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과 결혼한 이주노동자들의 ‘위험한 사랑’… 어렵게 혼인신고해도 노동권 보장 못받아
햇살 따사로운 봄날이었다. 안양의 전.진.상 복지관 주최로 합동 결혼식을 올리고 제주도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경주(37)씨 등 네명의 신부들. 4월4일 오후 3시 김포공항 국내선 출구를 빠져나오는 신부들의 입가에는 봄 햇살보다 눈부신 웃음꽃이 피어났다. 하지만 막 허니문을 나서는 4월의 신부들 앞에 놓인 현실은 따사로운 봄볕이 아니다. 옆에서 선물 꾸러미가 잔뜩 실린 손수레를 밀고 있는 ‘인생의 동반자’가 이주노동자(외국인노동자)인 탓이다.
출국, 재입국, 혼인신고… 그 험난한 과정
어느덧 한국 내 이주노동의 역사는 10년을 거슬러올라간다. 91년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이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생’의 신분으로 처음 이 땅을 밟은 뒤,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이주노동자 수는 현재 30만명에 이른다. 체류기간이 길어지면서, 젊은 나이의 이들은 피부색을 뛰어넘어 공장에서, 거리에서 만난 한국인과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이뤘다. 한국남성과 결혼한 외국여성은 비교적 정착이 수월한 편이지만, 한국여성과 결혼한 이주노동자들은 정착하기 어렵다. 한국여성과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가정도 많지만,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탓에 혼인신고조차 하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4월5일 정오 무렵. 안산에서 만난 이경주, 비노드(37) 부부는 연신 울어제끼는 용운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용운이를 들쳐업으며 “며칠 떨어져 있었다고 이렇게 투정을 부린다”고 말하는 이씨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칭얼거리는 아기가 있고, 방 한쪽에는 가족사진이 붙어 있지만 이들 부부는 법적으로 그저 남남일 뿐이다. 안산 한 공장에서 경리일을 보던 이씨가 비노드를 처음 만난 때는 97년 연말. 친구를 따라 간 네팔 노동자 모임에서였다. 98년부터 같이 살기 시작해 2000년 4월에는 용운이를 낳았지만 혼인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 비노드가 불법체류자인 탓이다. 결국 이씨는 호적상 미혼모가 됐고, 용운이는 엄마의 호적에 혼인 외자로 올라 있다. 남편 비노드는 서류상 ‘없는’ 사람인 것이다. 한국여성과 결혼한 이주노동자가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불법체류부터 청산해야 한다. 자진신고기간을 활용해 출국하면 벌금은 면제되지만 재입국에 최소한 서너달이 걸리는 탓에 실업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저임금인 탓에 고향에 다녀오는 비용도 큰 부담이 된다. 비노드는 “한국 국민인 아내를 봐서라도 혼인신고를 허락해줬으면…”하고 말꼬리를 흐린다. 오랜 불법체류는 복잡한 호적문제도 낳는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사는 바랏(33), 김동숙(31)씨 가정은 호적 정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부부는 세 아이를 김씨의 친정 호적에 올렸다. 물론 바랏이 불법체류자였던 탓이다. 지난 99년 연말 바랏은 불법체류를 청산하고 돌아와 혼인신고까지 마쳤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외삼촌의 호적에 남아 있다. 본적지인 성북구청에서 “남편의 본적지인 네팔에서 인지를 받아오지 않는 한 아이들 호적을 옮길 수 없다”고 버텨서이다. 김씨는 “다른 구청에서는 다 해주는데 왜 그러냐?”고 항변했지만 허사였다. 불법노동자로 내모는 F1 비자
원래 불법체류를 하다 자진신고 기간에 출국을 하면 입국이 금지된다.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노동자의 경우, 지난해부터 입국금지가 없어져 다시 들어올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입국금지에 묶여 2∼3년씩 이산가족이 되기 일쑤였다. 부산에 사는 강순옥(34), 박기웅(46)씨 부부가 바로 그런 경우다. 중국 조선족으로 92년부터 불법체류를 해온 박기웅씨는 97년 겨울, 불심검문에 걸려 강제출국당했다. 이미 한해 전 부인 강씨를 만나 가정을 꾸린 상태였다. 검거된 지 이틀 만에 추방된 박씨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강씨는 혼인신고 절차부터 밟았다. 세 차례나 중국을 드나들며 혼인신고를 마쳤고 준비된 서류를 제출하러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갔다. 혼인신고서만 제출하면 남편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씨는 출입국 사무소 직원에게 청천벽력 같은 답변을 들었다. 2년 동안 남편의 입국이 금지되었다는 통보였다. “남편과 떨어져 살 수 없다”고 애원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2년 동안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돌이키는 강씨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년을 기다린 끝에 다시 출입국 관리소를 찾았지만 이번에도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기가 막혔다. 김씨는 “영영 같이 살지 못할 것 같아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며 “더는 참을 수 없어 방법을 찾아나섰다”고 돌이켰다. 결국 김씨는 ‘부산 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을 알게 됐고, 이 단체의 도움으로 법무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남편은 2000년 1월 다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부산 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정귀순 대표는 “지난해부터 입국규제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그나마 쉽지 않다”며 “탄원서를 내고 항의를 해야 입국이 빨리 허용된다”고 말한다. 아직 이런 방법을 몰라 생이별중인 가정이 적지 않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의 노력에 힘입어 재입국이 허락되기는 했지만 아직 국제결혼가정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가장 큰 문제는 혼인신고를 마친 이주노동자들이 다시 한국에 들어올 때 받게 되는 방문동거(F1) 비자의 불안정성이다. 노동권과 재산권이 보호되는 장기체류(F2) 비자와는 달리 F1 비자는 체류만이 허용뿐 일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입국과 함께 교부받는 외국인 등록증의 취업란에는 ‘무직’으로 기재되고, 취직을 하면 불법취업으로 추방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빈곤한 처지에 있는 이주노동자 가정의 형편상 이들은 다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안양 전.진.상 복지관 이금연 관장은 “겨우 불법체류자의 신분을 벗어난 사람들을 다시 불법노동자로 내모는 꼴”이라고 비판한다.
이처럼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반쪼가리 국제결혼가정은 한둘이 아니다. 부산에 살고 있는 김외자(31), 전영수(30·조선족)씨 부부는 95년 결혼식을 올려 이미 두 아이를 낳았다. 불법체류자였던 전씨는 불안한 신분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1월 불법체류 자진신고 기간에 중국으로 출국했다. 8개월의 수속 끝에 F1 비자를 얻어 돌아왔지만 지금은 다시 생계곤란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어와 한국어는 물론 영어, 일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해 괜찮은 일자리를 제안받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외국인 등록증에 표시된 ‘무직’ 기록 때문에 번번이 좌절해야 했다. 더구나 8개월의 수속기간 동안 든 비용이 만만치 않아 생계는 더욱 어려워졌다. 전씨는 “취업 금지 탓에 많은 국제결혼가정의 가장들이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무기력에 시달린다”고 토로한다.
귀화하려면 3천만원 모아야
방글라데시 사람과 결혼한 윤입분(38)씨는 일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F1 비자 탓에 1년5개월째 생이별중이다. 92년 5월 한국에서 결혼한 이들 부부는 외국인 남편이 비자조차 안정적으로 받을 수 없어 93년 함께 일본으로 떠났다. 98년까지 이어진 불법체류자 생활을 끝내고 98년 6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F1 비자를 가진 남편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결국 99년 연말 남편은 혼자 영국으로 건너가 불법체류 노동을 하고 있다. 윤씨는 “일본에서 불법체류하던 남편 친구는 일본여성과 결혼해 그곳에 정착했다”며 “일본처럼 결혼한 불법체류자에게 특별체류를 허용할 수는 없느냐”며 하소연한다.
이런 차별을 피하기 위해 한국인과 결혼한 상당수 이주노동자들은 귀화를 원한다. 결혼한 뒤 2년 이상 한국에 거주하면 귀화신청 자격이 주어지지만, 귀화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부부가 3천만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해야 귀화가 허가되지만 저임금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들이 그만큼의 재산을 모으기란 어렵다. 귀화를 원하는 전영수씨는 “어차피 여기 뿌리내리고 살겠다는 사람들인데 자격요건을 완화해주기 바란다”고 선처를 호소한다.
한결같이 “당분간은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노동자들. 이들을 단순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고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대접한다면, 이젠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정착의 길을 터줘야 할 때다. 지난 3월28일 발족한 이주·여성인권연대는 △불법체류자 가정의 혼인신고 허가 △일할 권리가 보장되는 장기체류(F2) 비자 발급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신윤동욱 syuk@hani.co.kr

사진/바랏, 김동숙씨 가정. 어렵게 혼인신고까지 마쳤지만 세 딸은 여전히 외삼촌 호적에 남아 있다.(강창광 기자)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4월5일 정오 무렵. 안산에서 만난 이경주, 비노드(37) 부부는 연신 울어제끼는 용운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용운이를 들쳐업으며 “며칠 떨어져 있었다고 이렇게 투정을 부린다”고 말하는 이씨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칭얼거리는 아기가 있고, 방 한쪽에는 가족사진이 붙어 있지만 이들 부부는 법적으로 그저 남남일 뿐이다. 안산 한 공장에서 경리일을 보던 이씨가 비노드를 처음 만난 때는 97년 연말. 친구를 따라 간 네팔 노동자 모임에서였다. 98년부터 같이 살기 시작해 2000년 4월에는 용운이를 낳았지만 혼인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 비노드가 불법체류자인 탓이다. 결국 이씨는 호적상 미혼모가 됐고, 용운이는 엄마의 호적에 혼인 외자로 올라 있다. 남편 비노드는 서류상 ‘없는’ 사람인 것이다. 한국여성과 결혼한 이주노동자가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불법체류부터 청산해야 한다. 자진신고기간을 활용해 출국하면 벌금은 면제되지만 재입국에 최소한 서너달이 걸리는 탓에 실업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저임금인 탓에 고향에 다녀오는 비용도 큰 부담이 된다. 비노드는 “한국 국민인 아내를 봐서라도 혼인신고를 허락해줬으면…”하고 말꼬리를 흐린다. 오랜 불법체류는 복잡한 호적문제도 낳는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사는 바랏(33), 김동숙(31)씨 가정은 호적 정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부부는 세 아이를 김씨의 친정 호적에 올렸다. 물론 바랏이 불법체류자였던 탓이다. 지난 99년 연말 바랏은 불법체류를 청산하고 돌아와 혼인신고까지 마쳤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외삼촌의 호적에 남아 있다. 본적지인 성북구청에서 “남편의 본적지인 네팔에서 인지를 받아오지 않는 한 아이들 호적을 옮길 수 없다”고 버텨서이다. 김씨는 “다른 구청에서는 다 해주는데 왜 그러냐?”고 항변했지만 허사였다. 불법노동자로 내모는 F1 비자

사진/4월4일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네쌍의 Ne-Co(네팔-코리아커플)모임 회원들. 허니문을 막 통과한 이들 앞에는 험난한 현실이 놓여 있다.(박승화 기자)

사진/방글라데시인과 결혼한 윤입분씨.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F1비자 탓에 2년째 남편과 떨어져 살고 있다.(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