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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말랑 젤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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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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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문고 사태를 계기로 또다시 사립학교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사실 사립학교법 개정은 그동안 여러 차례 논의돼왔지만, 사학재단 관계자들의 거센 반발과 집요한 로비로 늘상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몇몇 조항의 경우에는 오히려 시대의 요구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개악된 실정이다.

사립학교법, 이번엔 개정돼야 한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중요 골자는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사립학교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가장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사회에게 주어져 있는 교직원 임면권을 학교장에게 넘겨주고, 비리 분규에 대해 책임이 있는 인사들의 학교 복귀를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는 조항이다. 이 조항은 그동안 무수하게 문제제기가 돼왔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사학교육의 공익성 제고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라고 볼 수 있다.

이 개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사립학교는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이러한 법안이 사학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이 법안이 사학 경영의 주체를 부정하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 법안이 막대한 개인 재산을 투입해 사학을 설립한 사람의 건학 의지를 꺾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한다.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의 사립학교 현장을 살펴보지 않고, 원론적으로 접근할 경우 일리가 있는 주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상황을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없는 주장인가를 당장 알 수 있다. 사립중·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운영비의 98%가 국고 지원과 학생들의 납입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립대학의 경우에도 재단 전입금이 6% 미만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겉모양만 사립학교일 뿐, 실제 내용은 공립학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학재단이 사재를 출연해서 학교법인을 설립했기 때문에 경영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물론 개중에는 건강한 건학이념을 가지고 건실하게 학교를 경영하고 있는 사학들도 있다. 그러나 아주 많은 사립학교는 이미 병이 들 대로 들어 있다. 상문고 사태는 그 병이 우연히 겉으로 드러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많은 사학들은 문제제기조차 하지 못한 채, 안으로 곪아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수많은 사립학교에서 분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실질적인 해결은 전혀 되지 않고 몇년씩 학생들과 교원들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며 재단과 싸워야 하는 형편이다. 극소수의 건강한 사학을 모델로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미 우리나라의 사학은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사립학교에서는 온갖 종류의 비리가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공금 유용, 실습비나 공사비 횡령, 족벌 경영, 교수 임용을 둘러싼 금품 수수, 부정 입학, 재임용 비리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비리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분명하게 존재하는 문제들을 외면하고 원론적 수준에서 문제에 접근할 수 없다.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리가 저질러지면 형사법 등에 따라 처벌하면 되기 때문에 별도의 학교법을 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지 않았던가? 잊을만 하면 한번씩 터져나오는 사학 비리 사건들은 그때그때 비리 당사자들의 책임을 물어 처벌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여전히 문제는 계속 터져나오고 있지 않은가? 교육의 질은 점점 더 하락하고 있고, 문제를 인식하고 재단에 용감하게 맞선 교사들과 교수들이 말썽꾼으로 낙인찍혀 학교 현장에서 내몰리고 있다. 와중에 상문고 사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학생들이 가장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언제까지나 이 악순환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말인가? 따라서 사립학교의 공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사업을 다른 기업들과 같은 선 위에 올려놓고 바라볼 수 없다.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 한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너무나 엄청나다. 교육은 인간의 틀 자체를 만드는 작업이다. 그것은 사적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훨씬 더 근원적인 시민의 권리에 대한 문제이다. 학생들은 공익성이 확보된 교육기관에서 공부할 권리가 있다. 교육 주체들은 교육기관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도록 감시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막을 권리가 있다.

처세술만 배우게 할 것인가

젊은이들의 정신은 마치 아직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은 말랑 젤리와 같다. 그 젤리는 어떤 방식으로 모양을 잡아주는가에 따라 일생 동안 삶에 대해 버텨낼 수 있는 단단한 형태가 되기도 하고, 약간의 외부 충격에도 견디지 못하고 좌절하는 물렁뼈가 되기도 한다. 그 젤리가 세상 안에서 살아가면서 버텨낼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힘은 삶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 믿음은 올바른 교육을 통해 분명하게 형성된다.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느라고 소신있게 행동하지 못하는 교사, 비리를 저지르고도 다시 학교 현장에 돌아오는 운영자가 있는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이 삶에 대한 신뢰를 배울 수 있을까? 적당히 보신하며, 눈칫밥이나 먹으면서 안전빵으로 살아가는 비루한 처세술만 배우게 되지 않을까?

김정란/ 시인·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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