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가 합법화됐다고 하지요. 네덜란드에서 세계 처음으로.
안락사(euthanasia)는 그리스말로 죽음을 뜻하는 ‘thanatos’에 좋다는 뜻인 ‘eu’가 합쳐진 말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mercy killing’이라고도 하는데 살인 의미가 강합니다. 그래서 저 멀리 히포크라테스 시절에도 논란이 됐습니다.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지시키는 것은 죄악이며, 허용할 경우 부작용도 우려된다는 견해가 지금까지 이를 막아왔습니다.
그런데 네덜란드가 금기를 깼습니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부 주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하기도 하지만 합법화한 것은 유일합니다. 물론 네덜란드는 환자가 불치병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다른 치료법에 대해 충분히 알고, 이성적 상태에서 안락사를 꾸준히 자의적으로 요청해야 한다는 엄격한 조건을 붙였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지난 96년부터 안락사가 사실상 허용돼 지난해 안락사한 환자가 2123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90%가 말기암 환자입니다.
그런데 안락사만이 아닙니다. 네덜란드는 낙태를 허용하고, 태아의 성별까지 자유롭게 알려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동성간의 결혼이 허용되고, 처방전이 있으면 마약도 약국에서 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한결 튀는 모습입니다. 정신나간 사람들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나라에 부패, 무질서가 판을 친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네덜란드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안 된다면 개인의 선택이나 행동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충실하다고 합니다. 집단, 도덕률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강대국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현실적인 사고를 해왔다는데, 개인주의가 가장 발달한 개방적 사회라는 평가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가 취하고 있는 제도는 하나하나가 큰 논란거리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개인의 인권을 무엇보다도 존중하는 점은 주목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적 사고가 21세기를 앞서가는 것이라는 평가도 받습니다. 인터넷 등으로 기존 권력이 약화되고, 동성결혼 등 자신의 선택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추세를 보면 수긍이 갑니다. 구체적 제도를 떠나, 자유와 권리의 확대라는 점을 놓고 본다면, 네덜란드가 시대의 큰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엔 이와는 다른 흐름도 있습니다. 군국주의 망령에 씌인 일본의 우익입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선택받은 존재로 여기고, 자신들이 가한 크나큰 상처를 외면하고, 강력한 황국국민으로 거듭나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군국주의의 부활을 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이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30년 뒤의 일본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정신나간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행히 이들은 교과서 문제가 과거나 과거지향적 사안이 아니라 바로 현재, 그리고 미래의 문제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아리랑>의 작가 조정래 선생이 쓴, 왜 우리가 교과서 왜곡에 분노하는가 하는 글을 이번호의 머리로 실었습니다. 이 메시지가 일본에 전해져 일본사회가 건강을 되찾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우리 자신도 물론이고요.
군국주의 미몽이야말로 안락사 대상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