒤섞인 한탄으로 바뀌었다. “왜, 우리처럼 없는 사람들만 이렇게 당해야 합니까.”

국민주택기금 투입돼 안전하다더니…


이씨처럼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한 채 길거리로 나앉게 될까봐 밤잠을 설치고 있는 시흥 동보임대아파트 입주자는 635세대. 이중 450여 세대는 11평짜리, 나머지 150여 세대는 24평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보증금이 물려 있어 이사를 갈 수도 없는데다 언제 경매가 들어올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법원이 내린 동보건설 파산선고는 마른 하늘에 치는 벼락, 그것이었다. 비상대책위원회 최광식(40) 위원장은 “그동안 워크아웃 상태에 있었던 동보건설이 법정관리로 갈 것으로 보고, 그러면 임대보증금 문제가 정리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파산선고가 내려져 눈앞이 캄캄하다”고 가슴을 쳤다.

파산 소식을 접하고 덜컥 가슴이 내려앉은 임대 입주자는 이곳 시흥뿐만 아니다. 천안, 화성, 횡계, 춘천, 충주 등 전국 동보아파트 8개 지역 4800여 세대가 임대보증금을 날릴 처지에 놓였다. 동보아파트처럼 공공임대아파트가 파산절차에 들어가면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비록 소액이라도 보증금을 우선 변제받을 길이 막히고 만다.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공공임대아파트는 민간 건설업체가 국민주택기금을 싼 이자(연 3∼4%)로 융자받아 짓는 아파트다. 보통 주택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등기부등본을 떼본 뒤 위험하면 안 들어가지만, 임대아파트는 입주 당시부터 국민주택기금을 채권으로 하는 근저당이 주택은행(국민주택기금 위탁관리기관)에 의해 이미 설정된다. 따라서 입주자는 저당권에서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고 경매에 부쳐져도 보증금을 건지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차인들은 공공기금인 국민주택기금이 투입돼 안전하다는 말만 믿고 들어오게 마련이다. 주로 생활권역에서 멀리 떨어져 외진 곳에 몇채씩 삐죽 솟은 임대아파트는 ‘뾰족연필아파트’나 ‘논바닥아파트’로 불린다. 자금력이 없는 중소 건설업체들이 땅값이 싼 곳만을 골라 짓다보니 논바닥아파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에 터진 시흥 동보아파트는 원래 분양아파트로 지어졌다. 그러나 지난 98년 12월 부도를 맞아 미분양이 속출하자 동보건설은 임대로 돌려 입주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그렇게 임대로 들어간 서민들이 결국 이번에 발목잡히고 만 셈이다. 최광식 위원장은 “시흥시가 미분양 물량을 임대로 돌려 자금난을 덜어주려고 한 게 결국 우리의 코만 꿰어버린 것”이라며 한숨지었다.

11평짜리 이 아파트의 임대보증금은 1200만원으로, 대부분 생활보호대상 노인이나 근처 시화공단에 다니는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최씨는 “영구임대아파트를 받아 옮겨갈 예정인 한 할머니는 보증금이 빠지지 않아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라고 안타까워했다. 옆에 있던 이일순씨가 포옥 한숨을 내쉬며 보탰다. “아파트 회사가 파산했는데 어떤 사람이 들어오겠습니까. 나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죠. 채권자인 주택은행이 언제 집을 비우라고 통보해 올지도 모르고….”

영세 민간건설업체만 뛰어들어

사진/부도난 임대아파트 입주자들의 피해를 막으려면 주택정책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시흥 동보아파트 단지.(박승화 기자)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을 나와 11평짜리 임대아파트 동에 들어서자 비좁고 어두운 복도가 길게 이어졌다. 1222호 김태관(56)씨가 빠끔히 문을 열고 내다봤다. 문 틈으로 보이는 집안에는 옷가지 등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혹시 채권자인 주택은행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냐”며 한참 동안 취재진을 훑어보던 그가 말문을 열었다. “대책없이 파산시켜놓고 우리보고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단돈 100원이라도 서민들의 보증금은 보장해줘야 될 게 아닙니까.” 뭔가 뜨거운 것이 턱까지 차올랐을까. 분통을 터뜨리던 그가 “우리 서민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대체”, 하더니 채 말끝을 매듭짓지 못하고 눌렀다. 단칸방에 살다 이곳으로 옮겼던 장혜진(36)씨도 “어렵사리 돈을 모아 임대아파트에 들어온 뒤 이제는 쫓기듯 이사다니는 걱정을 안 해도 되겠구나 했는데 이게 웬일이냐”며 몸서리를 쳤다.

현재 부도난 임대아파트는 전국 507개 단지, 22만 세대로, 이 가운데 입주자들이 살고 있는 도중에 부도를 맞은 업체만 345개 단지, 12만 세대에 이른다. 당장 경매나 파산절차가 진행중이어서 보증금을 한푼도 건지지 못할 처지에 놓인 곳도 동보, 진로, 성원, 대영아파트 등 2만여 세대다.

부도난 임대아파트 입주자 피해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임대아파트에는 적용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물론 경매에 넘어갈 경우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되지만 임대아파트는 확정일자에 앞서 이미 저당권이 설정되기 때문에 보증금을 우선변제받을 길이 없다. 특히 우선 보호되는 소액보증금(주택가액의 2분의 1, 광역시는 1200만원, 중소도시는 800만원 한도)마저도 파산절차에 들어가면 보호받을 수 없다. 게다가 ‘논바닥아파트’라는 말처럼, 임대아파트가 외진 곳에 건설되다보니 경매에 부쳐지면 헐값에 낙찰되기 일쑤다. 법원이 선임한 동보건설 파산관재인 정태상 변호사는 “1차적으로 현재 아파트 임차인들을 개별접촉해 임의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며 “매각 추진이 안 될 경우 경매로 넘길 수밖에 없지만 낙찰가가 크게 떨어지면 보증금은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대아파트 피해가 잇따라 터지는 이유는 어찌보면 구조적이다. 물론 부동산 경기침체 탓도 있지만, 영세한 중소 민간건설업체가 임대주택사업을 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이선근 위원장은 “공공임대아파트인데도 지방의 작은 민간건설업체들이 아파트를 짓기 때문에 결국 부도를 내고 피해를 낳고 있다”며 “국민주택기금이나 보증금을 떼먹기 위해 임대사업을 하는 경우마저 있다”고 말했다. 싼 이자로 손쉽게 빌릴 수 있는 국민주택기금을 ‘눈먼 돈’쯤으로 여기는 부실 건설업체들이 임대아파트 사업에 뛰어들기 때문이란 얘기다.

우량 건설업체가 임대아파트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해봤자 ‘큰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대아파트는 5년 뒤 분양으로 전환돼야 자금회수가 가능하므로 대형업체는 별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결국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계속 늘리려는 정부는 부실한 중소업체라도 사업을 맡겨왔고, 임대업체는 5년 뒤에 수익이 나온다는 점 때문에 생존을 위해 또다른 임대아파트를 계속 지어왔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박사는 “임대아파트는 달리는 자전거처럼 계속 사업을 해야 유지되는데 미분양이 속출하고 집값이 떨어져 누적된 부실이 동시에 드러나면서 이곳저곳에서 부도를 맞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자란 건설비를 임대보증금으로 채우고 분양으로 메우는 구조 속에서 정부는 업체가 쓰러지지 않도록 기금을 계속 쏟아부어왔고, 한계상황에 이른 업체가 끝내 부도를 맞으면 피해자는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근본적 처방은 정부가 나서는 것

그렇다면 서민들이 꿈이 부도맞지 않게 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한국도시연구소 서종균 연구원은 “임대료 수입만으로는 채산성을 맞출 수 없는 임대아파트의 ‘태생적 한계’를 사회복지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며 주택정책을 문제삼았다. 정부가 임대아파트의 사회복지적 성격을 감안해 재정부담을 떠안고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부도난 아파트를 입주자들이 임의매수해 내 집으로 돌리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그러나 시흥 동보아파트 11평의 경우, 임의매수하려면 임대보증금 1200만원 외에 국민주택기금 대출 조건으로 설정된 근저당 1800만원을 당장 입주자가 추가로 갚아야 할 판이다. 그러나 현재 11평 아파트 시세는 2500여만원으로 임의매수하는 입주자는 시세보다 500만원을 더 주고 사는 셈이 된다. 최광식 대책위원장은 “정부가 차액 500만원을 국민주택기금 손실로 감수하고 부도난 아파트 전체를 인수한 뒤 나중에 분양전환하는 방안이 입주자의 피해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안진걸 간사도 “서민 주거권보호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임대아파트 부도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근본 처방은 공공임대아파트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짓고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공사나 지방자치단체가 짓되 민간업체는 시공사로만 참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어쩐 일인지, 시흥 동보아파트 단지에는 피해대책을 요구하는 그 흔한 플래카드도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이 아파트 단지에 분양과 임대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입주자들은 생짜로 돈을 날릴 지경에 처해 있지만, 분양입주자들은 “집값이 떨어진다”며 파산이 바깥에 알려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피해대책위 사무실에 보일듯 말듯, 조그맣게 걸린 ‘서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플래카드가 더욱 작아보였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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