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해보면 ‘오삼숙’의 승리에 대한 폭발적 성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이혼을 금기시하는 풍토가 뿌리깊게 남아 있다. 이혼을 한 사람은 그 사실을 가능한 한 숨기며 살고 싶어한다. 특히 여성과 그 자녀들은 더욱 그렇다. 내 제자들 중에서 ‘한부모’(편부모라는 말은 쓰지 말자) 혹은 재혼가정에서 자라난 학생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뒤늦게 사석에서야 확인한다. 친구들에게조차 함구하며 사는 학생들이 많다. ‘결손 가정’(이 야만적인 용어!)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이혼한 사람에게는 ‘무책임한 사람’, ‘뭔가 결함이 있는 사람’, ‘자식 생각 않는 비정한 부모’라는 딱지가 붙는다. 부부는 달콤한 사랑만으로 사는 게 아니며 진정한 사랑은 서로의 결함을 감싸며 인내하는 과정에서 싹튼다는 진부한 도덕적 설교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애를 생각해서라도 참고 살았어야지!”, “이혼이 뭐 자랑인가?”라는 비난은 예사다. 특히 여자의 경우는 거의 ‘화냥녀’ 혹은 ‘마녀’ 수준으로 매도된다. 그러고보니 어떤 작가는 “이혼경력을 훈장처럼 달고…” 운운하며 페미니스트를 조롱한 적이 있다. 이혼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처참한 고통은 안중에 없다. 가부장적인 일부일처제에 대한 강박적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혼을 ‘쉽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차별 조장하는 획일주의적 도덕관 이혼은 권장사항도, 그렇다고 ‘흠집’도 아니다. 인간이 오로지 ‘신성한 결혼’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 이혼할 권리는 인간의 행복권을 보장하기 위한 선택권으로서 인권의 한 목록에 해당한다. 장애인 및 가난한 사람에 대한 차별에서 도덕적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이혼자에 대한 가학적인 공격의 충동을 참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소수’인 이혼자에 대한 다수의 도덕적 우월감이 그러한 공격을 정당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격의 근본적 이유는 가치관의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획일주의적 도덕관에 있다. 이혼율이 높을수록 타락한 사회고 낮을수록 건강한 사회라는 도식은 이혼자(=건전하지 못한 자)에 대한 차별을 은근히 조장한다. 독신자, 동거 커플, 이혼 및 재혼가정, 한부모 가정, 동성애 부부 등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사회는 언제쯤 가능할까? 그것을 ‘무분별한 퇴폐적인 서구문화에 물들어가는 한국사회의 모습’이라고 맹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더이상 뭐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권혁범/ 대전대 교수·당대비평 편집위원 http://dragon.taejon.ac.kr/~kwonh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