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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안티 징병제’를 진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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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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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군대반대·병역기피 사이트’ 전면수사… 두곳 자진폐쇄 등 ‘토론 위축’ 움직임

사진/‘군대반대 사이트’의 오프라인 모임. 경찰은 이들 사이트가 ‘병역 또는 납세의 의무를 거부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 형법 114조 2항을 어긴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신윤동욱 기자)
병역거부와 병역기피의 차이는 무엇인가? 징병제 토론과 병역거부 선동은 어느 선에서 갈리는가? 지난 3월20일,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인터넷상에서 게시판을 통해 병역기피 방법을 알려주고 병역거부를 선동하며 회원을 모집하는 병역기피 조장 사이트 3개에 대한 전면수사에 나섰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사이버범죄수사대가 ‘병역기피 조장’ 혐의로 지목한 3개 사이트는 지난 3월 아나키스트들이 개설한 ‘군대반대 사이트’(non-serviam.org), 다음 카페의 ‘징병제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징거모), 라이코스의 게시판 ‘존나깨는 병무청’이다.

징병거부를 공공연히 선동?

징병제 관련 사이트 중 지난해 초, 가장 먼저 개설된 ‘징병제를 반대하는 모임’(징반모·www.anticonscript.org)은 수사에서 제외되었다. 징반모는 이미 4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징병제 관련 사이트 중 가장 활발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징반모는 징병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모병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토론 사이트”라며 “이 정도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수사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뇌물 액수와 정신과 치료, 습관성 탈골 등 구체적인 병역기피 방법을 알려줘 문제가 된 사이트는 ‘존나깨는 병무청’이다. 하지만 이 사이트는 병역특례 취업정보를 알려주는 등 사설 병무상담의 성격이 강하고, 일부 게시된 병역기피 방법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이어서 경찰도 수사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한 상태다. 다음 카페의 징병제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병역거부 선언’ 메뉴를 만들어놓아 수사 범위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 사이트가 폐쇄될 때까지 병역거부 선언에는 단 한건의 선언글도 올라오지 않았을 뿐더러 회원도 너댓명에 불과하다. 경찰도 “이 두개의 사이트는 위법 혐의가 미미한 정도”라며 “구체적으로 병역기피를 도와준 적이 있는지만 확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일단 경찰은 수사의 초점을 ‘군대반대 사이트’에 맞추고 있다. 언론에 의해 ‘병역기피 사이트’로 뭉둥그려 알려지기는 했지만 이 사이트를 특히 문제삼는 것은 군대반대‘운동’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사이트의 한 회원은 공개적으로 ‘군대가지 않겠다’고 밝히며 병역의 의무 자체를 부정하고 있고, 징병거부를 공공연히 선동한다는 점에서 반사회적”이라고 밝혔다. 또한 “특히 두 차례에 걸쳐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 등 군대반대운동을 펼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형법 114조의 ‘병역거부단체 조직 가입죄’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이들을 추적 조사한다는 게 경찰쪽 입장이다. 20일 경찰의 수사방침이 발표된 뒤 이 사이트에는 하루 300여건의 글이 폭주했다. 이들에 대한 지지글부터 극단적인 반대글까지 징병제를 둘러싼 이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수사 발표 당일이었던 20일, 경찰은 다음 커뮤니케이션과 라이코스 코리아에 사이트 운영자의 인적 사항과 IP주소를 요청했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도 폐쇄 요청을 한 상태다. 다음쪽은 경찰의 수사 협조 요청에 따라 운영자의 인적 사항과 IP주소를 넘겨줬다. 하지만 라이코스 코리아쪽은 “징병제 관련 사이트를 폐쇄하는 것은 인터넷이 가져온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으로 판단해 강제 폐쇄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도 아직 심의위원회가 소집되지 않아 폐쇄 결정을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사건 수사 발표 이틀 뒤인 22일, 다음 카페 ‘징거모’의 첫 화면에는 ‘본 카페는 2001년 3월22일부로 개설자의 요청으로 인하여 카페가 폐쇄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같은 날 라이코스의 게시판 ‘존나깨는 병무청’의 모든 게시물이 삭제됐다.

법 적용 범위 둘러싼 논쟁 이어질 듯

사진/군대반대·병역기피 사이트에 대한 경찰 수사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인터넷 검열논리를 정당화하려는 시대착오 발상”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통신질서 확립법을 반대하는 네티즌들의 시위.(이용호 기자)
두 사이트의 운영자는 이번주 수사에 응하기로 했지만, 3월26일 현재 ‘군대거부 사이트’ 운영자 두명은 아직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 사이트가 ‘병역 또는 납세의 의무를 거부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 형법 114조2항을 어긴 혐의라고 밝혔다. 하지만 법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변호사는 “형법 114조2항 자체의 규정 범위가 모호해 오용될 소지가 큰 조항”이라고 전제한 뒤 “과연 이 사이트가 ‘병역의 의무를 거부할 목적’을 지녔는지, 인터넷 사이트 회원들의 모임을 ‘조직’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더구나 경찰은 운영자뿐 아니라 가입회원들도 수사 대상에 포함하고 있어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군대거부 사이트’ 운영자는 “우리는 병역기피 방법을 사이트에 올린 적이 없다”며 “정치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의 인정과 대체복무제를 요구했을 뿐”이라고 밝힌다. 경찰이 주목한 오프라인 모임은 ‘군대반대 사이트’뿐 아니라 다른 징병제반대 사이트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사이 시민사회단체의 성명서가 속속 발표되었다. 평화인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민가협 등 8개 평화·인권단체는 22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경찰의 수사방침이 최근 언론을 통해 징집제의 인권침해적 요소에 대한 보도가 나가고 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점차 형성되고 있는 시점에서 발표된 것이란 점에 주목한다”며 “징병제의 문제점과 관련된 합리적 토론 및 사회공론화를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라고 비판했다. 다음날에는 진보네트워크센터, 민주노동당, 전국연합 등이 참여한 ‘정보통신 검열반대 공동행동’의 성명이 이어졌다. 이 단체는 ‘징병제에 대한 논의조차 봉쇄하는 인터넷 마녀사냥을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징병제에 대해 단지 ‘논의’했다는 이유로 반사회적인 범죄 운운하는 것은 인터넷에 대한 검열논리를 정당화하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즉각 징병제 논의 사이트에 대한 전면수사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진보네트워크 장여경 정책실장은 “자살 사이트, 폭탄 사이트 소동에 이어 인터넷의 자유를 제약하기 위한 세 번째 시나리오”라며 “지금 상황에 분노를 느낀다”고 토로한다.

병역거부단체조직 가입죄 적용?

경찰의 한 관계자는 “군대거부 사이트가 개설된 지 채 한달도 되지 않아 큰 조직이 형성됐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이 운동이 본격화했을 때 치를 사회적 비용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징병제에 관한 사회적 토론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며 “논의 자체를 원천봉쇄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최초의 병역거부단체조직 가입죄 적용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경찰은 군대반대 사이트가 ‘병역거부를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음’을 증명해야 하고 군대거부 사이트 운영자쪽은 징병기피가 목적이 아님을 반박해야 할 상황이다. 이들의 구속여부는 앞으로 징병제의 토론 수위를 가늠할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징병제에 대한 토론이 막 시작된 상황에서 불거져나온 경찰의 수사방침은 벌써부터 토론의 위축을 가져오고 있다. ‘자진 폐쇄’한 두 사이트가 이를 증명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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