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판대 지키는 아줌마 시인
등록 : 2001-04-03 00:00 수정 :
어느 지하철 역에나 그렇듯이 2호선 대림역에 가면 가판 서점 몇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역의 아무 서점에나 들어가 “김설야씨 아세요?” 하고 물으면 “아, 시인 아줌마요?”라며 한 판매점을 가르쳐준다. 한평 남짓한 공간, 빽빽하게 꽂힌 잡지와 책 틈새에 자그마한 아주머니 한분이 앉아계신다. 90년대 중반 <현대문학>에 수필을 발표해 등단하고, 최근 시집 <길을 가다 길을 읽고>(맑은 소리 펴냄)를 출간한 김설야(45)씨에게는 투명한 사각의 방이 곧 저작실이요, 생계를 위한 일터이며, 세상을 보는 창구다.
폐디스토마를 앓던 병약한 어머니와 정신병자인 오빠, 호랑이 같은 아버지 틈에서 커야 했던 어린 시절의 그에게 친구가 되어준 건 책이었다. 서울서 대학 다니던 큰오빠는 남동생 보라고 경북 영양의 고향집으로 책을 한 상자씩 내려보내줬고, 열살 소녀는 글뜻을 알든 모르든 무조건 읽어치웠다. 그러나 그가 글쓰는 것을 업으로 삼기에는 생활에서 오는 난관이 너무 많았다. 먹고살기 위해 이불공장 공원부터 속기사, 식당 종업원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래선지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가난하다.
“보랏빛 원피스 엘리자베스 아덴/ 소비자가격 여섯 자릿수/ 내 호주머니 사정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갑속에 동전들이 짜그락거린다.”
이불공장에서 일한 탓에 호흡기가 나빠져 새로 할 일을 찾다 5년 전 우연히 지하철 가판대에서 사람 구하는 광고를 보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하철은 그의 일터가 되었다. 군에 간 아들이 제대하기를 묵묵히 기다리며, 지하철을 오가는 바쁜 사람들을 조용히 관찰하며 그는 쓰고 또 쓴다.
등 뒤에는 책이, 오른쪽에는 틈만 나면 도드락 도드락 두드려대는 노트북이 있고 발 아래는 지하철의 냉기를 걷기 위해 달아놓은 전구가 있다. 돈이 없어 시집을 사볼 수도 없었던 때와는 달리 새로 나오는 책들을 공짜로 읽을 수도 있다. 음식점이나 옷집에서 일하는 것보다 글 쓸 수 있는 시간도 많은데 뭘 더 바라겠느냐고, 발도 쭉 펴기 힘든 가판대를 “이보다 좋을 순 없는 곳”이라며 김씨는 밝게 웃는다.
이민아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